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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미 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물러간 장맛비 뒤에 태양이 강렬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집 안에 여름 냄새가 감돈다. 참 변하지도 않는, 묘하게 추억을 자극하는 냄새다. 부엌에서는 엄마가 수박을 자른다. 아빠는 거실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고 있다. 곧 태양이 집안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런 열기 속에서, 잊고 있던 여름을 다시 맞이할 것이다.
# 2
다음 주를 마지막으로 알바는 끝이 난다. 석 달은 꽉 채우고 그만두는 셈이다. 처음 정식으로 출근했던 날, 매니저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왜 첫 알바로 이런 데를 왔노. 난 추천 안 한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여기서 석 달 일하고 나면 다른 거 못 할 일이 없다.” 그 말이 내 가슴 속 깊이 남았다. 첫 달 내내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꼭 3달은 버텨보고 싶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목표했던 석 달이 눈앞에 왔다.
전공을 살려서 취준을 하기로 했다. 대학 졸업 이후 우울증과 족저근막염 뒤에 숨어서 취업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해서 했던 게 브런치였고, 알바였다. 나의 2024년 상반기는 이 두 가지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좋든 나쁘든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죽음을 바라보던 나를 취준의 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 취업을 준비한다는 말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책임지겠다는 뜻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책임을 마주한다.
# 3
낮은 가능성에 도전한다. 그에 따라 나의 거의 모든 것을 취준에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브런치는 이제 못 할지도 모른다. <까마귀의 종잇장>은 한 번씩 쓸 수 있을 테지만 소설은 어림없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글쓰기의 단상에서 내려온다. 어둠 속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준비한다. 어김없이 태양 가득할 다음 해의 여름, 그 빛을 온전히 맞이할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