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이 남긴 낯선 시선
삼십 대 후반을 넘기며 신화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켈란젤로의 그 눈부신 <피에타>가 망치에 부서졌다는 기사를 접한 후 피에타라는 상징에 깊이 침잠했던 때가 있었다. 비애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정점이 훼손당했다는 소식은 기이한 파장을 일으켰다. 어쩌면 그 도발적인 파괴는, 신성이라는 매끈한 이름으로 포장된 아름다움의 껍데기를 지나 그 너머의 날것을 마주하게 하려는 신화적인 몸짓이었을지도 모른다.
깨어진 틈 사이로 묘하게도 내 머릿속을 스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어느 붉은 도기 그림이었다. 그곳엔 성모 마리아 대신 유럽이라는 이름의 씨앗이 뿌려진 섬,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애가 인간이 아닌 황소 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안고 있었다.
욕망이 잉태한 그림자
멋진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에게 납치된 공주 에우로페(Europe)의 자식 미노스, 그리고 다시 황소와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애 사이에서 태어난 미노타우로스. 이 계보를 들여다보다 나는 한 문명을 이어주는 끈이 다름 아닌 '탐욕'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유럽 문명은 신의 탐욕에서 잉태된 인간의 탐욕으로 시작된 셈이었다.
한 문명을 출현시킨 근원적 에너지인 욕망은 필연적으로 그림자를 동반했다. 포세이돈에게 받은 황소를 가로챈 미노스 왕의 기만은 아내 파시파애가 그 황소를 사랑하게 되는 잔혹한 저주로 돌아왔다.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미노타우로스는 통제되지 않는 욕망 ‘죄’의 상징이 되었다. 미노스는 자신의 수치이자 무의식의 어두운 실체인 이 괴물을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 미궁 속에 가두고 은폐하려 했다. 제 욕망을 닮은 자식을 부정하며 무의식의 심연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빛의 딸이 마주한 생명의 원형
하지만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 파시파애는 달랐다. 세상은 미노타우로스를 왕가의 수치이자 괴물이라 불렀으나, '빛의 딸'인 그녀는 그 기이한 생명체를 지극히 평범한 아이처럼 소중히 안아 들었다. 괴물을 품고 있는 파시파애의 그림은 모성애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녀의 모성애는 도덕적 판단이나 선악의 잣대가 생겨나기 이전의 본능적인 생명 긍정이었다. 모성애는 흔히 말하는 희생이나 헌신이기 이전에, 빛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비추듯 내 몸을 통해 세상에 나온 생명이라면 그 어떤 일그러진 형상일지라도 끝내 거두는 원초적인 생명 보존의 힘이다. 질서 밖으로 밀려난 존재에게도 젖을 물리는 이 담담한 수용이야말로, 생명을 끝내 살려내는 가장 정직한 자비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비추는 정직한 거울
그 도기 그림은 거울이 되어 지난날의 나를 비추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 몸의 흉터는 내 열등감의 씨앗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그 씨앗은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내면의 짙은 그늘로 번져갔다. 나의 시선은 그 깊은 그늘에 머무는 대신 자꾸만 다른 세계를 기웃거렸다.
"몸은 하찮은 것이고, 지성만이 우월하다"는 방어기제는 나를 문학과 그림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렇게 전공 공부를 뒤로하고 예술 동네를 기웃거리다 만난 것이 카메라였다. 대학 시절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사진이었다. 동아리를 키우고 학보사 사진 기자로 활동하며 뷰파인더 너머를 배회하는 동안, 나는 어쩌면 내가 세운 미궁의 벽을 부수고 나갈 진짜 도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열등감이라는 단단한 벽이 만들어낸 나만의 미궁, 그 어두운 심연 속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관념의 세계로 숨으려 할수록, 렌즈는 자꾸만 외면하고 싶은 구체적인 실재를 눈앞에 들이밀었다.
진실을 대면한 것은 대학 졸업 후였다. 이제 사진가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결심으로 지난 몇 년간의 작업물을 한데 모아 정리하던 순간, 나는 말할 수 없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내가 찍고자 했던 것은 세상을 향한 힘찬 구호나 시적인 아름다움이었으나, 정작 사진들 전반에 흐르는 기운은 지독히도 쓸쓸했다. 사람들 앞에서 웅변가처럼 목소리를 높이던 나의 외면과는 전혀 다른,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실체가 그 고독한 화상(畵像) 속에 고여 있었다.
파시파애가 괴물 아들에게 젖을 물리듯, 나는 사진을 인화하며 비로소 내 미궁 속에 갇혀 떨고 있던 ‘미노타우로스’를 빛 아래로 끌어올려 응시하기 시작했다. 신화가 인간의 어두운 심연조차 생명의 본질임을 내게 스며들게 해주었다면, 사진은 그 추상적인 사유를 실존적인 화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피에타(Pieta)의 어원인 자비와 연민은 타인이 아닌, 미궁 속에서 홀로 울고 있던 나 자신을 향해 먼저 흘러가야 했던 것이다.
서른 살 후반, 요동치는 현실 속에서 나는 그렇게 내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림자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그저 묵묵히 바라봐주어야 할 나의 일부였다. 나는 비로소 미궁의 끝에서 나의 괴물과 손을 잡고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완벽함이 비껴간 자리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마침내 안아줄 수 있게 된 온전한 나의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