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누가 누구한테 기생한다고?
왜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을까. 기생이라는 행위에는 주체와 객체가 있다. 기생을 하는 기생충과 착취당하는 숙주. 따라서 누가 기생충이고 누가 숙주인지 의문을 갖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 기생충과 숙주가 너무 명확하게 제시돼서일까. 그렇다고 해도 영화는 은유, 메타포의 매체 아닌가. 보이는 게 그대로가 아니라는 건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걸 알면서도 부잣집이 숙주, 가난한 가족이 기생충이라고 이해한 것은 우리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와서일 것이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 가족에 기생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었다. 노동의 가치를 속였다. 대학교 졸업장과 환경을 조작해 박 사장 가족이 원하는 형태의 노동자로 둔갑했다. 명문대 과외선생님으로, 스펙 좋은 미술 치료상담사로, 경력 많은 수행비서와 가사도우미로 기택의 가족을 고용했다.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지급되는 임금과 노동의 가치는 동등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기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완벽히 설득되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가 지급되면, 노동의 가치보다 더 많은 대가가 지급되면 '노동'이 아니라 '노동자'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박 사장 가족의 태도 때문이다. 박 사장은 사적인 필요를 위해 주말근무까지 당연하게 요구했다. 우스꽝스러운 분장까지 곁들여서. 박 사장의 부인, 연교도 마찬가지였다. 늦은 시간 '엑스트라 오더'까지 추가하며 음식을 주문했다. 노동은 노동자가 살아가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그런데 노동자 그 자체가 도구가 되어 고용자의 모든 요구에 종속됐다.
한술 더 떠 노동의 가치를 낮추려는 시도도 보인다. 어수룩해 보이는 기우를 보고 민혁보다 적은 과외비를 지급했던 연교. 처음부터 적은 과외비를 준비한 게 아니었다. 기우를 만나보니 적은 돈을 줘도 될 것 같은 만만함이 보이자 즉석에서 뺐다. 이미 사용자의 내면에는 노동자에게 적은 임금을 줘야겠다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던 것이다. 틈만 보이면 노동의 가치를 절하하려는 사용자의 마음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더욱 슬펐던 것은 이 과정에서 나타난 을들의 싸움이다. 박사장 가족은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지만 다른 일자리에 비해 높은 급여를 줬다. 질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충숙과 문광에게 부잣집 가사도우미 일은 다신 없을 기회였다. 그래서 충숙은 문광의 알레르기를 이용해 '질 좋은 일자리'를 차지했다. 사실 가사도우미를 꿈으로 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지만 일 할 기회 자체가 없는 이들에게 박 사장집의 가사도우미는 마지막 보루였다.
기택의 가족은 시간 외 근로와 열악한 노동환경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라는 듯 참고 넘겼다. 그에 대한 불만 토로 없이 그저 좋은 일자리로 여기며 차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냄새'라는 본능적인 수치까지 건드리는데 누가 괜찮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표출하지 못했다. 마치 사회생활이라는 명분 아래 선배의 폭언을, 회식에서의 성추행을 견뎌내는 우리의 삶과 같았다. 결국 기택은 감수하라고 강요한 사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분노를 터트렸다.
영화<기생충>에 대한 가장 지배적인 평가는 계급 간 갈등을 우스꽝스럽게 풀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급 간 갈등에만 집중하는 사이 사회가 노동을 대하는 자세는 잊혀졌다. 이 영화에 씁쓸함을 느낀 사람은 저소득층 뿐만이 아니다. 대기업에 다니며 소득 상위 30% 안에 들어가는 중산층, 명문대에 진학해 엘리트 소리를 듣는 대학생들 등 상류층 사람들에게도 씁쓸함을 남겼다. 하류층이든 상류층이든 노동자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고용되어야하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다. 누군가에게는 기생당할 숙주로서 느끼는 씁쓸함.
"안 되는 게 어딨어. 시키면 다 해." 금요일 오후 5시, 협력업체에게 월요일 오전까지 디자인 시안을 주문하라던 선배의 지시에 지금 가능하냐고 묻자 선배가 한 대답이었다. 디자인의 질 자체는 낮았지만 우리의 요구를 가장 잘 들어주는 협력업체였다. 질에 비해 많은 돈을 지불하니 당연하다는 마음이 전제돼 있었다. 이 부서로 처음 발령 받았을 때, 갑질하지 말라는 말을 가장 먼저 했던 선배였다. 그런 선배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 순간이었다. 타 업체보다 많은 돈을 주는 우리와 그에 비해 질 낮은 디자인을 주는 하청업체. 누가 기생충이고 누가 숙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