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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덕 Feb 13. 2019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거라고?

포기도 용기가 필요하다

"담배나, 게임 같은 것에만 중독이 있는 게 아니야. 고시에도 중독이 있더라."


모두가 출근한 오전 11시쯤, 아침에 한바탕 밀려드는 차들을 전부 받아낸 후 찾아온 잠깐의 휴식시간, 나와 차를 같이 닦으시던 아저씨 한 분께서 내가 21살이라는 말을 들으시자 나에게 조심스레 자신의 얘기를 꺼내셨다.


"21살이라.. 보기만 해도 부럽네. 나도 참 열심히 살려고 했었는데."

"지금도 열심히 사시잖아요 삼촌."

"지금도 열심히 사려고는 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그런지, 열심히 산다는 느낌이 아니고 그냥 하루하루 버티는 느낌이야."


모두 출근하고 꽤나 조용한 동네에서, 나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서있었고, 아저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유덕아, 너는 20대를 꼭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보내라. 나는 진짜 이 나이 먹고 제일 후회되는 게 그거야. 나는 20대 때 참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할 수 있는 시간도 있었고, 경제적 여유도 됐었는데, 그냥저냥 앞만 보고 달린다고 다 놓쳐버렸어. 이젠 그러고 싶어도 할 수가 없더라."

"...."

"나는 고시 공부한다고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렸어. 당시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고 하면 그래도 당시에는 꽤나 괜찮은 인재라고 쳐줬는데."


나는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때 차 한 대가 세차장에서 나왔다. 대화가 잠시 끊어지고, 우리는 다시 차를 닦았다. 다른 아저씨 한 분도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 쪽으로 오셨다.


우리는 금방 차를 다 청소하고, 나는 다시 조용한 주유소에서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래 한 번만 더 해보자 하고 또 하게 되더라. 두 번째 보고 나서는 아.. 세 번째 하면 될 것 같은데, 세 번째도 떨어지고, 네 번째는 아까워서 다시 하고... 그러다 보니까 계속 중독처럼 다시 보게 되더라."

"아이, 이 형! 또 그 얘기하는겨?"

"예.. 유덕이한테 좋은 얘기해주는 거죠 뭐... 허허."

"그래.. 좋은 교훈이긴 하지. 유덕아 새겨들어라. 하하하. 어서옵쇼!"


아저씨 한 분이 다른 차 주유를 위해 떠나시고, 아저씨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참... 이렇게 지나고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마음이 참 아팠어. 조금만 더 하면,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시험이란 게.. 그렇죠 뭐.."


아저씨의 얘기를 듣자니, 수능이 생각났다. 내게는 참 될듯하면서도, 이번엔 정말 기대해볼 만하면서도, 항상 안되었던 시험이었다.


"고시 공부 그만두기까지 참으로 힘들었어. 남들은 포기가 쉽다고 하는데 나는 참 그러기가 힘들더라고. 그간 쏟았던 열정, 시간, 돈, 내 20대 청춘 대부분을 바쳤는데, 그걸 버리고 떠난다는 게 참 어렵더라. 그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고."


아저씨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차가 다시 미친 듯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차를 닦고, 청소하며,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나는 공황장애로 다시 수능 보기를 한 편으로는 두려워하면서도, 내 미래에 대해 확실한 대책들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다시 수능을 볼까 고민을 참 많이 했었다.


수능 공부는 최근 몇 년간 내가 가장 많은 노력, 시간, 돈을 쏟아부었던 과정이었고, 실제로 좋은 대학에 합격선까지 꽤나 근접했었고, 다시 준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와 같은 생각들을 했었다.


문제는 내 몸상태였다. 자꾸 몸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그 당시의 감정, 생각, 경험들을 떠올리면, 손이 떨려오고, 숨이 가빠지는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그리고 또 본다 해도, 잘 본다는 보장이 없기에, 만약 망쳤을 경우에 거기서 다시 올 패배감과 좌절감을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이제는 포기하는 게 내 상황상 맞았던 것 같다. 하지만 참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잊을만하면 그냥 수능 다시 봐서 남들 가는 길처럼 나도 평범하게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수능 준비하느라고 공들인 시간, 노력, 돈이 얼만데.. 와 같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내가 입시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그 이후, 포기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포기란, 내가 완전히 마음을 접고, 다른 길을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먹은 일이다. 결국에는 많은 용기를 내, 입시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물론 주변에서 많은 우려가 있었다.


그래도 아깝지 않냐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신기한 것이, 용기를 내 완전히 '포기'를 하고 나니, 전혀 아깝지 않고, 그냥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부담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서니, 그동안 부담감과 집착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던 많은 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해, 도전을 하는 중이고, 이 길이 쉽진 않지만, 나는 나름 이 길을 즐기고,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항상 포기는 나에게 부정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을 '포기' 하고 나니, 포기가 썩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포기는 끝이 아니라, 다른 길로의 새로운 시작의 첫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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