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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Mar 26. 2021

<고질라 VS. 콩/Godzilla VS. Kong>

무료한 진행, 끝내주는 클라이맥스, 다급한 매듭짓기.

개인적으로 괴수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 장르에 대한 (흔히 덕후라 불리는) 열렬한 팬까지는 아니어도, 웅장함과 위압감을 주는 거대한 괴수가 주는 특유의 카타르시스는 어떤 장르도 선사할 수 없죠. 그래서 <고질라>나 <퍼시픽 림>같은 영화들도 재밌게 봤구요. 때문에 몬스터버스에 빠져있지는 않더라도 <고질라 VS. 콩>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괴수물만이 줄 수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결론적으로 괴수물이 줄 수 있는 스펙터클함이나 카타르시스는 충분히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4년에 개봉한 <고질라>처럼 자연적인 존재와 같은 아우라는 덜하지만, 제목인 <고질라 VS. 콩>처럼 둘의 싸움에서 오는 액션신은 아주 훌륭하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 싸우고 퉁치겠지 싶은 의심도 들었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몬스터버스 영화 중에서 클라이맥스의 액션신 하나만큼은 가장 훌륭했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스케일부터 압도하고, 다양한 전투 능력까지 보여주고 있거든요. 둘의 액션을 기대하고 계신 분, 무조건 극장으로 달려가세요. 또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부서지는 도시의 모습과 새로운 세계의 비주얼을 잘 살려냈다는 점입니다. 클라이맥스 결투는 홍콩에서 싸우는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 <퍼시픽 림>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것이 참 좋았네요. 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보여주기는 하지만 지구 안쪽의 세계를 나름 독창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구요. 이게 괴수물에서만 볼 수 있고, 또 기대하는 장면들이죠.

다만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솔직히 큰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우선 둘의 싸움 원인부터 솔직히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지라 조금은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인이 전작들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복잡한 이유도 아니라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이런 별거 없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초반을 굉장히 지루하게 흘려보내는 점도 아쉽습니다. 그리고 가장 걱정되었던 서사도 엉망진창인 수준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나쁘지는 않다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신경 안 쓸 수가 있을까요. 머리를 비우고 보아도 중간중간 흠칫하게 만드는 스토리는 참 아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게 또 인간들의 서사가 문제를 일으키는데, 어차피 집어넣을 거면 조금 다듬어서 집어넣지, 이것저것 다 집어넣으니 분량 조절마저 실패하고 뭔가 찝찝하게 끊긴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그리고 고질라와 콩의 싸움이기 때문에 이 두 괴수들에게도 각각의 서사가 부여되는데, 이건 뭐 집어넣나 안 집어넣나 상관없을 정도로 훑고 지나가는 수준입니다. 킬링타임 용 블록버스터라지만 이건 너무 신경 안 쓴 거 아닌가 싶더군요.

개인적으로 정말 아쉬웠던 점은 각 캐릭터의 활용입니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부터 밀리 바비 브라운, 레베카 홀, 카일 챈들러, 에이사 곤살레스까지 꽤나 굵직한 배우들이 나오는데, 이 배우들이 하는 건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이전 시리즈부터 캐릭터 소모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서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캐릭터가 차고 넘칩니다. 가뜩이나 인간 서사는 부실한데, 여기에 너무 많은 캐릭터의 이야기를 집어넣으려고 하다 보니, 있으나 마나 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네요. 카일 챈들러와 에이사 곤살레스는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의 캐릭터고, 밀리 바비 브라운은 싸돌아다니기만 하고,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 레베카 홀도 뭔가 하는 척하지만 정작 지켜보기만 합니다. 이럴 거면 아예 단일 플롯으로 통합시키고 고질라와 콩의 대결만 조금 더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애초에 설득되지 않는 플롯을 가지고 씨름하기보다는 작품이 가진 장점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도 너무 성급하게 지은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2시간에 맞춰 자르다 보니 조절을 실패했는지 25분 정도 남겨두고 클라이맥스가 시작되는데, 그 시간 동안 알차게 보여줘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끔찍할 뻔했습니다.

아쉬운 점이 참 많지만 망작 취급을 하지 않는 이유는 영화가 가진 역할을 훌륭하게 잘 해내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스케일과 그래픽으로 무장한 블록버스터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담아내고 있거든요. 비록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극장에서 블록버스터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강점으로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
:무료한 진행, 끝내주는 클라이맥스, 다급한 매듭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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