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초겨울 바람이 부는 날 학교 담벼락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시는 이모님이 올해도 영업을 시작하셨다. 바쁜 점심 장사를 마치니 은근히 붕어빵이 먹고 싶어졌다. 작년에는 천 원에 세 개였는데 올해는 재룟값이 올라 두 개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갔다. 다행히 올해도 세 개다. 붕어빵은 금방 구운 것을 즉석에서 먹는 것이 제일 맛있지만 나는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음식을 볼 때마다 좋아할 만한 사람이 저절로 떠오른다. 붕어빵을 포장하여 혼자 계시는 부동산 사무실로 달려갔다. 이미 돈가스 가게 사장님이 놀러 와 있어서 셋이서 나눠 먹었다.
올해 첫 붕어빵을 믹스 커피와 함께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는 소장님이 전해주는 최근 아파트 매매 시세나 최근 개, 폐업한 가게들의 험담, 부동산으로 돈을 벌거나 잃은 사람들 이야기이다. 반면에 돈가스 사장님은 주식 투자와 직접 짓는 시골 농사에 얽힌 이야기를 푸념하듯이 이야기한다. 시종 내내 들려오는 수백에서 수십억의 숫자는 나를 침묵하게 만들고, 시간이 갈수록 열등감에 빠져드는 내 모습을 본다. 급기야 초라한 기분이 들어서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확실히 금액이라는 숫자가 남발하는 대화는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가게에서는 항상 시간이라는 숫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손님의 예상보다 오래 걸리면 짜증이 나기에 맛이 없다. 보통 주문을 받은 후 10분이 경과하면 “언제 나와요 “, ”아직 멀었어요”라는 질문이 들어온다. 15분이 지나면 테이블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끊어지면서 긴장감이 흐른다. 그래서 늦어도 15분 이내에 음식이 나가야 하는 것이 암묵적인 나의 룰이다. 하지만 열심히 조리 중인데 다른 손님이 오거나 배달 주문이 들어오면 내 머릿속은 주문에 따른 시간 계산으로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을 보고도 손님이 이해해 주는 시간은 길어도 20분쯤이다. 배달인 경우에는 라이더 배차 시간과 배송 시간까지 신경을 써야 하기에 시간적 압박감이 더 심하다. 나에게 행복이란 한 달쯤 푹 쉬어도 되는 넉넉한 돈과 부담 없는 조리 시간이다,
요즘 우리는 돈으로 좋고 나쁨을 표현한다. 좋은 직장도 근무 시간으로 판정한다. 힘든 일과 편한 일은 그다음이다. 그래서 맛있는 집이다를 하루에 몇백만 원씩 판다고 하더라고 말하고, 좋은 직장은 칼퇴는 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왜 장사가 잘되는지, 무슨 음식이 맛있는지, 일이 힘들지는 않은지는 관심도 없다. 소비자들도 무조건 비싼 것이 좋은 것이다. 운동화는 제일 비싼 나이키를 신어야 하고, 차도 벤츠는 타야 한다. 내 소유물의 가격이 나의 품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숫자가 주어에 대한 가치를 결정하는 동사이자 형용사가 되어 버렸다. 대화에서 숫자가 나오면 곧바로 결론이 나버린다. 말한 사람은 우월감으로 듣는 사람은 열등감으로 입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어제 배달 음식을 픽업하러 온 라이더가 매장에 있는 내 로드 자전거를 보더니 “와! 육백만 원짜리 내 자전거 보다가 이걸 보니 장난감 같다”라고 말하며 자전거를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나가 버렸다. 이 짧은 문장 한마디가 나를 미치도록 화나게 만든 것을 보면서 숫자가 주는 위험을 실감하였다. 우리는 은연중에 숫자를 많이 사용한다. 돈이나 시간에 관한 숫자뿐만 아니라 키와 나이, 몸무게, 평수, 크기 등 숫자가 나와서 기분 좋은 대화는 드물다. 숫자는 말하는 사람 사이에서 편을 가르거나 등급으로 구분 짓는 예리한 칼날이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는 숫자를 사용하지도 않아서 거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들은 조리 시간이 늦어도 인상이 붉어지지 않고, 웃으며 묵묵히 기다려 준다. 또한 가진 핸드폰이 오래된 것이라도, 신발이 나이키가 아니어도 전혀 열등감이 없다. 가톨릭 수도사나 청교도의 검소함이 몸에 배어있어서 사치나 낭비를 죄악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숫자 대신에 사용하는 단어는 expensive, cheap, enough, good, bad, lucky 등과 같은 형용사로도 충분하다. 형용사는 주어에 대한 자기 의견이나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숫자는 십만이나 백만 단위로 명확히 구분 짓지만 형용사는 감정에 대해 포괄적으로 교집합을 만든다. 그래서 대화에서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공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가게에서 손님들과 짧은 대화를 자주 한다. 처음 온 손님에게 말한 나의 짧은 한마디에 나의 의도와 배려가 충분히 전달되어야 한다. 곧 짧은 문장이 가게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단골은 짧은 대화들이 쌓여 신뢰가 된 결과이다. 그래서 배달 기사처럼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말했다가는 가게 문 닫아야 한다.
나는 손님들과 대화할 때는 숫자보다 형용사를 많이 사용한다. “주문하면 얼마나 걸려요 “라고 물어보면 ”지금 주문이 밀려서 오래 걸릴 것 같아요. 라거나 “주문하신 요리가 좀 복잡해서 약 30분 정도 걸려요. “라고 말한다. ”그냥 30분 걸립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유를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라 쉽게 이해해 준다. 설사 그냥 돌아가더라도 늦어서 얼굴 붉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30분이란 말을 먼저 해버리면 기다리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어감이 느껴지기에 숫자보다 형용사를 먼저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주 오는 학생들에게 친해질 요량으로 전공을 물어도 몇 학년인지는 묻지 않는다. 학년이 언급되면 꼰대성 발언인 취업이나 공부 열심히 해라로 대화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온 단골이 살쪄 보여도 살이 빠져 보여도 몸무게 대신에 건강해 보인다거나 힘들어 보인다고 말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인다. 취업이나 결혼을 했다고 하여도 숫자만 빼고 물으면 대화에 축하의 의미가 가득 담긴다. 그래서 나는 다행히 마음씨 좋고 착한 아저씨라는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나의 섣부른 판단보다는 염려와 격려가 가득한 질문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