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40대 혼자남의 점심밥 먹은 이야기
올겨울은 한반도의 강력한 겨울답지 않더니, 한파가 시작되고 꽤 오래 지속됐다. 진짜 너무너무 춥다. 20대 때는 거들떠도 안 보던 내복을 30대부터는 입더니, 40대가 된 지금은 필수품이 됐다. 한파가 시작되고서는 한 몸처럼 함께한다^^
무튼 내복까지 든든하게 입고 나왔는데도, 추웠다. 출근하면서 '오늘은 쌀국수'가 머릿속에 박혔다. 사실 나는 쌀국수를 싫어했다. 고수 때문이다.
나에게 고수는 샴푸다. 고수를 먹는 사람은 샴푸를 마시는 사람이다. 고수를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다. 샴푸를 맛있게 먹는 척 연기하는 건데, 정말 대단하다. 이 악물고 맛있는 척 연기하면서 메소드를 위해 추가까지 하는 장면을 보면 절로 기립박수를 치고 싶을 지경이다. 음식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어쩌면 인간을 대표해 고수와 자존심 싸움을 하는 이들이다.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명감을 가지고 샴푸를 들이키는 사람들인데.
고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예전에 인턴을 할 때였다. 상사가 쌀국수를 좋아했다. 그땐 쌀국수에 고수는 선택이 아니었다. 그냥 들어있었다. 상사가 쌀국수를 좋아해서 최소 주 3회 샴푸가, 아 아니, 고수가 들어간 쌀국수를 먹어야 했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꽃밭에서 고수 드셨어요~? 왜 그랬어요?ㅠㅠ
(갑자기 웬 노래)
하지만 요즘 '고수 싫어 인간'을 위해 쌀국수집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다. 고수를 선택사항으로 넣는 아주 똑똑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나도 고수가 빠진 쌀국수에는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가끔 찾게 됐다.
노량진 근처에서 오전 일정을 마친 후, '미분당 노량진점'으로 향했다. 차돌쌀국수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여기는 해선장과 칠리? 그 좀 매운 소스를 취향에 맞게 조합해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앞 그릇을 따로 주기 때문에 다양하게 조합해 먹으면 좋다. 반찬으로 나오는 양파, 단무지도 맛있다.
추위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이 싹 녹으면서 에너지가 팍팍 생기는 기분이었다. 쌀국수, 좋은 선택이었다.
P.S 드라마 '멜로가 체질' 정말 재밌다. 장범준이 부른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가 OST로 나온다.
P.S2 기사였나? 고수를 못 먹는 DNA가 있다고 한다는 글을 본 거 같다. 난 깻잎, 오이는 잘 먹는데, 고수만 못 먹는 DNA가 있나 보다. 물론 고수를 좋아하시는 분들의 취향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