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Nov 17. 2020

<바벨/Babel>

우연한 인연이 악연이 되는 이유는 부조리한 세상 때문.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품이 유명 감독의 작품이거나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주요 시상식에서 주목을 받았다고 하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원래부터 아카데미를 관심 있어 했지만 자세한 정보들을 알아보는 것은 최근부터인데다가, 유명 작품과 새로 개봉하는 영화를 보는 데에도 급급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다 최근 다양한 영화들을 보면서 많은 영화들을 알아가고 있는데, 오늘 리뷰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바벨>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아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아내를 위해 모로코로 여행 온 미국인 부부 리처드와 수잔, 그리고 수잔을 선물 받은 총으로 맞춰버린 유세프와 아흐메드 형제, 또 리처드의 아이들을 데리고 멕시코 국경을 넘다가 심각한 일에 휘말린 유모 아멜리아, 마지막으로 엄마의 자살 이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청각장애 여학생 치에코, 이렇게 4개의 그룹의 에피소드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시작부터 상당히 독특하다. 아예 관련이 없는 듯한 사람들과 가족들을 보여주고, 크게 4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전개해나간다. 각자 아픔을 가진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교묘하고도 우연한 관련성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을 넘나들고 각각의 사건이 교차되는 부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연출적 부분에서 볼 때 PTA의 <매그놀리아>와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을 융합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마치 국경이 없는 <매그놀리아>같기도 한데, 배경이 확대된 만큼 <매그놀리아>보다 얕아진 감정선은 아쉽기만 하다. 스토리텔링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보여주면서 차별과 부조리가 만연한 현대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회/정치적 문제로 발생한 피해는 개인이 고스란히 받는 안타깝고도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잘 드러낸다. 그리고 감사할 일로 시작된 평범한 인연이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악연이 되어 비극으로 끝나버린 에피소드들로 하여금 역설적인 메시지도 잘 전달한다. 대체로 이러한 메시지를 각각의 에피소드로 잘 전달하는 편이지만, 개인(혹은 전반)적으로 일본 여학생 치에코 에피소드는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관계없는 인물들로 시작을 하더라도 극이 진행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납득이 될 정도의 인연을 만들어놔야 하는데,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데다 연출 자체도 정신없을뿐더러, 영화의 전반적인 사건과의 연결점도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너무 쓸모가 없는 에피소드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너무 일본 사회를 편향된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굳이 치에코를 그런 캐릭터로 만들어놨어야 했나.

워낙의 유명한 배우,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나온다고 해 눈길이 갔지만 사실 그들의 비중은 다른 배우들과 거의 똑같다. 사실상 단독 주연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정도. 그럼에도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인상 깊었으며, 특히 브래드 피트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점이 눈에 띄었다. 또한 유모 아멜리아 역을 맡은 아드리아나 바라자의 연기력도 일품이었으며, 그녀의 조카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도 훌륭했다. 일본 에피소드는 별로였지만 치에코를 연기한 키쿠치 린코는 상당히 좋게 보았다. 청각장애인으로 수화를 통한 연기력이 압도적이며 성기를 노출하기까지 하는 열정도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단지 의문인 것은, 대체 왜 <퍼시픽 림>에선..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조연과 카메오도 많다. <앤트맨> 시리즈로 국내에서도 유명해진 마이클 페냐를 비롯해 어엿한 배우가 된 엘르 패닝의 아역 시절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운 이냐리투 감독의 수작이다. 소통이 배제되고 차별과 부조리가 만연한 현대 사회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훌륭히 전달하는 영화, <바벨>이다.




총점 - 7
우연한 인연이 악연이 되는 이유는 부조리한 세상 때문.
매거진의 이전글 <버드맨/Birdma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