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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ug 21. 2021

<운디네/Undine>

끝내 거스르지 못하고 떠내려간 비극적 설화를 신비롭게 재해석한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2020년작, <운디네>입니다. <트랜짓>이 은근 반응이 좋아서 빠르게 수입이 되었는데요. 개봉 당시 <썸머 85>와 함께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안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운디네>는 페촐트 감독의 이전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꽤나 많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일단 특유의 연출법은 동일합니다. 정말 잔잔하고, 극적인 부분은 없죠. 게다가 여기엔 몽환적이고 오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잔뜩 첨가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점은 역사적 비극이 아닌 신화를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그럼에도 독일 역사, 여기서는 더 깊게 들어가서 건축사까지 다루고 있지만 주된 내용은 운디네 설화를 다시 바라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트랜짓>에서 현대와 전쟁의 그 이질적인 충돌에서 오는 기묘함을 여기선 현대와 고전 설화의 접목을 통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나는 게 물에서의 운디네 같네요. 운디네는 물에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물에 빠져도 멀쩡하게 일어나며, 물에서는 성인 남성도 저항하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있게 묘사되죠. 또 사랑이 있어야 심장이 뛴다는 점도 설화 속 운디네와 비슷하구요. 정말 물의 요정처럼 그려지고 있는데, 이게 참 어색하면서도 신비롭게 다가왔네요. 

그리고 로맨스에 좀 더 치중한 것 같았어요. 결국 영화는 상실된 사랑의 아픔을 겪은 자가 물로 회귀하는 그 비극을 오묘하고 신비롭게 그려내는 작품입니다. 사실 운디네 설화는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지만, 운디네가 스스로, 사랑을 위해 떠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여기서 아주 독창적인 시각이라고 느껴지는 게, 영화에서 운디네는 크리스토프를 위해 직접 물로 돌아가죠. 신화도 발전한다는 것과, 그것을 따라 재해석했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역사도 잊지 않습니다. 신화가 변하듯이, 역사도 변합니다. 영화는 자주 반복되는 신들을 보여주는데요. 그 반복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하는지가 주목되죠. 역사도 마찬가지라는 듯 보였습니다. 이 태도는 <트랜짓>에서도 보였는데, 여기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마치 연장선처럼 느껴졌네요. 사실 베를린은 역사를 지워나가는 도시입니다. 당장 유명한 베를린 장벽도 빠르게 뜯겨나갔죠. 영화에서 언급되는 훔볼트 포럼도 훔쳐 온 것이고요. 이렇듯 영화는 상실된 사랑과, 소실된 역사를 설화의 훌륭한 재해석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영화가 대중적이지는 않아요. 물론 페촐트의 모든 영화들이 그렇지만 이 영화는 특히나 난해하고 어렵기도 하네요. 각각 장면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도 하고, 비유와 은유, 상징들이 많으며, 무엇보다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운디네가 누구인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더 많은 걸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많은 상징 중에 저는 그 잠수부 모형이 인상적이었는데, 크리스토프와의 인연을 투영한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만 제외하면 참 훌륭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페촐트 감독도 뺄셈의 미학을 아주 잘 아는 듯하네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생략되는 부분들이 많은데도 인상적입니다. 폴라 비어는 <트랜짓>에서보다 인상적이네요. 프란츠 로고브스키도 좋았고요.

아직 극 중 등장한 대사 '형태는 기능을 따라간다'라는 대사가 완벽하게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걸 조금 풀어낸다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올 거 같네요. 여러모로 좋았습니다. 참 신비로웠고 몽환적이기도 했구요. 페촐트 감독 작품 중에 가장 흡입력이 좋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




★★★★
:끝내 거스르지 못하고 떠내려간 비극적 설화를 신비롭게 재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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