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지 않는데도

by 자오

며칠 전에 정형외과에 가서 염증약을 처방받았다.

어제를 마지막으로 다 먹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여전히 아팠다.

하지만 이제 기댈 약이 없었다.



며칠 전에 수필에 이런 문장을 썼다.

하늘에서 전지전능한 존재가 나타나 내 왼쪽 발 하나를 말끔히 치료해 주는 모습을 상상했다.

약을 먹으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생각.

그건 전지전능한 존재에 기대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약에 기대는 것.

그것이 나태한 태도라는 걸 안다.

알면서도, 고통 앞에서 나는 항상 쪼그라들고 만다.



어젯밤의 ‘아자아자 파이팅’에도 불구하고, 오늘 눈을 뜬 순간부터 무력감에 휩싸였다.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엄마는 집안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엄마만 자꾸 쳐다봤다.

마치 엄마가 전지전능한 존재인 것처럼, 나에게 극적인 해결책을 줄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엄마가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게 나 때문인 건지 헷갈렸다.



좀 앉아 있다가 화장실 청소를 했다.

엄마가 나를 한 번 쳐다봤다.


+


아침에 쓴 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런 우울한 글을 올리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이런 글이라도 나는 쓰는 게 즐겁다.

특히 단문으로 쳐 내려가는 형식이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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