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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Oct 08. 2023

잘 먹는 게 최고!

'쫌 살아보니 쫌 더 잘할 것 같습니다.'

  태국에 같이 온 동기 단원들과 떨어져서 실제로 '나 혼자 산다!' 생활을 시작한 지도 일곱 달이 넘어갈 때였다.  나 혼자 사는 홀가분함과 즐거움은 서너 달이면 족했다. 혼자 살수록 불편한 것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는데, 그중 불편하고 귀찮은 게 먹는 거였다. 워낙 먹는 거에 별 관심이 없어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는다. 아니 그냥 뚝딱 해치우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삼시 세끼를 뚝딱 해치우거나, 음식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한동안 아침은 우유와 시리얼로, 점심은 학교 근처에서 태국 음식으로 간단히 때웠다. 저녁은 동네 주변 길거리 태국 식당에서 때우거나 가끔은 그냥 맥주 한 캔으로 지내왔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살면서 오는 변화!

  첫째로 살이 빠진다. 

좀 살이 찐 편이라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찔 때는 균형감 있게 골고루 찌던 살이 빠질 때는 제 맘대로 빠진다. 특히 얼굴 살이 급격하게 빠지면서 얼굴은 점점 참바다 유해진과 개그맨 배영만을 닮아가고, 그놈의 뱃살은 여전히 충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배는 올챙이 배가 되어간다.


  두 번째로는 먹는 게 너무 지겨워진다.

잠깐 왔다 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나는 자연인이다’가 아닌 '나는 태국인이다'가 되어 몇 달을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태국 음식을 먹게 된다. 하지만 동네 주변에서 만나는 태국 음식이란 게 국수 아니면 밥 뿐이다. TV에서 보는 태국 여행 프로그램에선 똠양꿍, 팟타이, 쏨땀에 팟크라카오무 같은 발음하기도 힘든 음식들을 많이 소개하지만, 우리나라라고 해서 맨날 전주비빔밥, 소불고기, 신선로, 수정과 같은 것을 먹는 게 아니듯 태국에서 자주 먹는 것은 결국 국수와 밥이다. 국수와 밥은 또 왜 그렇게 양이 적은지 원! 밥 음식은 밥에 삶거나 튀긴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얹어 먹거나 여러 재료를 넣고 볶는 정도다. 더구나 넣는 부재료가 비슷하고 맛이 강해서 뭘 먹어도 똑같은 맛이다. 너무 달고, 너무 맵고….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올챙이 배를 장착한 키 작은 남자! 곤란하다! 아주 곤란하다!     


  그래서 내린 결론! 만들어 먹자! 

그동안 한국에서 내 요리 실력은 라면과 볶음밥 정도. 놀러 가면 고작 고기굽기나 카레 만들기가 전부인 실력이지만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는 말은 진리였다! 주변에 물어보고 유튜브로 찾아보니 콘도 뒤쪽에 '타이-이싼 시장'이라는 꽤 유명한 새벽시장이 있었다.      

집 뒤에 있는 유명한 '타이 이싼' 새벽시장

  졸린 눈을 비비고 주말 아침 일찍 타이 이싼 시장엘 가봤다. 가서 보니 눈 앞에 펼쳐지는 정말 놀라운 신세계! 그 신세계엔 황정민 배우가 사랑하는 부라더는 없지만, 우리 것과 똑같은 감자, 양파, 당근, 배추, 무, 파, 상추, 고추, 고춧가루 등등이 다 있었다. 정말 없는 거 빼고 없는 게 없지만, 이상하게도 대파는 없었다. 배추도 우리나라 배추의 4분의 1만한 조막만 한 것들만 있었다.              

타이 이싼 시장에서 산 식재료

  그날 신세계를 찾아낸 후론 '1식 3찬 더하기 국이나 찌개'를 목표로 용맹정진 요리 실습을 했다. 재료는 가까운 이싼 시장에서, 레시피는 인터넷에서 구하니 어려울 일도 없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계란탕, 김칫국, 된장국, 계란말이, 대파 김치, 멸치볶음, 냉면, 쫄면, 김치말이 국수, 돼지고기 장조림, 메추리알 조림, 달걀조림, 무채, 양파볶음, 감자조림, 감자볶음, 떡볶이, 짜장밥, 카레, 겉절이김치를 맛있게 만들어 먹었다. 조금씩 다시 탱탱해지는 볼살과 꽉 찬 냉장고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그렇게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에 쑥 빠지면서 품게 된 생각! 내 몸엔 천재 요리사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 아닐까! 어떻게 처음 만드는 음식인데도 이렇게 맛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사실 모두 다 태국 식자재에 태국 양념을 쓰면서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만들기가 쉬운 일이 아니잖은가! 태국에 와서야 알게 된 진실 하나! 나는 타고난 요리 천재였다.   

   

  두 번째 알게 된 것은 거의 모든 우리 음식에 설탕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태국 사람들이야 밥에도 설탕을 뿌려서 먹는 사람들(처음에 그 모습을 보고 속이 메스꺼웠다 정말로! 밥에다 설탕을 뿌리다니!)이니 따로 얘기할 필요도 없지만, 거의 모든 우리 음식 레시피에도 설탕이 꼭 들어간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한 번은 알려준 레시피에서 설탕을 빼고 했더니 맛이 안 났다. 아! 내 요리 천재성은 설탕과 인공 조미료 덕이었던가?     


  곧바로 ‘천재 요리사 설’은 가짜 뉴스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지만, 주말 장보기는 일상이 되어갔다. 유튜브를 보며 얼렁뚱땅 만드는 음식은 언제나 천하일미였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살든 잘 먹는 게 최고다! 오랫동안 바라던 외국 생활의 기본은 역시 잘 먹는 거였다. 

     

  그때 습관으로 가끔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 때면 시끌벅적한 ’타이 이싼‘ 시장이 떠 오른다.      

  그립다. 찡찡(정말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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