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오늘은 비가 왔다. 조금 그친 틈을 타서 걷기운동을 나갔다. 나는 긴팔티에 바람막이 하나만 걸치고 나갔는데, 생각보다 날이 차가웠다. 엄마는 후리스를 입었다. 팔짱을 끼면 따뜻할 것 같아서 엄마의 옆구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따뜻했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그냥 웃기기도 하고 그냥 슬프기도 하다. 사춘기 때 짜증 났던 엄마의 모습들도 이젠 곧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련하다. 엄마가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아주 어린 마음이다.
내가 죽고 싶다는 말을 내뱉은 이후부터 나는 엄마와 더 가까워졌다. 마치 어릴 적 독감에 걸려 열이 펄펄 끓으면 엄마가 평소보다 더 지극정성이 되는 것처럼. 고통은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관계를 이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 고통이 들어찬 만큼 빈틈은 줄어들었다.
엄마는 어릴 적 내 사진을 앨범에서 꺼내서 화장대에 꽂아두곤 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린 시절의 아들. 그 밝았던 모습, 당신이 육아했던 나날들, 그리움과 후회. 사진은 얼마 후 화장대에서 사라졌다. 아마 사진을 보면 엄마도 오히려 더 힘들었을 테다.
예전에 엄마가 캘리그라피를 배워볼까-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뭐 그런데 돈을 쓰면서 굳이 배우냐-그런 식으로 말했었다. 그게 너무나도 후회된다. 엄마가 캘리그라피 좀 배우면 뭐 어때서. 이젠 엄마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했으면 좋겠다.
자기 전에 괜히 엄마 얼굴을 한 번 더 본다. 그냥 무심히 하루를 보내버리면 왠지 슬픈 마음이 되어서. 엄마 얼굴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