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당뇨약은 2010년대 초반까지는 교과서에도 실리지 못했고, 시장에 출시가 된 이후에도 그 누구도 이 약이 이만큼이나 뜰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2. 아반디아 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2008년, 미국식품의약국, FDA는 “앞으로 새로 개발되는 모든 당뇨병 약제는 심혈관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대규모 임상시험(CVOT)을 통해 의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TZD 때처럼 뒤통수를 맞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게 하지 않겠다는 FDA의 굳은 의지의 표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이 FDA의 강화된 CVOT 정책은 당뇨약을 개발하던 제약 회사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았습니다. 실제로 몇몇 당뇨약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보고되어 탈락의 쓴 잔을 마시게 됩니다. 당뇨병 학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다국적 회사의 신약마저 한순간에 거꾸러졌습니다. 이쯤 되니 일각에서는 “심혈관계 부작용이 전혀 없는 당뇨약은 개발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4. 심지어 이 글의 주인공인 SGLT-2i 계열에서도 이 CVOT 시대의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얀센의 카나글리플로진, 제품명 인보카나는 CANVAS연구에서 하지 절단 위험이 카나글리플로진을 먹은 치료군에서 대조군보다 오히려 2배나 증가하는 결과가 보고되어 시판 취소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5. 그러다 보니 당시 당뇨약 업계엔 "신약은 심장과 혈관에 해롭지만 않아도 성공"이라는 분위기가 돌았습니다. 요즘처럼, 새로 출시된 당뇨약이라면 응당 심장이나 신장에 부가효과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는 분위기와는 정말 전혀 달랐습니다. (그러고 보면 혈당만 잘 떨어뜨리면 그만일 약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TZD 사태가 불러온, 당뇨병 신약개발의 암흑기였습니다.
6. 2015년 9월 17일, 자디앙의 CVOT 결과 보고가 예정된 스웨덴 스톡홀름, 유럽당뇨병학회의 분위기도 역시나 뒤숭숭했습니다.
7. 일단 이미 시장을 선점한 DPP-4 억제제는 부작용도 없고 혈당 강하효과도 좋았기에 '굳이 경쟁자를 발굴해 낼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8. 게다가 SGLT-2i는 DPP-4 억제제의 경쟁자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몇몇 의사들은 SGLT-2i를 두고 요로감염만 일으키는 쓸모없는 당뇨약이라고 폄하했고 다른 의사들은 그나마 체중은 빠지니 비만약으로나 써보겠다고 비웃었습니다.
9. 연구 결과가 제대로 나올지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최초로 개발된 포시가는 안정성 문제로 FDA에서 추가 자료를 요구받아 심사가 지연된 바 있었고, 인보카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로 안정성 문제에 대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인슐린과 별개의 기전으로 혈당을 떨어뜨리는 비전형식 방식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필연적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10. 심지어 자디앙은 그런 SGLT-2i 중에서도 존재감이 매우 미미했던 상태였습니다. (당시 자디앙 매출이 인보카나 매출의 1/10이었다고 함) 어쩌면 베링거와 릴리 주주들은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느라 큰돈을 들인 것에 대해 불안감을 많이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11. 베링거 인겔하임/일라이 릴리가 시행한 엠파글리플로진, 자디앙에 대한 대규모 심혈관계 연구(CVOT)의 이름은 EMPA-REG OUTCOME였고, 당시 결과를 발표한 교수는 버나드 진만교수였습니다. 진만 교수는 큰 동요 없이 차근차근 결과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 실제 발표 동영상을 찾아냈습니다.
12. 청중들은 인상 좋은 진만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도 CVOT 결과가 나쁘지는 않아서, 안정성이 확보는 되니 퇴출되지는 않겠군’ 정도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디앙의 CVOT 결과를 발표하는 순간이 됩니다.
13. 그런데, 이변이 일어납니다. 누구도 감히 꿈꿔보지도 못했던 결과가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당뇨약에서 나온 것입니다.
14. 이럴 수가, 자디앙을 투여받은 당뇨환자들의 심혈관 사망률이 38%나 감소했다는 결과가 화면에 띄워집니다. 순간 강연장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반디아 사태 이후 새로운 당뇨약들은 심장에 해만 끼치지 않아도 성공이라고 할 정도였는데,
당뇨약을 통한 부가적인 심혈관계 혜택을 운운하는 것은 금기와도 같은 일인데,
뭔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15.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자디앙은 당뇨병 환자의 전체 사망률은 32%나 감소시켰고, 심혈관 합병증으로 인한 (심부전) 입원율도 35%나 감소시켰습니다. 경악스러운 것은 자디앙의 심혈관계 사망률 감소 효과가 거의 먹자 마자에 해당하는 “6개월 이내”부터 발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짓말 같은 발표였습니다.
16.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긴가 하면, 기존의 당뇨병 약이 심혈관계에 영향을 끼치려면 최소 수년은 걸려야 했습니다. 혈당을 잘 조절하고 그 부가적인 효과로서 동맥경화를 서서히 개선하다 보면 심혈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원리였지요. 그런데 6개월 만에 사망률이 개선된다니? 그렇다면 자디앙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 외에 무언가를 추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겨우 안정성을 입증하는 시험에서 이렇게 압도적으로 빠르고 강력한 우월성을 보여주는 결과라니, 그날 이후 학계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났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