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Feb 06. 2021

<승리호/Space Sweepers>

전체적으로 휘청거리고 종종 황당하지만 일단 내디딘 기념비적인 첫걸음.

2016년 개봉했던 영화 <부산행>을 보고 꽤나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해외에서만 제작되는 줄만 알았던 좀비 영화가 국내를 배경으로 제작되었고, 심지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물론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한국 영화도 점점 다양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2021년, 코로나19를 피해 넷플릭스로 넘어온 또 다른 도전작이 있다. 한국 최초라고 봐도 무방할 SF 영화, <승리호>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는 지구가 병들고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UTS가 만들어진 2092년, 태호, 장선장, 타이거 박, 업동이로 이루어진 승리호 선원들이 우연히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일단 새로운 시도 자체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어설프게 따라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때깔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블레이드 러너>나 <스타워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같은 기존에 할리우드에 등장했던 SF, 스페이스 오페라의 비주얼을 많이 차용한 것처럼 보이는데, 우리나라의 기술력으로 이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상당히 놀랍다. 살짝 정신없게 다가오기는 하지만 액션 연출로 수준급으로 뽑혔다. 국내 영화의 새로운 시도에만 의의를 둔다면 추천드릴 정도의 영화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만으로 무시할 수 없는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일단 예고편부터 가장 걱정되었던 작위적인 대사들은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언어의 문제를 넘어서 절대로 사용되지 않을 대사들을 내뱉는 문제는 계속되며, 굉장히 오글거리며 유머들을 효과적이지 않게 만든다. 나름의 여러 가지 설정들을 첨가했다는 점은 좋지만, 이를 적절하게 녹여내지 못하고, 극이 들떠있는 느낌이 든다.

서사 자체도 상당히 아쉽다.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려고 노력했지만, 눈에 걸리는 부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개연성은 물론, 각 장면 장면의 짜임새도 엉성해 보는 내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뻔하고 심심한 이야기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화려한 그래픽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데, 이 그래픽마저 후반부에는 버겁게 다가온다.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 빈부에 대한 나름의 철학, 그리고 캐릭터들의 뒷배경 등, 넣고 싶은 이야기를 거르지 않고 모두 다 집어넣는 바람에 사족이 상당히 많다. 덕분에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도 감이 잡히지 않은 채 정처없이 흘러간다. 첫 시도라 하고 싶은 것들은 많았겠지만, 조금만 다듬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또한 한국 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건지,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신파도 눈에 거슬린다. 이제는 SF에서도 신파라니! 그 장면이 이해가 가면 몰라, 개연성이 어설프게 짜인 바람에 도저히 울 수가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결국 신파 장면이 나올 때는 굉장히 뻘쭘하다. 분명히 울어야 할 타이밍인데 상황 자체가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신경은 전혀 쓰지 않은 것 같은 결말은 아쉬움을 더욱 진하게 풍긴다.

이야기와 연출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쏟아냈지만, 이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기대를 걸었던 것은 화려한 비주얼과, 주연 배우들의 케미였는데, 그래픽은 만족했지만 배우들의 케미는 아니었다. 주연 4명의 캐릭터는 너무나 따로 노는 데다 앞서 말한 대사 문제도 겹쳐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이들이 웃겨보겠다고 주고받는 유머들은 안쓰럽게 다가올 정도. 송중기는 정말 연기를 못하는 건지, 배역이 어울리지 않는 건지. 김태리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라 기대를 많이 걸었는데,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배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선규가 맡은 타이거 박은 가장 걱정했던 캐릭터였는데, 제일 어색하지 않았다. 유해진의 업동이는 아예 개그 포지션인데, 너무 소모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메인 빌런은 없으나 마나 한 캐릭터로 전락해버렸는데, 애초에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식상한 캐릭터라서 너무 실망했다. 왜 악당은 이렇게 전형적이어야만 하는가. 특별출연처럼 등장한 김무열과 김향기가 제일 반가웠다.

특정 장르를 새롭게 시도했다는 점은 정말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변명만으로 아쉬운 점을 묻어버릴 수는 없다. 비록 <승리호>는 아쉬운 작품으로 남았지만, <승리호>의 장점은 챙기고, 단점은 보완한 훌륭한 한국형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가 등장할 때까지 끊임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총점 - 5.5
전체적으로 휘청거리고 종종 황당하지만 일단 내디딘 기념비적인 첫걸음.


매거진의 이전글 <더 디그/The Di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