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2인분 혼자 먹는 게 죄인가요?

[40대 혼자남의 먹방일기]

by 아직없음

퇴근이 늦었다.


예약한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자르고 나오니 저녁 8시였다. 허기가 몰려왔다.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목적지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문득 초밥이 떠올랐다. 지도 앱을 켰다. 근처 초밥집들은 비싸거나 이미 문을 닫았다. 라스트 오더 시간이 간당간당한 곳을 발견하고 희망을 품은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한 초밥집은 굳게 닫혀 있었다. 손님이 없어 일찍 마감한 모양이다.


허탈하게 발길을 돌리는데 가끔 가던 삼겹살집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안에는 혼자 고기를 굽는 손님이 보였다.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삼겹살 2인분 주세요."


잠시 뒤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보탰다.


"그리고 소주 하나, 맥주 하나 주세요."


술을 마실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깃집 특유의 공기가 주는 묘한 압박에 등 떠밀리듯 주문했다.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 전용 식당이 아닌, 일반 삼겹살집에 혼자 온 것은 생전 처음이다. 쑥스러운 일이라 여겼는데 막상 앉아보니 별것 아니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바빴다. 혼자 고기를 굽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소맥을 말아놓고도 고기를 불판에 올린 뒤로는 겨우 한두 모금 들이키는 게 고작이었다. 고기를 다 굽고 불을 줄인 뒤에야 비로소 쇼타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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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것 빼고는 모든 게 좋았다. 내 속도에 맞춰 온전히 맛을 즐겼다.


손바닥에 상추를 펴 파절이를 올리고, 구운 김치와 마늘을 올리고, 고기를 두점 올리고, 다른 손으로 소맥잔을 잡아 싹 들이킨 다음, 상추쌈을 오물오물. 이번엔 깻잎쌈을 싸고, 또 소맥을 한 잔 '크아'! 그리고 깻잎쌈을 오물오물. 맥주가 다 떨어지면 소주만 잔에 부어 홀짝홀짝하며 삼겹살을 오물오물.


깻잎에 얽힌 기억이 하나 있다. 전 여자친구가 깻잎을 유독 좋아했다. 고깃집에 가면 나는 깻잎을 좋아하지 않는 척 양보하곤 했다. 사실 나도 깻잎을 아주 좋아한다.


혼자 찾은 고깃집. 해보니 정말 별거 아니다. 잠깐의 용기만 낸다면 오히려 풍성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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