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삽자가에 메달린 그리스도>

초라한 성자(聖者)와 나눈 고독의 대화

by 임동숙
DSC04776.JPG 20220522권진규작업실 올라가는 계단에서서

성북구 동선동에 자리잡고 있는 권진규 아틀리에는 차가 들어설 수 없는 좁고 가파른 골목 끝에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다 중간 지점에 피어 있는 덩굴장미 앞에 멈춰 섰다. 숨을 고르며 무거운 흙을 짊어진 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을 작가의 뒷모습을 상상하자, 예술이라는 숭고함을 빚어내기 위해 그토록 육중한 생의 고단함을 홀로 짊어져야만 했던 '삶의 부조리'가 덩굴처럼 발목을 감아왔다.


작가가 직접 돌을 고르고 흙을 이겨 세웠다는 작업실 마당에는, 치열했던 주인의 땀방울 대신 잘 정돈된 단정한 정적만이 맴돌고 있었다. 고단하게 흙을 져 나르던 이의 흔적이 화석처럼 굳어버린 대청마루. 그곳에 걸터앉아 작가의 일생을 담은 영상과 작품집을 넘겨보았다. 평온한 햇살이 내려앉은 뜰에는 꽃들이 무심하게 피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이토록 말끔하게 보존된 공간에 머물고 있자니, 다소곳이 놓여있던 낡은 구두한 켤레가 시리게 다가왔다.


DSC04816.JPG 2022년0530 동선동 권진규 아뜨리에

텅 빈 아틀리에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고, 시립미술관 전시실에서 보았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잔상이 눈앞에 겹쳐졌다. 흙이 아니라 삼베를 심으로 삼아 옻칠을 올리는 전통 건칠(乾漆) 기법으로 빚은 그 작품은, 겹겹이 바른 삼베의 거친 질감으로 예수의 처절한 고뇌를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었다.

'어쩌자고 예수님은 저리 초라하게 서 계신 것일까.' 그 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곁을 떠나기는 더욱 어려워, 그날 나는 전시장을 몇 바퀴나 돌며 그 주변을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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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3.jpg 20220330 서울시립미술관 권진규 탄생100주년기념전 <노실의 천사>전시장에서

이 작품은 1970년 인근 부흥교회의 의뢰로 제작되었으나, 너무나 처절한 모습 탓에 제단에 오르지 못하고 결국 작가의 작업실 벽에 평생 걸려 있어야 했다.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교회 측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그 누구인들 저토록 앙상하고 고통스러운 실체를 날마다 대면할 용기가 있겠는가. 하지만 삶이라는 거친 바위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깎아내고 남아야 할 단 하나의 본질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저 고통이라는 정(釘)에 온몸이 정직하게 부딪히는 통과의례를 피할 수 없는 법이다.


물리적인 무게는 허망하리만치 가벼운데, 거친 삼베의 결마다 맺힌 생의 고통은 숨이 막힐 듯 무겁다. 전시실 입구 쪽에 배치되어 있던 사진 속 작가의 굳게 다문 입술과 세상을 꿰뚫어 보는 듯한 형형한 눈빛이 문득 그 십자가 위로 겹쳐졌다. 섣불리 그의 삶을 다 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그가 시에서 토로했던 것처럼 **"절지(折枝)여도 포절(抱節)하리다"**라며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겠다던 그의 서늘한 영혼이 저 거친 삼베의 예수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했다. 가벼운 껍데기 속에 그토록 무거운 생의 고독을 꾹꾹 눌러 담은 그 곁을, 나는 오래도록 떠날 수 없었다.


작가는 끝내 제단에 오르지 못한 채 거절당한 그 그리스도상이 걸려 있는 작업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존재와 삶의 가늠할 수 없는 무게를 숙명처럼 짊어져야 하는 영혼들. 그들이 세상에 스며들어 빛과 소금이 되기까지는, 육신이 품은 삶의 무게가 모두 스러진 뒤에야 가능한 일일까. 그의 진면목도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조명되기 시작했다. 비운의 천재가 비단 그 하나뿐은 아니건만, 그 깊고 서늘한 고독의 현장 속에서 마주한 작가의 마지막이 너무도 먹먹하여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20220522 동선동 카페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와 배회하다 들어간 작은 찻집에서, 나는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그 쓸쓸한 공간을 빠져나오자, 찻집 창가에 매달린 형형색색의 손뜨개 인형들이 마치 친구가 부르는 소리처럼 정겹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가장 생생하고 소란스러운 현실의 목소리가 그리워, 그 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불쑥 통화 버튼을 누른 것이다. 몇 년 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도 잠시, 이내 십여 분간 친구의 수다가 쏟아졌다. 둘째 아들의 억대 연봉 소식부터 자잘한 집안 대소사까지.

'아, 이거였지. 내가 힘들어했던 것이….'

정겨움도 잠시, 이내 마음 한구석이 지루함으로 피로해졌다. 친구의 행복을 축복하면서도 끝내 좁혀지지 않는 관심사의 간극 앞에서, 나는 다시 시니컬한 외톨이가 되어 서둘러 대화를 자르고 말았다.

"그래, 참 잘됐다. 근데 내가 지금 하던 작업이 있어서 이만 끊어야겠네." 차갑게 선을 긋는 나의 말에 서운할 법도 한데,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너답다. 알았어."

그 짧은 한마디에 차갑게 선을 그으려던 나의 옹졸함이 툭 꺾였다. 우리의 인연이 긴 세월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이런 까탈스러운 성향을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어도 '너니까'라며 묵묵히 인정해 준 친구의 너그러움 덕분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서늘함은 가시지 않아, 그 후로 일 년 이상의 긴 시간이 흐르도록 우리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찰나의 이해만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우리 사이에 흐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친구는 내 삶의 궤도에서 아주 멀어져 갔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희미해진 인연의 거리감이 실감 났다. 불현듯 책장에 꽂힌 권진규의 도록을 찾아 넘겨본다. 다시 그의 **<가사를 걸친 자소상>**에 시선이 머문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에게 가사를 입힌 채 굳게 다문 입술로 허공을 응시하던 모습. 그가 짊어지려 했던 고독의 깊이와 친구가 누리고자 하는 세속의 안락함 사이에는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놓여 있다.

나는 그 거리를 억지로 좁히는 대신, 초라한 예수를 곁에 두었던 작가처럼 나에게 부여된 고독의 문양을 온전히 껴안기로 한다.


작가의 처연한 자소상이 꿰뚫듯 내게 묻는다.

"너의 시선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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