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진 마음에 고이는 주님의 사랑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좋다!"라는 감탄이 스치는 찰나, 밖에 널어둔 빨래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순간 짜증이 훅 올라왔지만, "다시 빨면 되지 뭐" 하고 마음을 돌리자 빗소리는 다시 음악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 소리에 취해 잠시 밍기적거리다, 문득 **'마음'**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일어나 새날을 맞이했습니다.
마음 놓고 놀자, 마음을 비우자, 마음 편히 생각해, 마음에 걸리네, 마음 공부...
지혜로운 이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허상이라 가르치며, 그 가짜에 속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그 경계를 분별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요. 채 다스려지지 못한 마음에서 피어난 얽히고설킨 감정들, 그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뒤섞여 현란하게 그려내는 무늬가 곧 우리네 삶의 풍경일 것입니다.
신화는 말합니다. 인간이란 신이 정해놓은 운명의 굴레 안에서, 저마다 희로애락의 흔적으로 고유한 문양을 새겨 넣는 유한한 존재일 뿐이라고 말이죠. 이카루스의 추락이나 시시포스의 형벌은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완벽한 통제'라는 오만의 경계를 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두려움을 피하고자 스스로 금기를 만들고 성(聖)과 속(俗)의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금기는 깨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지요. 두려움 때문에 선을 긋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경계를 넘어 자유를 갈망하는 것이 인간만이 품은 거룩한 신비이자 위대함입니다.
그 의지를 이끌어내는 자력 같은 힘, 그것이 바로 우주의 기운이자 주님의 사랑이라 믿습니다. 앤서니 드 멜로 신부가 "사랑은 곧 자유다"라고 설파한 것 또한 바로 이런 맥락이겠지요.
결국, 내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것이 주님의 사랑임을 깨닫자 비로소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나라는 아집이 스러지고 그 자리에 평온이 차오르는 상태, 이 '텅 빈 충만'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투명한 모습이 아닐는지요. 오늘 아침, 빗소리가 들려준 이 고요한 울림을 사랑이라 부르며 새날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