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안정감

영혼에 대한 담론

by 자오

1 서론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식당 주인은 천 같은 것으로 식기를 닦고 닦고 또 닦았다. 줄거리는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식기를 닦는 그 장면만은 내 가슴 속에 남았고, 영화 감상문 숙제에 그 장면이 유독 좋았다고 써냈었다. 10대 초반의 내가 왜 그런 감상을 느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유를 아저씨가 된 지금의 생각을 통해 재구성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2.1 폐허 속 그릇

오랫동안 방치되어 먼지가 쌓이다 못해 눌어붙은 식기를 떠올려 본다. 폐허 속 어딘가에서 나뒹구는 그런 것을. 그곳에 총 몇 개의 식기가 존재하는 걸까? 알 수 없다. 이미 깨져버린 것도 있고, 이 접시의 파편과 저 접시의 파편이 뒤섞여 식기의 개수를 헤아릴 수 없다. 아직 파괴되지 않은 유리컵 하나를 집어 든다. 먼지가 날려 숨을 참아본다. 유리컵을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유의미하게 떠오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이대로 손을 놔버리면 유리컵은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런 파괴의 장면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2.2 식당 속 그릇

이번엔 식당 찬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식기를 떠올려 본다. 식당 주인은 하얀 천으로 설거지가 끝난 식기를 하나하나 정성껏 닦는다. 식당에 들어서자 온화한 미소로 손님을 맞는다. 나는 식당 주인의 손을 거친 그 식기들을 바라본다. 그것들의 개수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접시는 접시끼리, 유리컵은 유리컵끼리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그들의 본래 사용처대로 사용될 것이다. 의도적으로 손을 놔서 파괴되게 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것들은 이 식당에 꼭 붙어 있고, 그렇기에 유의미하다.


3 그릇에 담긴 영혼

이제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보자. 나는 그릇이다. 그릇에는 의미가 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폐허 속 그릇이 될 뿐이다. 의미는 영혼이다. ‘나’라는 그릇에는 ‘영혼’이라는 의미를 담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나면서부터 영혼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쉽게 잊힌다. 방치된 영혼에서는 아무런 향취도,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먼지처럼 떠다니게 된다. 그러한 영혼을 지닌 인간은 무색무취의 가벼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발붙일 수 없게 되고 파괴의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4 존재의 안정감

그렇구나. 식기를 닦는 것은 그것들의 영혼을 매만지는 행위였다. 식기들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담겨있던 그것들의 영혼을, 잊히지 않게 매일매일 쓰다듬어 주는 것이었다. 영혼은 닦으면 닦을수록 구체적인 모습이 되고 무게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영혼은 먼지처럼 단지 둥둥 떠다니는 게 아니라 ‘나’라는 그릇에 온전히 발붙이게 되고 나를 유의미한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10대 초반의 내가 식기를 닦는 장면이 유독 가슴에 남았던 이유는, 그 유의미한 식기들로부터 존재의 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5 영혼 건드리기

그렇다면 나의 영혼은 어떻게 매만질 수 있는 걸까? 그건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글쓰기가 하얀 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쓰기를 하면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글쓰기를 하면서, 내 그릇 안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영혼을 나도 모르게 자꾸만 건드리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잘 잡히지 않아 글도 잘 나오지 않고 턱턱 막히지만, 어느 순간 느낌이 오면 둑이 터진 듯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속 생각을 성문화할 때마다 나는 존재의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


7 결론

폐허 속 그릇은 언제 파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으며 아예 사라져도 문제없다. 오히려 그런 미래가 지극히 자연스럽기만 하다. 매일매일 주인의 손을 거친 식당 속 그릇은 늘 그곳에 있는다. 그것들은 그들의 본래 사용처대로 사용되는 미래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때때로 감각 있는 주인에 의해 색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다채로운 미래가 온다면, 그것조차도 자연스럽다. 어느 누구도 폐허 속 그릇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줄은...




+ 덧붙이는 글

사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는 것은 아니다. 영혼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를 포함해서 각종 영적인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다. 나는 철저하게 물질론 적인 사람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혼의 존재와 신의 존재가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물론 유기체 내에서 발하는 어떠한 물질적인 작용과 그 산물일 뿐이겠지만, 그것에 이해하기 쉬운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마음 혹은 정신일 것이다. 영혼이나 귀신 또는 신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단지 많은 걸 단순화시킴으로써 받아들이기 용이하게 만드는 ‘이름 붙이기’ 내지는 ‘의미 부여하기’ 일 뿐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방음벽, 다리,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