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살의 내가 18살의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오늘 점심은] 40대 혼자남이 점심밥 먹는 이야기

by 아직없음

2월의 첫 출근 날, 눈을 떠보니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이상하게 눈이 오면 기분이 좋다. 잠시나마 아이로 돌아가는 기분도 든다.


사실 하얗게 세상을 덮은 눈을 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라는 곳에서 1년 정도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미국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공립 고등학교를 두 학기 다니는 코스였다.


밀워키는 겨울이면 눈이 정말 많이 왔다. 집 앞 눈 청소가 일과 중 하나였다. 홈스테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임무 중 하나이기도 했다.


사실 미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18살, 친구 좋아하는 나이에 혼자 먼 미국 땅에 떨어져 지내는 건 외롭고 힘들었다. 학교에 한국인은 나 한 명이었고, 입양된 한국인이 둘 있었다. 그때는 한류, 그런 건 없었다. 2002년 월드컵이 고작 일 년 지난 시점이었고, 친구들은 나에게 중국, 일본, 라오스 등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North? South?"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그럼 나는 "South"라고 답했다. 곧 죽어도 내가 먼저 "South Korea"에서 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인종차별도 겪어야 했다. 난 그게 인종차별인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호스트 아빠가 인종차별이라며 학교에 알리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시간들 속에서 먹는 것이 나의 유일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타향살이의 설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같은 뜨끈한 한식들...은 개뿔. 솔직히 미국 음식은 존맛탱이었다.


가장 좋아한 것 중 하나가 판다 익스프레스라는 아메리칸 중식 식당이었다. 밀워키 다운타운 몰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하얀 포장용 종이 박스에 음식을 꽉꽉 담아주는데, 어린 나에겐 그것마저 낭만이었다.눈을 보면 밀워키가 생각나고, 자연스럽게 판다 익스프레스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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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점심은 판다 익스프레스다. 마침 오전에 여의도에 일이 있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에 판다 익스프레스 매장은 여의도 IFC몰밖에 없다. 오전 업무가 조금 늦게 끝나, 오히려 웨이팅을 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평소라면 볶음밥에 오렌지 치킨과 몽골리안 비프를 먹지만, 오늘은 몽골리안 비프 대신 치킨 종류를 하나 더 시켰다. '셰프 어쩌고'라고 써 있던 것 같은데, 이름은 모르겠다. 그냥 맛있어 보여서 "이거 주세요"라고 했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맛이 안 난다.


정말로 미국 본토 판다와 맛이 달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그때와 너무 다른 상황에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판다 익스프레스에 갈 때면, 미국에 있던 18살의 내가 떠오른다. 음악을 듣거나 향을 맡을 때 순간 과거가 소환되듯, 음식을 먹을 때도 그런 것 같다. 벌써 23년 전 이야기가 됐지만, 여전히 그때를 추억할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