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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Nov 20. 2020

<맹크/Mank>

황금시대의 이면을 조명하는 데이빗 핀처의 신랄하고도 놀라운 화술.

아카데미 등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거나 개봉하기도 전에 명작일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 작품을 관람할 때면 좋은 영화를 본다는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혹시 실패했을 때, 내가 영화를 보는 눈이 없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단순히 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서인데,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명작이란 소리를 듣고 관람했을 때 실망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번 데이빗 핀처의 <맹크>도 그런 작품이었는데, 이번에는 어땠을지. <맹크> 리뷰다.




영화는 사회 비판가이자 알코올 중독자, 그리고 작가인 허먼 J. 맹키위츠가 세기의 작품인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 193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롯해 여러 사건들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번에도 실망하지 않았다. 가히 걸작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영화다. 개인적으로 <세븐>이나 <소셜 네트워크>에서 보였던 데이빗 핀처의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데, <맹크>에서도 영화를 풀어나가는 화술 하나는 끝내준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사와  정말 지루하고 어려울 것 같은 이야기임에도 유머와 함께 잘 전달해 지루하기는커녕 오히려 재미까지 느껴지는 작품이다. 영화가 꽤나 불친절하기는 하지만 사전에 걱정했던 것만큼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며,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봤다. 영화는 흑백 화면과 동시에 고전 영화 같은 편집과 연출, 특히 필름 영화에서 보이는 특징들도 보였는데, 굉장히 독특하고 좋은 점이지만 고전 영화를 잘 안 보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영화는 할리우드의 황금기, 1930-40년대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하면서 유/무성 영화의 갈등, 할리우드의 제작사와 영화 제작 구조 등의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지만 이를 찬양하기보다는 대공황이라는 당대 미국 경제 상황을 버무려 황금기 그 이면의 어두운 부분을 냉소적이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좋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던 분명한 황금시대지만, 위선적인 행동들, 영화를 돈으로만 보는 등 반성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는 점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데이빗 핀처다. 1930-4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30-40년대의 할리우드의 역사나 작품들, 그리고 더 나아가 미국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면은 훨씬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시민 케인>의 각본가를 그리고 있어서 <시민 케인>의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그로 인해 <시민 케인>을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히려 맹키위츠라는 한 인물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시민 케인>은 굳이 안 봐도 될 것 같다. 물론 <시민 케인>을 보면 여러 메타포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 보지 않으면 대체 왜 이런 장면들, 소품들, 대사들이 등장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관람은 안 하더라도 <시민 케인>에 대한 줄거리라도 훑어보고 관람하길 추천한다.

영화 보기 전 게리 올드만이라는 캐스팅 하나만으로 연기력을 기대했는데, 맹키위츠 역을 맡은 게리 올드만의 연기력은 정말이지 압도적이다. 영화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 게리 올드만은 <맹크>에서도 맹키위츠로 완벽 변신해 열연을 펼친다. 극이 진행될수록 차근차근 쌓아올리다가 후반부에 폭발하는 그의 연기력은 빠져들어 볼 수밖에 없다. 특히 후반부 열변을 토해내는 그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정말 완벽한 연기력이다. 그리고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상당히 준수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사실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레미제라블>에서만 만났는데, 감히 단정 지어보자면 그녀가 보여준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 싶다. 오히려 흑백 화면이어서 미모가 더 빛났던 아만다 사이프리드였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에밀리, 파리에 가다>로 인지도가 상승한 릴리 콜린스도 상당한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비록 적은 분량이지만 극 중 오손 웰스를 맡았던 톰 버크도 후반부에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정말 준수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영화다.

영화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30-40년대 할리우드와 미국을 재현해낸 싱크로율과 디테일이 정말 뛰어나다는 점이다. Hollywoodland 간판부터 시작해 여러 제작사들의 이야기, 그리고 건물과 차까지, 정말 그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흑백 영화 특유의 영상미도 돋보였다. 화려함은 없지만 오히려 분위기 자체는 잘 잡아주는, 흑백 영화의 장점도 느낄 수 있었다.

모두 이해하고 알아들었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후에 <시민 케인>을 비롯해 많은 고전 작품들을 보고 난 후 넷플릭스로 한 번 더 봐야겠다. 올 연말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는데, 정말 만족했다. 연말에 나올 기대하고 있는 작품들이 꽤나 많은데, 벌써부터 설렌다.




총점 - 9
황금시대의 이면을 조명하는 데이빗 핀처의 신랄하고도 놀라운 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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