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헐적 단식과 저탄고지 식단은 당뇨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뇨인의 혈당 관리 방법으로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당뇨인들은 굶거나 식단을 관리하지 않아도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 2008년, 미국식약청은 제약 회사로 하여금 ‘당뇨 약제가 심혈관계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대규모 연구를 통해 반드시 입증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CVOT 정책) 아반디아 사태로 촉발된 이 정책은 다른 약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장애물로 작용했을지 몰라도 시장에서 언더독 위치였던 SGLT-2i로서는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3. 자디앙의 연구 결과는 단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놀라운 연구 결과가 연달아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SGLT-2i가 당뇨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4. 심혈관계에 대한 안정성과 장점은 자디앙뿐 아니라 다른 SGLT-2i에도 모두 확인되는 계열효과라는 것이 밝혀졌고, (CANVAS, DECLARE-TIMI 58, VERTIS CV 등) 특히 심부전 환자에게 SGLT-2i의 효과는 매우 뛰어났습니다.
5. 자신감이 붙은 연구자들은 이제 당뇨병이 아닌 일반 환자군에게도 SGLT-2i을 투약해 효과를 시험해 봅니다. 역시나, 당뇨와는 거리가 먼 비당뇨 환자에게도 SGLT-2i가 효과가 있었습니다. (DAPA-HF 및 EMPEROR-Reduced) 이때부터 슬슬 SGLT-2i를 당뇨약으로만 분류하는 게 맞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당뇨가 아닌 분들에게도 투여하고 싶으니까요)
6.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SGLT-2의 신장 보호 효과 또한 역시나 남달랐습니다. 2019년 CREDENCE 시험에서 최초로 입증된 신장 보호 효과는 이후 모든 SGLT-2i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계열 효과임이 증명되었고, 마찬가지로 이 혜택이 당뇨병 유무와 관계없이 만성 신장 질환 (CKD) 환자에게 적용됨이 확인합니다. (DAPA-CKD)
7. 단순히 신장에서 포도당을 내버리는 것뿐인 약이 어떻게 이런 효과를 다 가질 수 있었을까요?
8. 간헐적 단식은 칼로리 섭취를 일정 시간 동안 제한함으로써 신체의 생화학적 대사 경로를 의도적으로 전환시켜 다양한 건강상의 이점을 유도하는 식사 요법입니다. 말은 복잡하지만 단순히 말씀드리자면 탄수화물 위주 에너지 대사를 지방 위주 에너지 대사로 변경하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이 케톤입니다.
9. 공복 상태가 지속되어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이 고갈되는 순간이 오면, 지방조직이 품고 있던 지방산이 분해되기 시작합니다. 지방산은 근육에서 바로 쓰일 수도 있고 간으로 흡수되어 분해가 되면 케톤체가 됩니다. 이때, 케톤체는 유사 포도당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근육도 쓰고 뇌도 쓸 수 있습니다.
10. 케톤체는 의외로 포도당 대비 장점이 많은데, 일단 포도당보다 더 많은 ATP 생성이 가능합니다. 더불어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항산화작용, 항염증작용, 자가포식 촉진, 세포건강 유지 등 부가적인 장점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습니다. (이는 케톤식이나 저탄고지, 나아가서는 저속노화 식이법까지 각광을 받는 배경 중에 하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1. 이렇게 케톤이 가진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도 정작 우리 몸은 케톤을 쓰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케톤의 가장 큰 문제는 혈액을 산성화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케톤체가 ATP 생성을 많이 할지 몰라도 즉각적이고 빠른 에너지 생산에는 포도당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점도 있습니다. 케톤을 주로 쓰는 동물들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는 겨울잠을 자는 곰 등이 케톤을 쓴다고 합니다.
12. 다시 고생하던 김여사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겠습니다. 그런 고로, 김 여사는 귀하게 모은 적금이 케톤과 같은 비정상적인 쓰임새로 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인슐린이 주도권을 가진 상황에서는 케톤이 잘 생성되지 않습니다.
https://brunch.co.kr/@ye-jae-o/101
13. SGLT-2i는 이런 케톤체 위주로의 연료 전환 효과를, 금식하지 않더라도 볼 수 있게 몸을 조절함으로써, 여러 가지 부가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14. SGLT-2i로 인해 신장에서 포도당 손실을 보면, 몸은 공복 상태라고 판단하고 이에 대한 보상작용을 시작합니다. 인슐린 분비는 줄어들고 (김여사가 활동을 중단합니다.) 간에서는 중성지방을 만들어내는 대신 지방산을 분해하고 줄어든 포도당 대신 케톤을 준비합니다.
15. 물론 금식 상태이므로 간은 당연히, 우선적으로 글리코겐을 분해해서 포도당으로 만듭니다. 맞습니다. 케톤보다는 포도당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SGLT-2i를 복용한 초기에는 혈당이 조금 올라갈 수도 (!)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용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증가 폭도 미미해서 실은 ’SGLT-2i는 저혈당의 위험이 없는 약‘으로서 당뇨인에게 쓸 수 있는 장점을 부여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16. 실제로 간헐적 금식, 혹은 다이어트에서도 포도당 대사가 끝나고 지방을 에너지로 쓰는 시기가 도래하려면 (개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최소한 8시간 이상의 금식이 필요합니다. 확립된 케토시스를 유발하려면, 즉 본격적으로 케톤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려면 2~4일까지 걸리기도 합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이것이 의사들이 일반적으로 간헐적 금식을 권유하지 않는 한 이유입니다.)
17. 놀라운 것은, SGLT-2i는 갑작스러운 금식 상태, 그러니까 ON/OFF 식으로가 아니라, 가벼운 금식이 지속되는 상태로 몸을 유지시킵니다. 그런데 24시간 동안 작용하는 SGLT-2i가 지속적으로 작용하여 24시간 동안 신장에서 포도당이 흐르다 보니, 몸은 어느 시점 (2~4일)부터 ’ 본격적으로 케톤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야 되는 시점이 되었군 ‘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SGLT-2i를 복약하면 간헐적 단식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과 같이(!) 몸이 변화합니다. 마치 겨울잠에 든 곰처럼 말이지요!
18. 이게 끝이 아닙니다. 더 놀랍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19. 원래 정상 심장 근육은 포도당보다 지방산을 더 잘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라토너의 IMCL을 말씀드린 것도 그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심부전에 빠진 심장근육은 병이 들어서 평소처럼 지방산을 이용하지 못하고 포도당만 쓰게 되어 의존성이 심화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포도당은 지방에 비해 열량이 낮으므로 충분한 ATP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수축력이 저하됩니다.
https://brunch.co.kr/@ye-jae-o/103
20. 한데 놀랍게도 금식 상태에서 간에서 만들어낸 케톤체가 문제의 해결이 됩니다. 심장은 포도당 대신 케톤을 연료로 쓸 수 있는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케톤은 포도당보다 ATP 생성량이 훨씬 좋아서 심장근육이 충분한 수축력을 만들어낼 수 있게 도우게 되는 겁니다. (Myocardial Fuel Shift)
21. 신장의 비밀은 이렇습니다. 포도당을 내버리게 된 신장은 함께 나트륨도 내버림으로써, 신장으로 하여금 ‘소변량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게 하고, 그 결과 그동안 고혈당으로 인해 오류가 나던 피드백이 정상화되면서 과여과 상태가 개선됩니다.
22.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냉면 육수가 너무 달다며 다시 만들어오라고 자꾸 빠꾸 시키던 주방장이 드디어 “음, 알고 보니 설탕을 많이 친 게 아니라 소금을 덜 쳤군.”을 깨닫는 것입니다. (엥?!) 어쨌든, 저쨌든 결론적으로는 주방은 한숨 돌리게 됩니다. (과열된 신장은 진정되고 섬유화 과정이 멈추고 만성 신장손상이 예방됩니다.) 더불어 신장에서도 역시 케톤체를 사용하고 케톤체는 신장에도 도움을 줍니다.
23.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SGLT-2i는 인슐린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지만, 몸의 대사를 포도당 위주에서 지방산 위주로 바꿈으로써 인슐린의 과분비를 줄이고 그 영향으로 몸의 각 조직은 인슐린 민감도가 상승하고 저항성이 줄어들게 됩니다.
24. SLGT-2i의 효과에 대해 정리하며 보게 된 인주찌 박사의 ‘어쩌면 지난 50년간 당뇨병 치료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한 인터뷰 내용은 사실 제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25. 인슐린이 발굴되기 전의 단순히 굶기는 치료를 무식하고 원시적이다고 생각했으나 돌고 돌아 우리 몸의 해법이 결국 굶는 방식에 가깝다는 것은 역설적입니다. 더불어 그동안 편협한 시각에서만 당뇨병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저를 포함한) 전 세계의 의사들에게 전해준 것 같기도 합니다.
https://brunch.co.kr/@ye-jae-o/99
26. SGLT-2i를 정리하며 꼭 덧붙이고 싶었던(?) 내용이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 48장입니다. 덜어내는 것이 곧 채우는 것이다.
27. 당뇨로 진단된 환자에게 간헐적 금식은 절대로 권유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며, 놀라운 신약 SGLT-2i에 대한 글을 여기에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