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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과 애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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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오

며칠 전부터 유튜브에 아일릿이라는 아이돌 영상이 자꾸 떴다. 크게 관심 없어서 넘기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봤다. 노래가 좋다. 얼굴은 아직까진 누가 누군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예전에 뉴진스 때도 그랬듯이 자꾸 보다 보면 눈에 익겠지.


나는 원래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는다. 라고 할까, 뭔가를 크게 좋아하지를 못한다. 애초에 그런 인간이다. 그래도 아이돌 음악을 종종 듣는다. 그건 엄청난 대중문화이자 하나의 밝은 세계이다. 그런 걸 듣고 있으면 내 마음속 어두운 세계가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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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그 아래의 세상을 나는 향유한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서브컬쳐, 그 중에서도 일본 애니였다. 나는 오타쿠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내가 오타쿠 같지 않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널리 알려진 오타쿠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안경을 쓰지 않았고, 여드름이 많지도 않았고, 뚱뚱하지도 않았고... 등등 그랬다. 내성적이긴 했지만 음침하진 않았다. 얼굴에 철판 깔고 말하자면, 나는 키도 컸고 얼굴도 꽤 괜찮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얘기지만, 나는 내가 키도 크고 얼굴도 괜찮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만 해도 학교엔 폭력 서클이 횡행했다. 내 바로 옆의 친구가 구타당했고, 선생들은 학생에 관심이 없었다. 여차하면 나도 학폭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게 비껴갔다. 그 이유가 키와 얼굴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케이온> / 출처 나무위키

다시 돌아와서, 나는 한때 오타쿠였다. 처음으로 본 애니는 <케이온>이다. 어쩌다가 그걸 보게 된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후로 여러 애니를 찾아보게 되었다. <토라도라>, <늑대와 향신료>, <충사>이런 걸 봤던 게 떠오른다. 또 뭘 봤더라, 지금에 와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애니를 봤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현실도피. 애니 속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늘 멋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반면에 현실의 나는 초라했고, 세상은 무서웠다. 존경할 수 있는 어른 한 명 없었다. 그런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선 계속 애니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아이돌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에서 너무나 빛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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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아이돌이나 애니나 차별 없이 적당히 즐긴다. 최근에 투어스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를 들었는데 좋았고, <장송의 프리렌>을 보기 시작했는데 잔잔하니 좋은 것 같다. 4세대 여돌 노래는 거의 다 좋은 것 같고, 최근 애니 중에서는 <스파이 패밀리>와 <봇치 더 락>을 재밌게 봤다.


아이돌과 애니, 둘 중 어느 것에도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소위 ‘덕질’을 하진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언가를 적당히 즐기는 일이 나에겐 좋은 것 같다. 적어도 현실도피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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