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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ug 22. 2021

<올드/Old>

M. 나이트 샤말란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상상력과 반전, 그리고 스릴러의 귀재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당장 이름을 알린 <식스 센스>, 그리고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23 아이덴티티>만 봐도 그렇죠. 그렇기에 나름 기대를 걸었습니다. 샤말란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게 처음이기도 했구요.

우선 상상력 자체는 좋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저 시간이 빨리 간다는 장소에서 오는 공포는 꽤나 강렬하죠. 언제나 죽음은 인간의 본원적 공포니까요. 과정이 어떻든 죽음이라는 결말은 항상 무섭게 다가오는데, 일단 그것을 안고 들어가는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이 철학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시간의 흐름은 성장의 기쁨과 동시에 이별의 아픔까지 수반하는데, 이게 빠르게 다가오니 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지더군요. 안 그래도 시간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고, 심지어 보이지도 않는 존재인데, 이것이 빠르게 흘러가면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보자 하니 꽤나 스릴 있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시퀀스를 길게 가져가기보다는 짧은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폭풍처럼 휘몰아치는데, 어느 지점이 지나면 뭉클한 드라마적인 요소도 보여줍니다. 이건 꽤나 인상적입니다.

다만 문제는 이 상상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숱하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저의 글을 보면 넷플릭스 영화를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수도 있는데, 제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소재만 믿고 대충 만든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거든요. <올드>에게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단 영화의 구성 자체가 굉장히 어수선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일련의 사건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데, 이것을 구성하는 방식이 딱히 보이지 않고 그저 늘어놓은 듯한 느낌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에 빠져들다가도 피로감으로 인해 몰입감이 깨져버리고, 그러면서 영화 설정에 대한 구멍이 발견됩니다. 저는 정말 보면서 긴장감보다 이게 정말 가능한 상황인가에 대한 의문이 더 많이 들었어요. 시간 흐름 자체도 약간 불공평하게 적용되는 것 같기도 했구요. 그런데 영화가 가진 무엇보다 큰 문제는, 영화 스스로 이 구멍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포기한다는 점입니다. 차라리 이런 구멍들을 신경 쓰지 않는 일관된 태도를 보인다면 모를까, 영화는 어떻게든 애를 쓰다가 그냥 손을 놓아버려요. 꾸역꾸역 따라간 관객의 입장에선 당혹스럽기 그지없죠.

공포 스릴러를 기대하고 가신다면 그리 만족스럽게 보시진 못할 거 같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무섭지가 않아요. 저 진짜 공포 영화 못 보는데, 한 번도 긴장하지 않았습니다(물론 초반엔 '어 뭐 나오나?' 싶은 순간들은 있었지만 나중에 가선 무덤덤해지더군요). 감각적으로 다루지 못한다면 자극적으로 공포를 심어줄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이게 또 12세 관람가가 찍히는 바람에 적나라하게 나오지도 않아요. 그렇다고 12세 치고는 수위가 높기도 하고. 약간 엉망진창입니다. 또 반전이랍시고 뭔가 나오는데, 이게 참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도 아니고 아주 가관입니다. 그래도 후반부에는 나름 뭉클한 드라마도 선보이는데, 엔딩이 정말 깨더라고요. 배우들은 매력적이지만 뭘 딱히 보여줬다는 느낌은 안 들고요. 토마신 맥캔지 얼굴만 보다 나온 거 같네요.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설정 속 인물들의 리액션들을 나열해놓기만 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건들의 연속이지 하나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많이 힘든 수준이에요. 초반부까지는 참 좋았는데 가면 갈수록 보기가 힘들더라구요. ^^;;




★★☆
번뜩이는 철학적 상상력만으로 힘겹게 끌고 가다 결국 스스로 놓아버릴 때의 당혹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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