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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Y Dec 07. 2020

[드라마]구미호뎐

2020년으로 시작해서 1980년에 끝난

[드라마]

16. 구미호뎐

-결국은 신파군요, 2020년으로 시작해서 1980년에 끝난.



 판타지와 로맨틱 코미디. 내 드라마 취향 중 가장 끝에 있는 장르다.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면 낯설어서 스토리에 잘 이입이 안 되고, 로맨틱 코미디는 클리셰가 주를 이루다보니 뻔해서 그렇다. 이런 내게 구미호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구미호뎐'은 전혀 흥미롭지 않은 드라마였다. 솔직히 귀신 나오는 것도 무섭고. 그렇게 나는 기대감 0으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그런데 1화가 끝날 때 내 생각은 바뀌었다. '이거 꽤 괜찮을 수도 있겠다.'로


 영화나 드라마, 연극 같은 작품을 분석할 때 극의 재미보다는 의의에 맞춰왔다. 그래서 조금 취향이 아니어도 의의가 있으면 관심이 간다. '구미호뎐'이 그랬다. '구미호뎐'은 로맨스지만 전형적인 클리셰는 아니었다. 로맨스에는 클리셰가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깬 것이다. '2020년이 왔구나.'를 느꼈다.



드디어 나왔다주체적인 여자 캐릭터 '남지아'

tvN '구미호뎐' 1화. 남지아가 이연을 시험한 뒤 목에 주사기를 꽂았다.

'구미호뎐' 1화에 나온 남지아 서사는 강렬했다. 남지아는 어렸을 적 여우고개에서 교통사고를 겪고 부모님을 잃었다. 문제는 말 그대로 부모님을 '잃어버렸다'라는 것. 남지아 부모님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남지아는 이에 의문을 갖고 부모님이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남지아는 미스테리 프로그램PD가 되어 부모님 사건의 행방을 찾았다.


그런 남지아 앞에 이연이 나타났다. 초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사내. 남지아는 이연을 떠보지만 이연은 모른 체했다. 결국 남지아는 캐묻는 것을 포기했고, 이연도 남지아 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남지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남지아는 이연 집에서 이연을 기다렸다. 이연과 대화하던 남지아는 돌연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다. 놀란 이연은 같이 뛰어내리며 남지아를 구했다. 그러나 남지아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너를 기다렸어." 잠시 후 남지아는 이연 목에 주사기를 꽂았다.


일에 열정적인 캐릭터는 많았다. 그러나 무서운 존재를 보고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잘 걸렸다는 듯이 이연을 시험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연을 다루려고까지 했다. 남자 주인공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착하지 않은' 성격까지 가진 여자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드디어 클리셰가 덜해지나 했다.



점점 틀어지는 전개 방향이연바라기 '남지아'

tvN '구미호뎐' 3화. 이무기 제물이 될 위기에 놓인 남지아를 구한 이연.

그런데 극이 전개될 수록 남지아가 하는 것은 없었다. 남지아와 이연은 의문의 사건이 벌어진다는 어화도로 향했다. 남지아는 부모님 사건에 단서가 될까 싶어서, 이연은 전생의 연인인 아연을 볼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때까지만해도 사이가 좋지 않던 두 사람은 서로 날을 세우며 어화도로 향했다.

어화도에서 남지아는 섬 사람에게 흉기로 위협을 당했다. 이연은 흉기로 위협하는 사람을 물리치고 남지아를 구했다. 그러나 남지아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지아는 이무기를 깨우는 재물로 이용되며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때 이연은 다시 나타나 구미호 포스를 뽐냈고, 그렇게 남지아는 이연에 의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래, 100번 양보해서 힘 센 구미호가 힘 약한 인간을 구해줄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로맨스니까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구해줬다고도 치자.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닌가. 남지아가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힘이 없으면 머리로, 패기로 사건에 도움되는 정보를 얻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남지아는 그저 섬을 돌아다니며 취재만 할 뿐이었다. 극 속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그저 흔하디 흔한 여자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1화에서 보여줬던 당돌함과 총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에 연루된 거니까. (어화도 사건은 이랑(김범 분)이 꾸민 일이었다. 초인들의 계략을 인간이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여기까지 남지아는 부모님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다. 문제는 이연과의 사랑이 시작된 후다. 



결국 뻔하디 뻔한비련의 여주인공이  '남지아'

tvN '구미호뎐' 15화. 자살로 이무기를 제거하려는 남지아.

]어화도 사건 이후 남지아는 이무기에 빙의됐다.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남지아 몸에 들어간 것. 남지아는 부모님 찾기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위기를 맞이했다. 남지아와 이연은 이 이무기를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남지아는 때때로 이무기에 빙의해 이연을 공격했고, 남지아를 공격할 수 없던 이연은 남지아를 타일렀다. 남지아는 그런 자신을 자책하며 힘들어했다. 자신이 이연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중 남지아는 부모님을 찾았다. 이연이 사건을 꾸며 또다른 이무기(이태리 분)에게서 되찾아 준 것. 그렇게 남지아는 처음 목표였던 이연에 의해 '부모님 찾기'를 완수했다.


남지아는 또 다른 이무기와 엮이기도 했다. 이무기는 남지아에게 "너를 갖겠다"라고 선포했고, 남지아는 거절했다. 이무기는 남지아 주변 인물들의 목숨을 가지고 남지아에게 데이트를 강요했다. 결국 남지아는 이무기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남지아 속 이무기의 힘은 점점 강해졌고 남지아를 잠식해갔다. 그 사이 또 다른 이무기도 전염병을 퍼트리며 인간을 해치기 시작했다. 결국 남지아는 자살로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를 안 이연은 남지아의 총을 빼앗고 이무기 비늘을 삼키며(이무기를 자기 몸으로 옮겨올 수 있다) 또 다른 이무기를 안고 삼도천으로 향했다. 다시는 환생할 수 없다는 삼도천으로.


'구미호뎐'에서 일어난 사건 중 남지아가 해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지아의 부모님도 이연이 찾아줬고 이무기를 없앤 것도 이연이었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마무리로 남지아의 이야기는 끝났다. 남지아는 이연에, 이무기에 휩쓸려 다니기만 했다. 지금도 드라마를 떠올리면 슬퍼하는 남지아와 사건을 해결하는 이연만 남는다. 1화에서 봤던 주체적인 여자 주인공은 사라지고 없었다. 2020년은 사라지고 1980년대의 신파만 남았다.



만약 '구미호뎐' 1화에서의 남지아가 주체적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구미호뎐'의 인기는 대단했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것.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니까. 예상했던 내용과 진행되는 내용의 괴리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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