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뇨약을 4개나 쓰는데도 당화혈색소가 조절되지 않는다면 인슐린을 써야 할 수 있습니다.
2. 의사들은 이런 경우 C-펩타이드 수치를 확인하고 환자에게 인슐린 치료를 권할지 결정합니다.
3. 당뇨약은 일반적으로 3종류 이내로 처방하고, 예외적으로 4종류까지 드실 수 있지만 추가로 처방된 1종의 약제비는 본인이 모두 부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3종, 혹은 4종의 약을 먹고도 당화혈색소가 8~9% 밖에 나오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4. 이런 경우 대부분의 의사는 더 늦기 전에 인슐린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환자라면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슐린 치료는 말기 단계의 치료이므로,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종말적인 상황이라고 여기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5. 단순히 당화혈색소만 낮출 것이 아니라 표적 장기의 손상을 예방하는 약을 선택하라는 것이 최근의 경향임에도, 여전히 설포닐유리아가 저의 원 픽(?) 당뇨약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환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면 의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나마 당화혈색소를 잘 낮추는 약을 골라 쓸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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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무래도 논쟁이 되는 건 이 부분일 것입니다. ‘지금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것은 췌장의 문제인가? 혹은 나머지 몸의 문제(인슐린 저항성)인가?’ 다른 말로 바꿔보면 ‘(운동을 더하고 체중을 빼고 식습관을 조절하는 식으로)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췌장에서 더 이상 인슐린이 나오지 않는 탓이니 이제는 밖에서 보충을 해줘야만 하는가?’ 환자는 전자가 문제였다고 자책하는 반면 의사는 후자를 걱정합니다.
7. 췌장은 마치 우물과 같아서 우리는 인슐린이라는 지하수를 췌장에서 퍼서 씁니다. 인슐린을 무한정 끌어올릴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많은 경우 결국 우물은 말라붙게 되고 더 이상 혈당을 조절할 수 있을 만큼의 인슐린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닥치게 됩니다. 이때, ‘이 우물 앞으로 못 쓸 것 같은데?’를 확인하는 목적으로 의사들은 C-펩타이드를 참고합니다.
8. 한때 과학자들에게 인슐린의 구조가 수수께끼처럼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보통의 분자는 아미노산이 하나씩 연결되어 한 줄의 긴 끈 형태로 만들어지게 마련인데 인슐린은 두 개의 분리된 아미노산 끈이 가느다란 선으로 이어진 독특한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정확한 위치에서 정확한 구조로 결합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9. 시간이 흘러 한 과학자가, 인슐린은 ‘두 끈을 따로 만들어 연결된 게 아니라, 하나의 끈이 만들어진 뒤 연결 부위가 싹둑 잘린 구조’ 임을 증명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싹둑 잘린 그 연결 부위, C-펩타이드 (C-peptide)입니다.
10. C-펩타이드는 인슐린이 하나 만들어지면 똑같이 하나가 나오므로 인슐린의 총분비량과 같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우물의 취수 가능성’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C-펩타이드의 수치를 참고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인슐린이 얼마나 나오는지 궁금하다면 인슐린을 직접 재어 보는 게 낫지 않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11. 맞습니다. 그런데 인슐린은 분비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간에서 제거됩니다. 따라서 인슐린 농도는 췌장의 '분비 능력'을 추측하는 용도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인슐린 수치로 평가한다면 췌장의 기능은 훨씬 과소평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신 혈중 인슐린 수치는 인슐린 저항성을 평가하는 데 쓰입니다.
12. 이처럼 췌장의 분비 능력을 잘 반영하는 C-펩타이드는 원래 1형과 2형 당뇨병을 구분하는 데 쓰입니다. 2025 당뇨병 진료지침에 따르면 공복 시 측정한 결과가 0.6 ng/mL 미만으로 나오면 1형 당뇨병으로, 1.0 ng/mL이상인 경우 2형 당뇨병으로 분류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13. 그런데 매우 낮은 C-펩타이드 수치는 인슐린 치료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근거입니다만, '정확히 어떤 수치 이하부터 인슐린을 시작해야 하는지' 또는 '어떤 수치 이상이면 인슐린을 안전하게 끊어도 되는지(우물에 물이 다시 차서 쓸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14. 참고로 C-펩타이드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췌장 기능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슐린 저항성이 있어 고 인슐린혈증이 유지되는 환자는 C-펩타이드도 당연히 높게 나오는데 그렇다고 췌장의 능력이 출중하다고 오인하면 안 됩니다. 차라리 높은 C-펩타이드는 인슐린 저항성의 증거로 삼아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고혈당 상태에서 측정된 C-펩타이드는 과대평가될 수 있으므로 채혈 당시 혈당을 함께 비교해야 합니다.
15. 설포닐유리아나 GLP-1 Ra를 처방받은 환자는 C-펩타이드가 높게 나올 수 있습니다.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는 약은 C-펩타이드의 수치도 올립니다. 따라서 약물 복용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C-peptide 수치만 보고 췌장 기능을 해석하면 오류가 생깁니다.
16. 하지만 C-펩타이드가 기준치보다 낮게 나온 환자라면, 인슐린 분비능이 1형 당뇨에 가까운 상태이므로 아무리 노력해도 약을 바꾸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이 경우 이것저것 약을 바꿔 쓰면서 우물을 더욱 마르게 하지 말고, 외부에서 인슐린을 보충해 줌으로써 췌장을 쉬게 해 주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훨씬 좋은 전략입니다. (특히 식후에도 C-펩타이드가 충분히 오르지 않는다면)
17. 그런데 정말 C-펩타이드는 단순히 인슐린 제조 공정 상 어쩔 수 없이 잠깐 필요한, 별다른 작용이 없는 단백질이 맞을까요?
18.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C-펩타이드를 당뇨병의 치료제로 활용해보려는 노력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당뇨병성 미세혈관합병증에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연구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한 예로, 인슐린 치료를 받던 1형 당뇨 환자가 췌장을 이식받아 C-펩타이드 수치가 충분히 정상화되면 당뇨병성 망막병증이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