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 하지만 생각해봐. 그 아버지와 딸은 서로 못 본 채로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았어. 그러다가 마지막에 만나는 건 겨우 십 분 정도야. 그 십 분으로 인생이 해피엔딩이 되고 안 되고가 결정되는 거야?
- 그런가?
- 저 딸이 만약에 아버지가 오기 한 시간쯤 전에 죽었다면 말이야, 그러면 저 아버지와 딸은 엄청나게 불행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산 셈이 되는 건가? 운이 좋아서 딸이 죽기 전 딱 십 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그 수십 년의 인생에 갑자기 의미가 생기는 거고?
(중략)
- 그런데 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끝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하더라도?
장강명,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中
어렸을 때 매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장래희망, 취미, 특기, 성격 같은 것들을 적는 평범한 양식을 채워서 선생님께 제출하는, 그런 자기소개서 말이죠. 저는 그 자기소개를 쓸 때마다 제대로 빈칸을 채워 본 기억이 없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기소개서에는 있던 취미는 언제나 독서, 장래희망은 회사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학창시절 내내 저는 애매하게 남들이 시키는 것만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다들 학원에 같이 가는 게 부러워서 부모님께 나도 학원에 보내 달라고 졸랐지만, 정작 학원에 가서는 적응을 못하고 쏟아지는 숙제를 베껴 내기 바빴습니다. 소심해도 특별히 모나지는 않은 성격 덕분에 반에서는 적당히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지만, 막상 점심시간이나 하교를 할 때 함께하는 친구 무리는 딱히 없었습니다. 가끔은 아직도 중학교 졸업식 날이 기억납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을 하느라 졸업식에 오시지 못했고,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누나는 마지못하다는 듯이 꽃다발만 저에게 건네고 사라졌습니다. 그 날 저는 혼자 집에 걸어왔어요. 학창시절 내내 친구들은 아마 저를 조용하고 공부만 꽤 하던 아이로만 기억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몇몇은 아예 기억을 못 할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지방 도시인 광주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공부는 저에게도 애증과 같은 존재였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부모님은 저에게 습관처럼 '우린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아니면 널 서울로 보낼 형편이 안 된다, 좋은 대학에 가면 지금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을 거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아직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그리고 대학교가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를 나이였지만,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죠. 덕분에 저는 학창시절 내내 서울로 대학만 가면 그 때부터 인생이 행복진다고 믿으면서, 마치 사자에게 쫓기는 톰슨가젤처럼 공부를 했습니다. 저에게 취미는 사치였고, 특기 같은 건 더더욱 없었습니다. 기계처럼 문제집을 풀어대던 그 시절 저에게 최고의 일탈은 독서실 가는 길에 가끔 들르는 PC방과 코인노래방 뿐이었습니다. 게임에도 재능이 없어서 그나마도 PC방에는 금방 흥미를 잃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왜 그렇게 제대로 놀지도 않고 재미없게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름 공부를 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슨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미친 듯이 잠까지 줄여 가면서 공부했던 적도, 뉴스에 나오는 천재 소년처럼 1등을 밥 먹듯이 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로 돌아가서, 한번 처음부터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그건 아마 무채색 필름 같았던 학창시절에 대한 불만, 그리고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행복한 지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게 아둥바둥 보낸 학창시절의 결과가 이게 전부인가, 이건 과연 행복한 결말인가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우리가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장강명 작가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남자, 여자, 아주머니. 소설에 나오는 세 사람은 모두가 각자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모두 과거에서 기인합니다. 기이하게도, 서로의 상처는 어떤 지점에서는 만나기도 하고 또 엇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얽힘'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설명합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의 지금 모습을 보면서, 마치 작년의 제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여자는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릴적 본인의 가정환경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망가졌다며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까지도 우울해합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기억하는 학창시절의 여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어요.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여자는 공부도 잘 하고 쾌활한, 인기도 나름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오히려 여자에게 자격지심을 갖는 학생도 있을 정도로.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에서 여자의 친구는 여자에게 말합니다. 너희 가족 이야기 좀 그만 해. 술만 마시면 맨날 우리 아빠 어떤 사람인지 알지, 나 정말 많이 힘들었어, 그 타령. 내가 힘들다, 야. 내 생각에는 너희 가족들도 그렇게 너 냉대하지 않았어. 따뜻한 말도 여러 번 했을 거야. 네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서 그렇지.
그믐달은 보름달의 반대로서 가장 작아진 달을 말한다. 그믐달은 새벽녘이 돼서야 나오므로 관측이 힘들 뿐 아니라 그렇게 잠시 새벽에 동쪽하늘에 보였다가 해가 뜨면 곧 여명 속으로 사라지므로 관측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믐을 사전에 검색하는 나오는 설명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또한 말 그대로 '관측하기 힘들다'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내 안에 있는 세계든, 바깥에 있는 세계든 우리는 스스로가 기억하고 싶은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하기 때문에 말이죠. 우리는 지금도 그믐달처럼 새벽 잠깐의 작은 기억만 가지고 보름달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제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저는 그 때와 다른 선택을 했을까요? 그리고 그 선택은 정말로 더 행복했을까요? 예를 들어, 만약 제가 어렸을 때 학교 공부 대신 친구들을 더 많이 사귀고 놀러다니는 시간을 보냈다면 그건 더 행복한 학창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 학창시절을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당연하게도 기억의 파편들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든 순간이 행복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아마 꽤 많은 순간이 즐거웠을 거에요. 지금의 내가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를 찾기 위해서 과거의 기억을 마음대로 재조립하고 서사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과거를 우울하게 기억하는 것일 뿐.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나쁜 일만 오래 기억한다고.
문득, 제가 지금 이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과연 무슨 대답을 할까요.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다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아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어떤 일이든, 아마 저는 시작할 겁니다. 소설 속 여자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