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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ug 22. 2021

<인질>

여름 성수기 마지막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인질>입니다. 황정민 배우는 작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이어 올해에도 나타났네요. 역시 여름엔 황정민 영화가 하나씩은 나와야 제맛입니다.

사실 <인질>의 설정들 자체는 완전히 새롭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일단 유명 배우가 납치당하는 <세이빙 미스터 우>란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다, 배우가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는 설정은 당장 올해 초 <차인표>에서 선보였거든요. 아 물론 똑같은 설정임에도 <차인표>보다 훨씬 인상적이고 몰입도도 높습니다. 유명 배우가 학교 샤워장에서 뻘짓하다가 땅속에 갇히는 것보다 싸이코패스 납치범들에게 납치당하는 게 훨씬 스릴 있고 무엇보다 재밌으니까요. <인질>은 어찌 보면 정말 황당할 수 있는 설정을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으로 꽤나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 잇는 편입니다. 사실 이 설정을 보면서 정말 걱정스러웠던 점이, 납치라는 심각한 상황에서 황정민의 유명 대사들로 웃음을 주려고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닌가 했는데, 상당히 건조하고 잔혹한 분위기를 유지한 점은 인상적이었어요.

다만 이 설정을 큰 흐름으로 연결 짓는 부분까지는 좋았지만, 그 흐름이 너무 진부합니다. 설정만 다르지 다른 비슷한 영화의 플롯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요. 납치범 캐릭터도 새롭지 않지, 이들이 하는 범행(총기나 사제 폭탄 제작)도 국내 배경에 그렇게 어울리지 않구요.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시내 한복판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려버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지요. 그리고 이들의 범행 동기마저 황당할 정도로 단순하고 무의미합니다. 경찰을 다루는 방식도 너무 무성의하고요. 또 납치범들의 캐릭터성 자체가 확고하게 잡혀있지 않습니다. 서로 모여서 이것저것 치밀한 척하는데, 뭔가 해내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냥 던져놓고 보는 스타일들인데, 여기서 긴장감이 팍 죽었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는 황정민 본인을 내세운 정당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황정민이 뭔가를 해내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도 아니고, 좀 더 넓게 봐서 배우들의 고충을 풀어내는 것도 아닙니다. 시도는 하지만 너무 얕아서 감지가 되지 않는 수준이에요. 단순 흥미를 위한 설정으로만 사용이 된 거죠.

이렇게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어느새 황정민은 본인이란 느낌보단 하나의 캐릭터처럼 느껴집니다. 정작 영화가 가장 잘 활용하고 살려두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설정이 평범한 작법에 그저 그렇게 녹아들어버린 것이죠. 영화를 제일 밑에 받쳐주고 있었어야 할 그 설정이 평범한 스토리텔링을 지나고 나면 잊혀 있습니다. 이 흥미로울 수 있는 설정을 가져다가 특별한 점 하나 만들지 못한다면 대체 뭘 보라는 걸까요. 그럼에도 황정민 배우는 열연합니다. 이리저리 구르는 황정민 배우를 여름에 보는 맛은 확실하네요. 범인들은 일부로 영화판에서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을 쓴 거 같은데, 연기가 인상적이긴 했으나 연극적인 톤이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드라마에 더 잘 맞을 거 같다고 해야 하나. 아, 그리고 수위는 꽤나 높은데, 자극성도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타격감도 약해요. 액션에서 오는 쾌감은 생각보다 덜했네요. 액션의 대립 구도도 어수선하고요.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모가디슈>와 비교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이고, <싱크홀>을 보진 않았지만 그것보단 나을 거 같아요. 코믹한 요소를 빼고 처절하고 담백한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영화를 내놓은 것이 나름의 미덕이네요. ^^




★★☆
:종점에 도착하고 나서 돌아보니 정작 이야기를 받쳐줘야 했던 인상적 설정은 잊힌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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