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고독의 땅을 지키는 효소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9년 어느 여름날,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들을 마주했다. 전시장 곳곳에 박혀 있던 날카로운 직선들은 7년이 지난 오늘도 예리한 칼날이 되어 내 사유의 틈새를 파고든다.
그날 나는 전시장을 돌며 낯익은 이름과 얄팍한 짐작으로 그를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나의 오만을 발견하고는,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라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전시장을 빠져나오고서도 그 묘한 거부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거부감은 처연한 고독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내 안의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하루 종일 그 방대한 양의 작품을 보고 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불편하지만 묘한 매력에 끌려 그는 내 작가 리스트에 들어온 것이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일상의 틈새마다 한 번씩 툭 찌르듯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서서히 알아차렸다. 뷔페의 날카롭고도 외로운 선들은 누군가의 온기를 갈구하는 외로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정직하게 응시하는 자가 뿜어내는 서늘하고 당당한 기운, ‘고독’이었다.
다시 도록을 펼친다.
바이올린을 켜고 있지만 정작 선율은 들리지 않을 것 같은 광대의 메마른 얼굴을 마주한다. 슬픔조차 말라버린 듯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허공의 어느 한 점을 망연히 바라보며 삶의 비애를 묵묵히 견뎌내는 무심한 시선. 그 시선과 마주하는 순간 감정이 일렁거리더니,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 하나가 스르르 풀리는 게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담벼락, 그 너머의 진실
7년 전 전시장에서 나는 강한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생선뼈 옆에 나란히 걸려 있던 자화상,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처절하면서도 동시에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띠고 있던 그 얼굴 앞에 서서 나는 따지듯 질문했다.
“평생을 바쳐 사랑해 주는 저 여인이 있는데 어떻게 이토록 처절하게 자신을 그리는 겁니까? 아나벨에게 미안하지도 않나요?”
당시 내가 믿었던 사랑은, 세상의 날카로운 모서리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고 아픈 상처를 덧나지 않게 덮어주는 방어막에 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고통은 줄어들고 마음은 편안해져야 한다고 믿었기에, 아나벨이라는 지극한 사랑을 곁에 두고도 끝내 자신을 고독의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 그의 창작 혼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웠던 것이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나벨의 문장 속에 있었다.
나는 베르나르가 창조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욕구를 소진하고자 견뎌내야 했던 작업의 강도를 이해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 내가 잘했던 점이 있었다면 베르나르에게 그림은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가 그림과 마주하고 있을 때, 굳이 내가 낄 자리를 마련하지 않아야 함을 본능적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30여 년의 외로움과 상처가 양분이 되어 키워낸 그녀의 사랑은 나의 감상적인 의문을 훨씬 넘어서 있었다. 아나벨은 남편이 무의식의 동굴 속에서 창조의 불꽃을 뿜어낼 때, 기꺼이 스스로를 ‘쓸모없는 관객’으로 만들며 알아챈 것이다. 뷔페의 절망은 개인적인 결핍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신화적 동굴 속에서 흘러나오는‘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었음을 말이다.
망부석처럼 그 시간을 기다려준 그녀의 사랑은 예술가라는 숙명을 지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가장 깊은 경외였다. 그녀는 그가 홀로 서 있는 성소를 결코 침범하지 않았다. 그 먹먹한 그림들 위로 오랫동안 가라앉아 있던 낡은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30년의 침묵 끝에 마주한 고독의 땅
희미한 불빛 아래 소주잔을 비우던 그는 내 시선을 애써 피하며 허공에 한숨을 흩뿌리듯 툭 던졌다.
"나에게도 인간인 여자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
그 말이 내 가슴을 찔렀다. 조여오는 가슴을 한 손으로 누르며 나는 날카롭게 맞받았다.
"그럼 당신에게 여자는 인간이 아닌가요?"
단절된 대화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고였고, 우리의 시선은 어긋난 평행선처럼 멀어져 갔다.
당시의 나는 그의 고독을 감당할 힘이 없었고, 무엇보다 고독의 땅이 왜 필요한지를 전혀 몰랐다.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멈추었고, 이후 30여 년의 깊은 침묵이 흘렀다.
광대의 메마른 얼굴은 그때 그가 내게 건넸던 처절한 고백과 닮아 있고, 뷔페의 거친 자화상은 인간의 한계에 절망하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던 그의 모습으로 겹쳐온다. 그 긴 세월의 강을 건너오며 내 안에 타인의 고독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단단한 토양이 비로소 일궈진 것일까. 사랑은 타인의 고독을 침범하여 메우는 것이 아니라, 고독이 숙성되어 예술이 되고 신화가 될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효소였다는 것을, 지금에야 비로소 마주한다. 이제야 먹먹해지는 가슴 안으로 깊은 미안함이 차오른다.
사랑은 타인의 고독을 침범하여 메우는 것이 아니라, 고독이 숙성되어 예술이 되고 신화가 될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효소여야 했다.
뷔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아마도 광대일 것 같다"고 답했다. 자신의 고통을 유희로 바꾸어 보여주는 광대, 그것은 천재적인 재능이라는 숙명을 부여받은 자의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으리라. 파킨슨병으로 더 이상 붓을 들 수 없게 되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을 다시 생각하며 비로소 '그럴만하다'는 숙연함에 닿는다. 마지막 에너지 한 방울까지 캔버스에 쏟아붓고 스스로를 전소시킨 존재의 당당한 마무리는 비극이라기보다 차라리 예술적 승화에 가깝다.
아나벨과 뷔페, 두 사람이 일구어낸 그 고독의 땅에서 흐르는 기운이 내 몸과 마음으로 스며들었을까. 타인의 고독을 품을 줄 몰라 방황하던 젊은 시절의 내 삶을 차창 밖 풍경처럼 가만히 바라본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기억의 강에 펼쳐진 그 풍경을 지나, 비로소 나의 고독이 기다리는 땅으로 가만히 걸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