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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덕 Jan 03. 2020

언젠가는

Paul

시간이 2017년에 여전히 멈춰있는 기분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색무취하게 빠르게 지나갔던 2018년이나, 오랫동안 원해왔던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정신없이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쁘게 지나갔던 2019년이 순식간에 끝나버려서였을까.


헤드폰을 끼고 혁오 밴드의 Paul 을 재생해본다.

다시 2017의 봄을 살아내던 때의 향수.


츄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동네 번화가로 나와 동네 친구와 술집으로 향하던 나.

한참을 친구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한탄을 하다 술집에서 나와 항상 집에 돌아오던 골목길.


적당한 취기와 빨갛게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는 시원한 봄 밤바람.

집에 돌아오는 조용한 밤 길 속에서 항상 이어폰을 꺼내 들었던 혁오 밴드의 Paul.


그렇게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혼자 그 노래를 계속 들으며 아파트 단지를 혼자 걷다 집에 들어온다.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고 발을 닦고 양치질을 한 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취기를 빌어 쉽게 잠에 들 줄 알았지만, 잡념에 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계속 뒤척이고 뒤척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5시.


창문으로 서서히 밝아지는 바깥이 보이고,

새벽 5시 반쯤에 거실에서는 아빠가 일어나셔서 밥을 안치시고 출근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창 준비를 하시다가 닫혀있는 내 방문을 한번 열어보시는 아빠.

내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해본다.

아빠는 잠시동안 나를 바라보시다가 방문을 닫으신다.


6시가 돼서야 잠에 들지만, 9시쯤에 바로 떠지는 눈.

깊게 잠들지 못하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아침을 먹는다.


식탁에는 점심으로 냉장고에 반찬을 넣어놨으니 데워 먹으라는 엄마의 쪽지가 붙어있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본다.


티비도 보고, 게임을 하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려도 재미가 없다. 

그냥 의미 없이 시간만 흘려보낼 뿐이다.


며칠 전에 산 책도 펴보지만, 5분 만에 책을 덮고 결국엔 다시 소파에 눕는다.


적적함을 없애고자 티비를 틀어 소리만 들으며 천장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본다.


갑자기 울리는 카톡 알림.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친구가 수업이 너무 재미없다는 내용의 연락.

답장을 하지 않고 다시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다.


갑자기 느껴지는 무력감, 고독감, 외로움.

다들 바쁘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혼자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뭐라도 해야지 하고 일어서지만, 이내 다시 무얼 할지 몰라 다시 소파에 되돌아온다.


어느덧 부모님의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다시 슬리퍼를 신고 츄리닝 차림에 동네를 걸어 혼자 피시방으로 향한다.


혼자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피시방을 나온다.


정처 없이 동네를 걷기 시작한다.

카톡방에 친구들에게 오늘 나올수 있는 사람이 없는지 물어보지만, 다들 학교 때문에 바쁘다는 답장.


계속 혼자 동네를 걷는다.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동네, 나는 이어폰을 꺼내 혁오 밴드의 Paul을 재생시킨다.

그냥 동네를 몇 시간이고 이리저리 걸으며, 

언젠가 나도 지금을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웃으면서 추억할 날이 올까?라는 생각을 계속 머릿속에 되뇌인다.


헤드폰을 벗고 잠시 그때 생각에 조금 우울해진다.

이내 입가에 왠지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행복한 2020년이 될까?


예전으로 돌아가

예전에 산다면
우린 우리 마음만 돌보자
새벽을 컵에 담아
날이 차오르면
두 잔을 맞대보자


너와 내가 결국엔 우리가 버려버렸네요
한창 어린 밤 같던 우리 마음도 늙어버렸네요


I hear bugling that boo-woo
It's your victory
I hear bugling that boo-woo
It's your victory


아 잠시 기다렸던
마음은 참 빨라
왜 우린 등 떠밀려 저물까
바싹 마른 추억을
태우는 연기는
왜 이렇게 매울까


우린 손금 속에 살고 있네 난 그게 참 슬퍼
우린 아는 만큼만 했었더라도 충분했겠네요


I hear bugling that boo-woo
It's your victory
I hear bugling that boo-woo
It's your victory


I hear bugling that boo-woo
It's your victory
I hear bugling that boo-woo
It's your victory


-혁오 밴드의 Paul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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