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로 돌아온 푸른 새
1. 꿈의 잔상: 오르골 소리가 흐르는 언덕
가수면의 얇은 막 위로 낯익은 풍경이 겹쳐졌다. 부암동의 가파른 언덕길 같기도, 자주 거닐던 성곡미술관의 산책로 같기도 한 그곳에서 우리 일행은 지하의 어둠을 벗어나 지상으로 막 올라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가늘고 영롱하게 고막을 건드리는 오르골 소리가 새소리처럼 들려왔다. 그것은 누군가 억지로 감아 만든 소음이 아니라, 대지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생명의 떨림처럼 맑았다.
그 길 위에는 딸 내외와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 둘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우리는 지하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무대 위 주인공은 꽤 유명한 사람이었는데도 객석은 반쯤 비어 있었고, 박수 대신 서늘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이혼을 고민하는 여주인공의 모노드라마는 무겁게 가라앉은 채 끝이 났다.
“이혼은 자식을 너무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에 가능한 안 하는 게 좋아.” 내가 말하자 딸이 답했다. “자식의 고통은 자식의 몫이지.” 일행이 딸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찰나, 자명종이 울렸다.
2. 눈을 뜨며 마주한 그림: 마그리트의 <귀환>
눈을 뜨는 순간, 꿈의 잔향이 사라지기 전 한 장의 그림이 떠올랐다. 르네 마그리트의 <귀환>이다.
모니터에 그림을 띄워놓고 가만히 보았다.
세 개의 알을 품은 새 둥지가 짧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채 놓여 있다. 실내에 정오의 햇살처럼 강렬한 빛이 내리꽂히고 있다는 뜻이다. 창 안쪽은 그렇게 환하다. 그러나 창밖은 밤인지 새벽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푸른빛에 잠겨 있다. 그 적막한 허공을 가득채운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뭉게구름 떠다니는 푸른 하늘을 품은 채 날아 오른다.
왜 이 그림이 떠올랐을까?
정오처럼 밝은 실내, 새벽인지 밤인지 모호한 시간,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새의 몸속에 깃든 명징한 낮.
모니터에 떠 있는 세 개 층위의 빛을 바라보는데, 질문에 대한 답인 듯, 꿈속 장면들이 한 컷의 사진처럼 분절된 이미지로 떠올랐다. 동적으로 흐르던 서사가 정적인 한 장면으로 박제되는 순간, 비로소 나는 꿈에 드러난 다양한 내 모습이 보였다.
언덕을 오르는 다섯 명의 뒷모습에서는 다양한 짐으로 짓눌렸던 지난 삶의 무게가 느껴졌고, 연극 무대에서 당황하던 주인공의 표정은 타인의 시선에 갇혀있던 지난 날 내 마음이며, ‘내 몫’이라고 선언하던 딸로 나타난 내 마음은 진정한 자유를 향한 내 안의 결연한 의지였다. 시냇물이 맑게 흐르는 듯한 오르골 소리는 그곳을 향해 나아가려는 희망의 소리일까? 한동안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3. 내 안의 파동: 서로의 고통을 가로채지 않는 태도
어제 저녁 딸과 통화했던 내용이 다시 가슴을 지그시 누른다.
“엄마, 그냥 전화했어.”
“응, 아픈 건 괜찮아졌니?” 그 전날 생리통으로 힘들어했던 것에 대한 물음이다.
“응, 그건 어제 가라앉았지. 그런데 사실은… 마음이 많이 힘들어.”
“그렇구나.”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엄마도 이제 미안하다는 소리 안 하려고.”
“응.”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나는 고사리해장국을 끓여서 냉동시키는 중이라고, 내일 보내겠다고 말했다.
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무거운 것으로 짓이겨지는 듯하다. 딸의 고통이 내 가슴으로 그대로 옮겨온 것 같다는 착각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괜찮을 거야”라는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그 말들이 실은 위로의 형식을 빌린 ‘부탁’이라는 것을 알아챈 후, 나는 힘들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가능한 하지 않으려 한다. 네가 조금 덜 아파주면 내가 덜 아플 것 같으니 그만 아파달라는, 내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이기적인 투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딸의 고통은 딸이 살아내야 할 길이며, 그 길을 가는 딸을 바라보는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나는 파동은 온전히 내 몫일 뿐이라는 이 엄정한 사실이 때로 외면하고 싶을 만큼 버겁지만, 나는 더 이상 비겁해지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서로의 고통을 가로채지 않는 그 차가운 경계, 그 비정함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밤과 낮이 한 화면에 공존하듯 우리는 서로의 몫을 침범하지 않고도 서로의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그림 속 새가 밤하늘의 어둠을 지우지 않고도 제 몸 안의 푸른 낮을 지켜내듯이 말이다.
4. 오롯이 나의 몫인 삶을 향해
모니터를 끄고 출근 준비를 한다. 꿈속의 당혹스러웠던 연극 무대나 나를 압도하던 슬픔의 무게는 이제 저만치 물러나 있다. 귓가에는 여전히 맑은 오르골 소리가 잔잔한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새날, 오롯이 나의 몫인 이 삶을 향해 맑은 오르골 소리를 따라 세상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