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침전된 기억을 깨우는 정교한 센서
유랑의 문턱에서 부르는 노래
2025년, 국가가 공인한 노년의 문턱에 섰다. 생물학적 나이로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을 훌쩍 넘기고, 정착의 '임서기'를 지나 바야흐로 삶을 관조하는 '유랑기'에 접어든 것이다. 유랑기의 문턱에 서서 책을 한 권 엮어보자는 생각이 욕망인지 숙제인지 모를 이끌림으로 다가왔다. 때마침 라디오에서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노래가 흐른다. 유행가 가사처럼 지난 삶에 거창한 의미가 꼭 필요한 걸까.
침전된 기억을 깨우는 정교한 센서
그저 가볍게 훌훌 털어버리고 싶지만, 우리 마음속에 쌓인 기억의 무게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융(Jung)의 이론에 기대어 보면, 흘러갔으나 미처 다 흐르지 못하고 마음 깊은 동굴 속에 침전된 흔적들이 남은 시간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형체 없는 흔적들을 투명하게 마주하고 싶었다. 시각 언어에 예민한 나에게 그림은 내면의 미세한 떨림을 포착하는 정교한 센서가 되어 나를 도왔다. 예술가들이란 사회화 과정에서 억눌린 생명 에너지를 화폭에 남김없이 쏟아내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그들이 분출한 생명력이 내 무의식의 거울이 되어줄 때, 그림은 단순히 잠을 깨우는 자명종(自鳴鐘)을 넘어 내 영혼의 안일함을 흔드는 자경종(自警鐘)이 된다.
그렇게 깨어난 기억들은 사실에 충실한 모습일 때도 있고, 상상과 결합되어 낯선 꽃으로 피어날 때도 있다. 하지만 사실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왜곡된 잔상마저 내 무의식이 길어 올린 현재의 진실이라는 점이다.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내밀한 마음의 흔적들을 만나는 일은, 엉킨 실타래를 풀어 내 삶을 이루는 밑그림과 그 안에 숨겨진 풍경들을 온전히 마주하는 행위이다. 그렇게 나 자신과 치열하게 독대할 때마다, 그림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내 마음을 대신해 주는 듬직한 대변인이 되어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만들어주었고, 무엇보다도 홀로 선 고독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그림과 함께 타는 결핍의 수레
다석 류영모 선생님은 '짐승의 사명이 종족 번식에 있다면, 사람의 사명은 오직 진리인 ‘얼나’를 깨달아 참된 자아를 찾는 데 있다'고 말했다. “짐승은 즐기다 죽고 사람은 경이에 차서 살다 간다”는 까뮈의 표현도 다석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나는 선각자들의 사상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단순히 생물학적 생존을 넘어 진리와 경이의 세계에 가닿는 것이 삶의 본질적인 책무라 믿어 왔다.
하지만 고결한 정신을 향한 동경 이면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예술을 향한 나의 흠모는 숭고한 진리를 향한 우아한 걸음이라기보다, 내 안의 지독한 결핍과 열등감을 채우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한 간절함이 나에게는 유한한 육신 너머의 영원성을 갈망하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갈망의 끝에서 어느 날, 생명의 씨앗 자체가 곧 진리라는 생각이 내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생명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아둔하고 부족함 많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을 수 있었다. 그늘 또한 빛이 빚어낸 생명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자, 나를 괴롭히던 열등감은 비로소 의미를 달리했다. 결국 내 안의 결핍은 나를 무너뜨리러 온 불청객이 아니라, 나를 조금 더 깊은 삶의 이면으로 이끌어준 고마운 수레였던 것이다.
파동의 시간 속에서, 지평 너머를 바라보다
한때 사주명리학의 세계를 기웃거린 적이 있다. 우주의 원리로 인간을 보려 했으나 해석의 기운에 휘둘리는 나를 발견하고 공부를 접었다. 그때 비로소 인간 역시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어쩐지 한 몸뚱이로 두 번의 생을 사는 기분이다. 전생 같은 지난 삶을 점검하고, 새로 태어난 아이의 눈으로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 이 파동의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의 지평이 넓어짐을 느낀다.
한때 예술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예술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로의 모태인 예술가의 삶이 지닌 이기적인 속성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술사에 빛나는 수많은 거장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광기 어린 삶의 파편을 맞은 주변 사람들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일상의 짐을 온전히 짊어져야 했다는 사실이, 내 일인 양 불공평하고 억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하나의 작품은 작가를 둘러싼 무수한 인연들의 기운이 작품 속에 응집되어 피어나는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라는 이름은 그 숭고한 합작의 과정을 대표하는 ‘대명사’일 뿐이라는 관점이 생긴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느꼈던 시니컬함의 실체가 보였다. 그것은 삶의 본질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스스로 이분법적 틀에 갇혀 있었던 내 무지에서 빚어진 오만의 소치였다.
그 이분법적인 프리즘을 벗어던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숭고하면서도 비루한 그 모순이야말로 우리가 관계 속에서 성숙해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엄정하고도 본질적인 문이었음을 말이다. 예술은 그 모순된 띠 위를 걷는 자들이 남긴 치열한 흔적이었음을, 이제야 나는 그 모든 모순을 내 삶의 일부로 껴안으며 온전하게 받아들인다.
모순의 문을 지나,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작가 이우환은 만남을 ‘언어와 대상을 넘어선 차원의 터뜨림’이라 정의했다. 이제 나는 작품 앞에서 분석하거나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예술가가 세상에 남긴 흔적 너머의 무언가와 깊이 마주하기를 희망하며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인연이 닿으면, 사물에 불과했던 작품에서 기운이 방사되어 졸고 있는 내 영혼을 깨워 흔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작품은 생명을 확장해 주는 가장 사적인 친구이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그 떨림과 확장의 기록이다. 생의 길목마다 작품이 열어주는 세계 속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갔던 지난날의 나와 나누는 해후이며, 오래된 친구와 제2의 삶을 같이 걷고자 하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그림과 나누는 지극히 사적인 대화가 나의 남은 생을 얼마나 자유롭게 해줄지 기대하며, 나는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그림 앞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