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Nov 18. 2020

<21 그램/21 Grams>

고작 21 그램 때문에 삶이 계속되는 아이러니.

영혼의 무게가 21 그램이라는 가설이 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몸무게가 21그램이 줄어든다고 해서 만들어진 가설인데, 물론 과학적인 입증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충분히 매력이 있는 가설이고, 잘만 사용하면 흥미로운 영화적 소재가 될 거 같은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와 <버드맨>으로 유명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이러한 소재를 이용해 영화를 제작했다. <21 그램> 리뷰다.




영화는 살 가망이 없었지만 다행히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게 되어 새 삶을 살게 된 대학교수 폴 리버스와 좋은 남편을 만나 두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모든 것을 잃게 된 크리스티나 펙, 범죄자였지만 손을 씻고 종교를 믿으며 구원받고 싶어 하던 중, 사람을 치게 된 잭 조단 이 세 명이 하나의 사고로 인해 얽혀드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혀 관련이 없지만 각자 여러모로 힘든 사정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눠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주는 연출과 시간을 넘나들고 각각의 사건이 교차하는 형식은 이냐리투의 초기작의 느낌과 PTA의 <매그놀리아>의 모습이 다분하다. 하지만 <21 그램>은 이냐리투의 다음 작품인 <바벨>보다 더욱 긴밀하고 설득력 있게 연관되어 있어, 몰입도가 훨씬 더 높다는 점이 장점이다. 처음에는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엮여들고, 이것이 각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전개는 여전히 흥미롭지만 중간에 러브라인으로 빠지는 신들이 거슬리기도 하며, 여느 작품보다 시간 넘나들기를 많이 해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혼의 무게라는 21 그램이란 제목처럼 삶과 죽음에 연관된 인물들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한 생명을 앗아간 사람, 그 때문에 완전히 뒤바뀐 삶을 사는 사람, 그로 인해 새 삶을 얻은 사람, 총 세 명의 이야기로 영혼과 삶의 무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영혼의 무게라는 21 그램을 지키기 위해 이 삭막하고 녹록지 못한 현실에서 버티려 발버둥 치는 삶의 아이러니함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또한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 버티고 버틸 수밖에 없다는 안타깝고 슬픈 현실도 그려낸다. 사랑과 복수, 그리고 죄의 무게는 얼마인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영혼은 21 그램이라는 가벼운 무게지만, 절대로 마음대로 얻을 수도, 함부로 빼앗을 수도 없으며, 원하는 대로 버릴 수도 없다. 고작 21 그램을 함부로 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살아가야만 하며, 그 과정에서 21 그램은 우습게 보일 정도의 엄청난 무게를 짊어진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옴니버스 형식임에도 <21 그램>은 연기력이 상당히 돋보인다. 우선 상당히 익숙한 배우들이 주연을 꿰차고 있다. <월터의 현실은 상상이 된다>에서 숀 오코넬 역으로 익숙한 숀 펜은 죽어가던 중 새 삶을 얻은 폴 리버스를 아주 훌륭하게 연기한다. 이렇듯 숀 펜의 연기력도 뛰어났지만 후술할 두 주연 배우가 더욱 인상 깊었는데, 바로 베네치오 델 토로와 나오미 왓츠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콜렉터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알레한드로 역으로 먼저 만났던 베네시치오 델 토로는 종교에 빠진 채로 벌을 받겠다고 나서는 잭 조단을 압도적으로 연기한다. 그리고 크리스티나 펙을 맡은 나오미 왓츠의 연기력에 깜짝 놀랐다. <킹콩>, <더 임파서블>, <버드맨>으로만 만났던 터라 연기를 잘한다는 인식은 별로 없었는데, <21 그램>에선 정말 놀라운 연기를 선사한다. 극 중 폴에게 집에서 나가라며 소리치는 연기는 단연 압권. 그리고 <님포매니악>으로 눈도장을 찍은 샤를로뜨 갱스부르도 출연해 열연한다.

개인적으로 <바벨>보다 더 좋았던 영화다. 난해하기는 하지만 이해를 못 할 정도는 아니며,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 보는 재미도 있다. 이냐리투 감독의 또 다른 훌륭한 작품이다.




총점 - 7.5
고작 21 그램 때문에 삶이 계속되는 아이러니.
매거진의 이전글 <바벨/Babel>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