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신 발언 : 저는 이 약이 당뇨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 당뇨(糖尿)는 '달콤한 오줌'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어입니다. 이는 의학 용어 Diabetes Mellitus 를 일본에서 번역한 것을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이어받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SGLT-2 억제제는, 당뇨인의 달콤한 오줌을 더 달콤하게 만들어, 즉 포도당의 소변 배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작동하여 혈당을 감소시키는 약입니다.
3. 사실 오줌이 달아진 것은 꽤 심각한 문제입니다. 포도당은 우리 몸에서 매우 귀중한 자원이라 함부로 오줌으로(밖으로) 배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신장은 포도당이 여과되어 원뇨로 배출되지 않도록 막고, 설사 여과가 되더라도 뒤쪽에서 재흡수를 해 내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4. 하지만 혈액 중에 포도당이 너무 과량으로 섞여 있다면 안전장치 용량을 벗어나 소변으로 배출되는 포도당이 생기게 됩니다. 소변 검사에서 당이 양성으로 검출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예상하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우리는 소변에서 당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를 보고 혈당을 역산으로 계산해 낼 수도 있습니다.
5. 원뇨에 섞인 포도당을 다시 혈액으로 재흡수하는 장치를 나트륨-포도당 공동 수송체 (Sodium-Glucose Co(Linked) Transporter, 즉 SGLT) 라고 부릅니다. SGLT는 소변에 섞인 포도당의 90% 이상을 재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당뇨인 입장이 되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차피 혈액 속에 너무 많이 돌아다니는 탓에 감당이 되지 않아 소변으로 흘러나온 것을 굳이 재흡수해 혈액 속으로 되돌리는 장치, SGLT는 썩 달가운 존재는 아닙니다. (그냥 버려도 되는데 꼭 다시 주워 오더라...)
6. 사실 SGLT에 대해서는 앞서 한 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포도당은 단독으로 재흡수될 수 없기 때문에, 나트륨을 함께 재흡수해야 합니다. 당뇨환자에서는 이 과정이 과도해져서 RAAS가 항진되고, 이는 당뇨병의 여러 합병증을 악화시키는 기전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 RAAS가 과활성되는 기전을 설명하며 SGLT가 나왔습니다.
https://brunch.co.kr/@ye-jae-o/85 (17.번부터)
7. SGLT-2 억제제의 개발은 100년도 전에 발견한 천연 화합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800년대 초반, 사과나무 껍질에서 추출된 천연 화합물인 플로리진(phlorizin)이 그것인데, 당시에도 플로리진을 먹으면 혈당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1886년 독일의 과학자 폰 메링은 개에게 이 플로리진을 투여했고, 소변에서 당이 검출되기 시작했다며 플로리진이 신장의 무언가를 변화시켜 당뇨를 ‘유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8, 이후 그 무언가가 바로 SGLT-2 였다는 것은 100년이 지난 1990년에 이르러서 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SGLT-2는 신장에서 걸러진 포도당의 90%를 재흡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 효과는 인슐린과는 별개(!)였습니다.
9. 최초의 SGLT-2를 억제하는 약, SGLT-2 i는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신약 다파글로플로진, 포시가는 2012년 유럽에서 최초로 승인을 받았고, 한국에서는 2013년 11월부터, 미국에서는 2014년 승인을 받습니다.
10. 이후 2013년에 얀센의 인보카나, 2014년의 독일 베링거 인겔하임의 자디앙, 2014년 일본 아스텔라스의 슈글렛이 연달아 승인받았고, 바야흐로 SGLT-2i 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립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SGLT-2 i도 있습니다. (이나보글리플로진, 엔블로)
11. 그런데, 매우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순수 당뇨약으로서 SGLT-2 i의 혈당 강하 효과는 썩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사실 경구 당뇨약 중에서는 평균 아래 수준이라고 말씀드려도 썩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고백하자면 이 글을 열며 드린 말씀, “저는 이 약이 당뇨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 맥락엔 이런 SGLT-2i 의 단점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2. SGLT-2i의 혈당 강하 효과가 다소 부족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슐린과 별개로 작동하는 원리 때문입니다. SGLT-2 가 포도당의 90%나 재흡수하므로, SGLT-2i가 작동하면 90%만큼 배출시킬 수 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재흡수 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한정 재흡수 할 수 있었다면 혈당에 따라 포도당이 점점 더 소변으로 많이 배출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게다가 그마저도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즉, 신장에서 포도당을 걸러내지도 못하면 SGLT-2i가 해 볼 여지는 점점 줄어듭니다.
13. 덧붙여서 SGLT-2i가 이른바 살이 빠지는 당뇨약으로 소문이 났지만, 그 또한 과장이 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은 포도당을 소변으로 배출하기 때문(SGLT-2i를 복용하면 하루 평균 60~80g의 포도당을 소변으로 배설하고 그것을 칼로리로 환산해 보면 240kcal~320kcal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인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의 환자는 소변으로 빠져나간 만큼 음식을 더 섭취하게 되어 효과가 상충합니다.
14. 물론 초기에는 체중이 좀 줄어드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위에서 말씀드린 포도당이 소변으로 빠져나가서가 아니라, 포도당이 빠져나감으로써 나트륨도 함께 빠져나가고, 나트륨을 따라 체내 수분도 함께 빠져나가는, 이뇨제와 비슷한 원리로 부종이 감소하는데 의해 일어납니다.
15. 게다가 막상 처방해 보면 부작용을 호소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당뇨 약제의 부작용 중 SGLT-2i의 요도감염을 가장 빈번하게 만납니다. 소변으로 설탕을 내보내다 보니 요도가 균이 서식하기에 쉬운 환경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16.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로 SGLT-2i를 폄하해 볼 의도로 “저는 이 약이 당뇨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제가 폄하할 위치에 있지도 않거니와, 이제 SGLT-2i는 그 누구도 감히 도전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거의 절대권력과도 같은 수준의 권위를 지니게 된(었?) 상태입니다.
17. 한때는 뉴턴의 물리법칙만큼이나 절대적인 권위였던 비구아나이드, 메포민이 SGLT-2i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한 2015년의 사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매우 갑작스러웠으며, 극적인 과정을 겪었습니다. 내일은 그 드라마틱한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고 제가 SGLT-2i를 당뇨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진짜 이유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18. 그 전에 SGLT-2i 가 이렇게 막강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에는 다름 아닌, TZD의 역할이 매우 컸으므로 1편의 글을 먼저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https://brunch.co.kr/@ye-jae-o/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