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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ug 21. 2021

<트랜짓/Transit>

떠남과 남겨짐의 모호한 그 경계에서 생자의 유독한 방랑.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2018년작, <트랜짓>입니다. 이 영화부터 국내에서 페촐트 감독의 인지도가 꽤나 올라갔던 거 같네요. 덕분에 <운디네>는 빠르게 개봉했죠.

여하튼 <트랜짓>은 다른 페촐트 감독의 영화와는 확실하게 다른 지점이 존재합니다. 바로 배경이 현대라는 건데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상황은 그대로 가져가지만 배경이 현대라는 점은 꽤나 독특하고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약간 SF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단순 재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약간 필수적인 요소처럼 느껴지기도 했달까요.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우선 영화는 떠남과 남겨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더 나아가면 난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기도 하죠. 감시당하고 탄압당하는 그 사회가 멀게만 느껴졌는데, 현대로 설정하는 대비되는 이미지가 아주 이질감이 들면서도 강력하게 다가오더군요. 사회적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발전된 현대식 건물과 자동차는 정말 괴리감이 느껴지면서 긴장감과 공포감이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단순 SF 적 상상력만으로 보기엔 아쉽기도 합니다. 이미 두 번이나 겪었던 그 상황이 현대에 다시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겠죠. 요즘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보아하니.. 참 시의적절하게 관람했다는 생각도 들구요.

앞서 말했지만 영화는 결국 떠남과 남겨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난민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인데요. 사실 이제 슬슬 난민을 다루는 유럽 영화는 지겨울 때도 되었는데, 약간 비틀고 변주하면서 여전히 흥미롭게 다가오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네요. 떠나는 자와 남겨지는 자가 나뉘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 비참한 사회를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떠남과 남겨짐,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그 순간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그의 배회를 담아내는 지점도 인상적이고요. 시작부터 떠난 자의 위치에 있었던 그가 남겨짐을 택하고, 뒤돌아보게 된다는 점이 너무 감명 깊게 다가왔네요. 자신이 떠나기 위해 행했던 모든 거짓말들과 행세들이 마리에겐 너무나 아픈 일들이었겠지요. 떠난 자와 남겨진 자, 둘 중에 누가 먼저 잊느냐는 질문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결국 둘 다 잊지 못하고 서로를 찾아 돌아보겠지요. 살아있기 때문에요. 살아남은 자들의 쓸쓸하고 외로운 방랑을 기묘하게 그려냅니다.

여타 페촐트 감독의 작품보다 조금 어둡고 우울하며 혼곤합니다. 때문에 더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난해하고 모호하게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약간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내레이션의 영향이 클 것 같습니다. 정말 뜬금없이 나타나기도 하고, 시점도 3인칭으로 꽤나 독특하게 잡거든요. 이걸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겠네요. 전 소설 읽는 것 같고 좋았습니다. 그 특유의 잔잔한 연출도 좋았고, 무엇보다 색감이 참 인상적이었네요. 아름답고 평화로웠는데 그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게 아이러니함과 비참함을 부각시키기도 하는 것 같아요. 프란츠 로고브스키와 폴라 비어는 페촐트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인 것 같네요. 폴라 비어는 참 뜨는 배우인데, 저는 니나 호스가 더 마음에 드네요..ㅎㅎ

이 영화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금 더 난해하고 모호하게 다가오긴 했지만, 마지막 한방이 있거든요. 저는 페촐트 감독의 잔잔하면서 묵직한 엔딩이 너무 좋네요. 여운이 많이 남아요.




★★★★
:떠남과 남겨짐의 모호한 그 경계에서 생자의 유독한 방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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