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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약 아마릴(설포닐유리아)

by 예재호

1. 만약 이 세상에서 딱 하나의 경구 당뇨약만 쓸 수 있다면, 전 (어쩔수 없이) 이 당뇨약을 선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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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세기 초 독일의 기업 바이엘(Bayer)은 화학 및 제약 산업에서 독보적인 입지에 있었습니다. 바이엘은 최초의 합성 진통제 아스피린을 1899년부터 판매했고, 합성 항생제도 최초로 개발해 판매했습니다.


3. 바이엘이 개발한 최초의 항생제는 설파 계열 항생제였습니다. 1930년 바이엘의 과학자는 염료에서 분리한 프론토실(prontosil)이라는 화학물질을 사람에게 투여해 감염증을 치료해 냅니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 주변에 세균이 자라지 않는 현상을 통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이 바이엘의 개발보다 몇 년 앞서긴 했지만 실제로 실용화되는 데 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최초의 화학요법은 바이엘의 신약으로 이뤄졌습니다.


bactrim.png 아직도 쓰입니다.

4. 곧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바이엘은 전범 기업으로서 나치에 협조를 했던 바, 이 항생제는 독일에서만 쓰일 뻔했습니다. 다행히 1935년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바이엘이 개발한 프론토실이 항균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프론토실이 체내에서 분해되어 만들어지는 술파닐아미드라는 물질이 항균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밝혀내었고, 비로소 설파 제제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됩니다.


5. 이후 다른 제약업체들도 항생제 개발을 위해 술파닐아미드의 아형을 찾아내는 데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던 중 프랑스에서 개발한 후보 물질을 투여받은 환자에게서 극심한 저혈당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당시는 벤팅이 개발한 인슐린만이 당뇨병 치료에 쓰이던 때라, 매번 주사로 맞아야 하는 방식에 지친 환자들이 효과 좋은 경구 약제의 개발을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6. 과학자들은 설파 계열 항생제의 부작용을 이용하면 당뇨 약제로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연구 끝에 마침내 최초의 경구형 당뇨약제, 설포닐유리아가 1950년대 개발되었습니다.



7. 설포닐유리아는 최초로 개발된 경구약제임에도 불구하고 당화혈색소 감소 효과가 매우 뛰어납니다. 이렇게 뛰어난 효과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설포닐유리아가 췌장의 베타세포에 직접 작용하여 저장된 인슐린을 강제로 배출시키는 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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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우리 몸의 세포는 세포 안과 밖의 전압을 인위적으로 차이 나게 유지함으로써 여러 가지 신호의 전달이나 세포의 활동을 제어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마치 둑에 물을 담아뒀다가 적절한 시점에 방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9. 설포닐유리아는 베타 세포막에 있던 칼륨 채널에 결합해 세포 안쪽에 전위(전압)를 높이고, 이로 인해 밖에 있던 칼슘이 내부로 들어오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고혈당이 췌장의 베타 세포막에서 일으키는 과정과 거의 동일합니다. 그러니까 설포닐유리아의 자극을 받은 베타 세포는 혈당과 관련 없이 항시 인슐린을 배출해 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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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때 1 세대 설포닐유리아제제를 복용한 환자군에서 심혈관 사망률이 되려 증가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는데 이 또한 위의 기전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설포닐유리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세포막 채널이 췌장뿐 아니라 심장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나오는 설포닐유리아는 췌장의 베타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도록 만들어서 심장 관련 부작용의 위험성은 크게 없습니다.




11. 설포닐유리아는 1mg, 즉 강낭콩 반알로 시작을 하는데, 최대 8mg까지 투여하기도 합니다. 당화혈색소는 최대 2%까지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강하 효과를 보일 때도 있습니다.


12. 설포닐유리아를 처방하게 된 환자들에서는 다른 약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독특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두세 달 만에 혈당을 조절하는 데 필요한 약제 용량이 크게 감소하는 경향입니다. 예를 들어 공복혈당이 350이 넘는 환자에게 SU를 최대 용량으로 투여한 이후 혈당이 조절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같은 용량임에도 저혈당이 발생해서, 마치 당뇨가 치료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크게 호전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glucotoxicity.png 그렇다고 당뇨가 완치된 것도 아니고, 이 분이 광고하는 기능식품 덕분인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13. 사실 이런 현상은 당뇨를 진단받고 인슐린으로 치료받기로 결정한 환자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초기 하루 총 인슐린 요구량이 60 단위가 넘었던 환자가 혈당이 잘 조절되기 시작하고 나면 어느새 10 단위 이하로도 충분히 혈당조절이 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이를 포도당 독성 해소(Reversal of Glucotoxicity)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가이드라인 등에서 되도록 초기에 신속하고 강력하게 혈당을 떨어뜨리라고 권고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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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설포닐유리아의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은 역시나 저혈당입니다. 앞서 다룬 DPP-4i와 달리 언제나 인슐린을 분비시키는 작용제이므로 공복과 식후를 가리지 않고 인슐린이 많이 분비됩니다. 다만 AGI와 달리 단당류를 꼭 먹어야 하는 등의 문제는 없습니다.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QBletbgcsq?xmt=AQF0xIfGgY0DAuxhzLeR31prduGA5gmzaQBggtxHC1R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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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저혈당의 증상은 떨림, 식은땀, 어지러움 등으로 한번 겪게 되면 굉장히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되어 치료 순응도를 급격히 떨어뜨립니다. 더불어서 노인 환자의 경우 저혈당 증상을 잘 인지하지 못하거나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낙상의 위험이 크므로 설포닐유리아는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16. 설포닐유리아가 이른바 췌장을 쥐어짜는 기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베타세포의 기능을 더 빨리 소진시킨다는 우려는 항상 있어왔습니다. 혈당수치와 관련 없이 지속적이고 과도한 자극을 췌장의 베타 세포에 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베타세포의 사멸로 이어진다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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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하나 반대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포도당 독성을 해소함으로써 베타 세포의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관점도 있으며, 당뇨병 환자에서의 베타세포 기능의 저하가 설포닐유리아 탓만은 아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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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실 DPP-4i도 특별한 장점이 없다며 무시받는 와중에 구닥다리 설포닐유리아를 선택하겠다고 당돌한 의견을 말씀드리게 된 데에는 실제 진료 상황에서 설포닐유리아가 맡은 역할이 여전히 크다는 아쉬움을 표시하기 위함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릴을 4mg을 넘게 필요해진 순간부터는 인슐린으로의 전환을 강력히 권고드리려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여전히 인슐린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관계로 쉽지만은 않습니다.


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QBluWigRFU?xmt=AQF0xIfGgY0DAuxhzLeR31prduGA5gmzaQBggtxHC1RWww


19. 하지만 당화혈색소가 8% 밑으로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상황인데 부가적인 효과가 좋다는 이유로 기존의 당뇨약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가 선택한 원픽, 설포닐유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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