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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약 자누비아 DPP-4i

by 예재호

1. 본격적으로 당뇨를 치료받기 시작하면, 이 약은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처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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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슐린 저항성이 원인이 되어 발병한 2형 당뇨도, 시간이 지나면 췌장의 베타 세포의 기능이 감소하고,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져 혈당조절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당뇨환자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더 많이 나오도록 만드는 약, 즉 인슐린 분비제 (Insulin secretagogue)를 함께 복약 (병용 요법) 해야만 하는 시점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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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예상하시는 것과 다르게, 병용 요법이 시작되는 시점은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옵니다. 사실 당뇨약을 복약하기로 결정한 때부터, 즉 치료받기 결심한 때부터 이미 복합제를 처방받은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그 까닭은 당뇨약 1종이 떨어뜨릴 수 있는 당화혈색소를 보통 1.0% 이내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진단 당시 7.5%만 넘어도 1종의 당뇨약제로는 치료 효과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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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인슐린 주사가 여의치 않을 경우, 최대 4종의 경구 약제를 조합해 병용 처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병용 요법에 있어 가장 대중적으로 처방되는 당뇨약, DPP-4i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5. 환자에게 병용 처방을 시작해야 할 때, 의사들은 아무래도 저혈당 문제를 가장 걱정합니다. 비구아나이드(메포민)나 TZD(액토스)와 같은 인슐린 민감제와 달리 인슐린 분비제는 '식사를 한 끼만 건너뛰거나 조금만 운동을 과격하게 하여도' 평소보다 혈당이 많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반대로 환자 입장에서는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늘리는 약을 쓴다고 하면, 아무래도 췌장의 기능을 더 빨리 소진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될 것이라 의사들은 짐작합니다. 더불어 공통의 관심사라 한다면, 인슐린이 많이 분비되다 보니 아무래도 체중이 늘어나는 점이 있겠습니다. (김여사는 쓰지 않고 저축을 하니까요)


7. 이런 관점에서 볼 때 DPP-4i야 말로 참 무난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혈당도 잘 생기지 않고, 췌장의 베타세포에도 크게 부담을 주지 않으며 인슐린 분비제에 속하면서도 체중은 늘리지 않으니 말이지요. 비록 요즘 DPP-4 억제제 위세가 예전에 비하면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럼에도 실제 임상에서는 2종류 이상의 당뇨약을 함께 쓰는 병용 요법에 있어 여전히 DPP-4i가 선호되는 옵션 중에 하나인 것은 바로 이러한 '무난한' 장점 때문이었습니다.




8. “음식이 도착했으니 다들 준비해 놔!”라는 인크레틴 효과를 활용한 당뇨치료제는 저혈당 위험이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GLP-1이 인슐린을 많이 준비시키더라도, 막상 인슐린이 췌장에서 분비되려면 기준 이상의 고혈당이 감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혈당이 높아지지 않으면 인슐린은 분비되지 않고 혈당을 떨어뜨리는 호르몬은 인슐린 뿐이므로 저혈당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9. 한데, 이전 편에서 말씀드렸듯 인크레틴을 당뇨약으로 개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뇨환자는 GIP에는 저항성이 있었고, GLP-1은 분비되자마자 DPP-4라는 효소에 의해 1,2분 만에 분해되기 일쑤기 때문입니다.


119639777_3418771428165856_8861052302374573536_n.png DPP-4는 분비된 GLP-1을 1,2분 만에 분해해 버립니다.


10. 그리고 GLP-1 수용체 작용제는 GLP-1이 펩타이드 (단백질) 구조인 탓에 경구약으로 만들기 힘들다는 점도 있습니다. 단백질은 우리 몸이 잘 소화시키고 분해하는 물질이므로 GLP-1 유사체가 구조가 부서지지 않고 혈액에서 기능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도 위고비나, 마운자로와 같은 GLP-1 수용체 작용제가 대부분 피하 주사 제형으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Rybelsus.png 먹는 GLP-1 RA도 개발되었습니다만 아직 대중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11. 그래서 미국의 제약회사 MSD는 전략을 바꾸기로 합니다. 아직 GLP-1을 경구 제제로 만들 기술은 없으니 GLP-1을 분해하는 DPP-4를 방해하는 물질을 찾아보기로 한 것입니다. MSD의 전략은 성공하여 마침내 1999년, MSD는 DPP-4 효소의 활성 부위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비펩타이드 (non-peptide) 저분자 화합물, 시타글립틴 (sitagliptin)을 조합해 냅니다.


12. 자누비아는 2006년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한데 아무리 혁신적인 기전의 약물이라 하더라도 보수적인 의료계의 특성상 시장에서 즉시 널리 쓰이지는 않는 것이 보통인데, 자누비아는 운이 좋았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다룬 아반디아 사태가 2007년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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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hreads.com/@care.about_your.health/post/DPnz7gKAd94?xmt=AQF0onFiQZf4GoFqFFdsg_kzkit088DKq_q8tkRXAKM1rQ


13. TZD, 아반디아는 2006년까지 처방액 1,2위를 다툴 만큼 당뇨약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아반디아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대두되니 의사들은 추가로 쓸 약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 됩니다. 물론 '이 참에 인슐린으로 바꾸어서 좀 더 혈당을 잘 조절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때도 지금처럼 환자들은 경구약제를 선호했고 3제 병용까지는 해보고서 인슐린을 고려하는 분위기였습니다.


2008.png DPP-4i 가 아직 널리 쓰이기 전이었던 2008년 당뇨병 치료 가이드라인 알고리즘


14. 그 빈자리를 바로, 최초의 DPP-4i, 자누비아가 빠르게 차지합니다.


2012.png 2012년 가이드라인에서는 어떤 조합에든 포함된 마치 미원과도 같은 DPP-4i


15. 게다가 막상 써보니 DPP-4 억제제 자누비아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습니다. 자누비아는 하루 한 번만 먹으면 되니 편리했고, 앞서 말씀드렸듯 저혈당 위험이 매우 낮으면서도 혈당도 곧잘 떨어뜨렸습니다. 더불어 인슐린 분비를 늘리는 약이지만 체중을 증가시키지 않았고 다른 부작용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무던했습니다. 특별한 매력은 없지만 단점이 없는 육각형 스타일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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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자누비아의 성공이 부러웠던 다른 제약회사들도 부랴부랴 DPP-4i 계열 신약 개발에 착수합니다. 한데, 두 번째 DPP-4i 인 베링거 잉겔하임의 리나글립틴, 트라젠타가 출시되는 데 만해도 5년이나 걸렸으니 확실히 자누비아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여러 가지 DPP-4i가 출시되었고 국내업체에서 개발한 DPP-4i도 있습니다. (LG 화학 제미글로, 제미글립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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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대부분의 DPP-4i는 하루 한 번만 복약하고, DPP-4i 간의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저나 다른 주치의 선생님들 또한 혼용하거나 변경하는 데 있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으시므로 혹시나 약이 바뀌어도 크게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18. 다만 DPP-4i는 점점 일선에서 밀려나고 있는 형편임은 분명합니다. 최소한 병용 요법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가장 먼저 고려되는 후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위상이 추락한 가장 큰 이유는 비록 DPP-4i가 큰 부작용도 없고 혈당도 곧잘 떨어뜨리는 반면에 추가적인 장점은 딱히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SGLT-2i는 놀랄 만큼 여러 가지 부가적인 장점이 있고 다른 약과 병용에도 (DPP-4i와 비교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bad gut.jpg 무난하기만 한 육각형 남자는 대세가 아닌 것처럼...


https://brunch.co.kr/@ye-jae-o/109


19. 엎친데 덮친 격으로 GLP-1 RA의 부상이 매섭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트루리시티, 위고비나 마운자로 등의 주사제에 대한 인기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GLP-1 RA 가진 특출난 체중감량 효과때문입니다. 같은 인크레틴 가족임에도 DPP-4i는 실제 체중감량 효과는 썩 크지 않은데, 이는 GLP-1의 작용시간은 늘리나 용량을 늘리는 기전은 아니라는 점, 두 번째로 GLP-1의 작용시간을 늘리기는 하나 인슐린의 작용이 증가함으로써 서로 상쇄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20. 안타깝게도 (?) GLP-1 RA과 DPP-4i를 동시에 쓰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으므로 예측컨대 DPP-4i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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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중 감량이 필수적이지 않은 고령의 환자와 같이 저혈당 위험을 피해야 하는 환자분이나 2종을 넘어 3종, 4종의 경구 약제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앞으로도 DPP-4i 억제제가 좋은 치료 옵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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