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론상 완벽했던 이 당뇨약은 반복된 부작용 논란 탓에 시장에서 신뢰를 잃었습니다.
2. 1997년, 레줄린은 FDA의 승인을 받으며 화려하게 미국 시장에 진출합니다. 1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TZD의 기전은 독보적이었으므로 미국의 의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레줄린을 경쟁적으로 처방했고, 레줄린은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3. 한데,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해인 1998년, 충격적인 부작용 사례가 보고됩니다. 레줄린으로 당뇨약을 변경한 50대 여성 환자가 급성 간부전으로 간이식까지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4. 환자는 간 손상을 일으킬 만한 다른 원인이 전혀 없었고, 조직검사에서도 만성 간질환을 시사하는 소견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레줄린을 복용한 뒤 딱 3.5개월 만에 간부전이 발병했는데, 이는 약물로 유발되는 간 손상(DILI)의 전형적인 발생 기간에 합당했습니다.
5. 사실 그 전부터 레줄린으로 처방을 바꿨더니 자꾸 간 수치가 오르더라는 이야기는 돌고 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TZD의 기전이 너무 매력적이어서였을까요? FDA는 해당 보고를 보고받고 '이제 간기능검사를 자주 해보도록 하세요' 라는 식으로, 다소 소극적으로 대처했습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당시 레줄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냐면, 간부전 환자를 보고한 논문에서조차 "환자가 특이 체질이어서 생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일 수 있음"이라고 단서를 달 정도였습니다.
6. 하지만 지속적으로 간 손상 사례는 이어졌고, 마침내 사망 사례까지 보고되자, FDA는 그제야 시판 허가를 철회했습니다. 의료계와 의회는 FDA의 늦장 대응을 비난했습니다.
7. 하지만 인슐린 감응성을 증가시킨다는 기전은 여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많은 제약회사는 TZD를 포기하지 못했고, 영국의 다국적 제약회사 GSK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8. GSK는 레줄린의 분자구조를 변경해 문제가 되었던 간독성을 줄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과학자들은 레줄린이 심각한 간독성을 초래한 이유를 항산화 작용을 노린 비타민 E(토코페롤) 유사체 화합물 구조에서 찾았습니다. 산쿄 제약은 의욕이 너무 과다했던(?) 나머지 당뇨 환자의 혈관 손상을 막는 효과도 추가하기 위해 비타민 E 구조를 TZD 화합물에 결합했기 때문입니다.
9. GSK는 이 토코페롤 유사 부분을 제거한 신약 아반디아(로시글리타존)를 출시합니다. 역시나 아반디아는 순식간에 당뇨약 시장을 석권했고, 2006년에는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명실상부한 블록버스터 약품에 등극하게 됩니다.
10. 그런데 다음 해인 2007년, 이제는 괜찮을 줄 알았건만 다시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아반디아가 심장마비 발생 위험을 크게 올린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혈당을 떨어뜨리고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만큼 당연히 심장 관련 지표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올 줄 알았던 사람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11. GSK는 부랴부랴 자체 임상 연구를 진행했고 "아니예요. 저희 약 안전합니다."라고 반박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전 레줄린의 퇴출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에게 남아있었기 때문일까요. 이번에는 아반디아, 아니 TZD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예전만큼 많지 않았고, 학계는 반으로 나뉘어 격렬하게 논쟁했습니다.
12. 결국 2010년, 유럽에서 먼저 아반디아의 판매를 중단시켰습니다. 미국 FDA도 다른 치료법으로 혈당 조절할 수 없는 환자에 한해서만 아반디아 처방을 허용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식약청도 아반디아의 처방을 제한했습니다. GSK는 잠재적인 심장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정보를 숨기거나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수많은 소송이 이어져 막대한 금액을 법적 비용으로 내야 했습니다.
13.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제약회사가 있지 않나요? 맞습니다. 최초의 TZD를 우연히 합성하는 데 성공했던, 바로 다케다 제약입니다. 다케다 제약도 레줄린이 간독성으로 퇴출당하는 가운데 GSK의 아반디아와 함께 피오글리타존(액토스)을 미국에 출시하는 데 성공합니다.
14. 아무래도 거대 제약사 GSK의 강력한 마케팅과 영업력에 밀리다 보니 초반 시장 점유율은 낮았습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다케다는 TZD 시장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시장에서 처방할 수 있는 TZD는 액토스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이은 악재로 TZD 계열 약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고 이후 출시된 DPP-4 억제제와 SGLT-2 억제제가 워낙에 성공을 한 터라 TZD는 엄밀히 말하면 주류 약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15. 그런데도 저는 개인적으로 TZD, 아니 액토스를 선호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췌장 베타 세포를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늘려 혈당을 낮추는 기전이 아닙니다.
2)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근본적인 기전이 있습니다.
3) 그로써 지방간도 개선할 가능성이 있으며, 임상 연구에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개선 효과가 보고되었습니다.
16. TZD의 혈당 강하 효과도 꽤 준수한 편입니다. 액토스의 HbA1c 평균 강하율은 단독 요법 기준 1.0~1.5%로 보고되며, 경구 약제 중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성적입니다. 게다가, 유전자에서 PPAR-γ를 활성화하는 기전 덕분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혈당이 안정적으로 조절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됩니다.
17. 유일한 TZD, 액토스의 용량은 15mg과 30mg 두 종류로 출시되어 있습니다. TZD는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직접 자극하는 기전이 아니므로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방식의 약물이므로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습니다.
18. 이어질 다른 당뇨약들도 마찬가지지만, TZD도 부작용과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PPAR-γ가 발현되는 곳이 지방세포 외에 신장에도 있어서 몸이 좀 부을 수 (체액 저류로 인한 부종) 있습니다. 그래서 심장 기능이 떨어진 심부전 환자에게서는 쓸 수가 없습니다. 약을 먹고 난 다음 체중이 많이 늘거나, 발목이나 다리가 붓거나 할 경우 의사에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19. 하지만 크게 우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액토스는 다른 약에 비해 썩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고 처방하는 약에 속합니다. 저는 생활 습관 개선이 어렵고(담배를 피우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경우), 허리둘레가 90cm가 넘는 내장 비만형 중년 남성 환자들에게 액토스를 우선하여 처방합니다.
20. 여담입니다만 TZD의 특수한 기전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합병증으로 이어지지 않았겠느냐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설계도(DNA)로 기계(RNA)를 돌려 제품(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설계도를 기계에 입력하는 태초의 과정에 작용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부분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 것 아닐까 하고 상상해 보는 것이지요. 사실 액토스 역시 지금은 해소되었지만, 한때 방광암 위험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현재도 FDA는 장기 복용 시 방광암 위험 가능성에 대해 주의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 TZD란? PPAR-γ 작용제들은 화학 구조상 티아졸리딘디온(Thiazolidinedione, TZD)이라는 골격을 가지고 있어 TZD 계열 약물로 분류됩니다. 1997년 개발된 레줄린을 시작으로, 이 약물들은 당뇨병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