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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ug 18. 2021

<바바라/Barbara>

피어나는 행복은 언제나 안에서, 은은히.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2012년작, <바바라>입니다. 페촐트 감독의 경우 초기작들도 꽤 많은데, 국내에 수입된 작품은 이게 시작이라 이 작품부터 보게 되었네요.

페촐트 감독은 항상 전후 분단 상태인 독일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탁월하게 다뤄내는 것 같습니다. 출국 신청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시골 병원으로 좌천된 바바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말 끔찍한 시대를 잘 드러내죠. 그러면서 이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의 탈출만을 바라고, 주변인들에게 정을 붙이지 않고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응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그녀를 신경 써주는 동료 의사 안드레와 청소년 작업소에서 강제 노동과 학대에 시달리는 어린 소녀 스텔라로 인해 심경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선택을 바꾸죠. 이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보다 상당히 담담하고 짧게 보여주는데요. 이게 정말 강하게 다가옵니다. 페촐트 감독은 이런 이미지를 짧고 굵게 보여주는 능력이 훌륭한 거 같아요.

바바라의 희망은 항상 바깥, 국경 너머 서독에 있었지만 정작 자그마한 행복을 발견한 건 안쪽에서였죠.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밤바다를 보면서 흘린 그녀의 눈물은 후회와 절망의 눈물은 아닐 겁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한 행동을 하고, 그 자그마한 인정으로 일말의 행복을 찾았기 때문일 거예요. 희망은 밖에 있더라도 행복은 항상 안에서 피어난다는 것. 격렬하지 않아도 따스하게 스며드는 이 은은한 휴머니즘이 괜히 벅차오르게 만드는 영화였네요. 감시당하고, 감시하고, 또 밀어내고 밀릴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아주 잔잔하게 풀어내는 연출도 돋보입니다. 개인적으로 <피닉스>에서도 인상 깊었던, 그 시대의 아픔을 상당히 생략하는 연출도 보여주는데, 굉장히 좋았습니다. 이런 생략을 통해 오히려 그 시대의 끔찍함을 부각시키기도 하거든요.

니나 호스와 로날드 제르필드는 페촐트 감독의 페르소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둘의 연기가 정말 훌륭하기도 하고요. 영화 속에 나오는 둘의 관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영화를 보고 <피닉스>를 보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다만 아쉬운 점도 보이긴 했는데, 이미지와 캐릭터의 구축보다는 각본 자체의 짜임새만으로 감동을 전하려고 한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네요. 물론 각본 자체가 훌륭해서 좋지만,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서요. 절제한 거 같아 보이지만요. 또 상당히 잔잔하고 조용한 연출에다 대사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지루하고 졸 수도 있는 영화에요. 이 점은 유념하셔야겠네요.

좋네요. 전 페촐트 감독의 영화들 아주 좋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스타일 자체는 비슷한 거 같은데, 그럼에도 좋은 감독들이 있잖아요. 페촐트 감독이 그중 한 명 같습니다. 다음 영화들도 기대가 되는군요. ^^




★★★☆
:피어나는 행복은 언제나 안에서, 은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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