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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pr 03. 2020

<세븐/Seven>

현대사회의 무관심에 대하여.

<세븐/Seven, 1995>

명작을 리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거장이 주는 메시지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멀은 것인지, 아니면 필자의 전달해주는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찝찝하면서 여운이 남는 영화는 선뜻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스릴러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 <세븐>을 보고 대략 30분 동안 멍해있었다. 반전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런 답답함이 남아있을 줄은 상상도 못한, 데이빗 핀처의 <세븐>이다.





영화는 7대 죄악을 모티프로 삼아 연쇄 살인 범죄를 저지를 범인을 추적하는 밀스와 소머셋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감독 데이빗 핀처는 상당히 긴장감이 넘치는 연출로 영화 내내 스토리를 끌어가는데, 영화 후반까지 범인의 과거사나 동기, 심지어는 실루엣조차 비추지 않은 것이 크게 작용한 듯 보인다. 범인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관객들은 스크린 속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두 의심하기 시작하는데(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이는 긴장감을 낮추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데이빗 핀처는 이를 배제시켜 플롯의 흐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비가 내리고 매우 우울하다. 수사 중 꽤 쓸만한 단서들을 계속해서 발견함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없는 듯 하고 패색이 매우 짙다. 범인이 형사들을 가지고 노는 상황에서 부터 이미 이기기엔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수사물을 보면서 이토록 암울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꼭 범인을 잡고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겠다는 밀스의 말은 신뢰가 가지 않을 뿐더러 멍청하게까지 들린다. 결국 엔딩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이러한 우울함과 암울함은 현대 사회의 분위기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효과를 배로 가져온다.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1995년 작이라는 것이다.

영화 후반 10여 분 간 이어지는 브래드 피트와 케빈 스페이시의 갈등은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자수한 범인에게 끝까지 우롱당한 밀스는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그를 권총으로 사살하고 체포된다. 범인에게 패배하고 만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관객들은 그가 쏘지 않기를 바라지만, 쏘았다고 해서 그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영웅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무너져 내리는 밀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이입할 수 있었던 브래드 피트의 열연 덕분이다. 브래트 피트의 명연기와 모건 프리먼의 안정감있는 도움, 그리고 케빈 스페이시의 임팩트는 영화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준다.

다만 기대감이 높은 탓일지도 모르지만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스토리 라인으로 느껴지진 않았고, 생각했던 것 만큼 시원시원한 반전이 아니었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아쉬움이다.

현대 사회의 무관심을 냉철하게 꼬집는 이 영화가 95년 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2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서울 정도로 바뀐 것이 없는 현실이다.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대 사회가 <세븐>을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작이 되도록 한 1등 공신이지 않을까.





총점 - 9.5
싸워볼 가치가 있는 이 세상에게 던지는 메시지.


헤밍웨이가 말했죠. 세상은 아름답고 싸워볼 가치가 있다고. 후자에 전적으로 동감이오.

-<세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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