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약
1. 이 당뇨약은 인슐린 저항성이 시작되는 최초 단계인 지방 독성을 개선하는 원리로 개발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제2형 당뇨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2. 1970년대, 최초의 지질 강하제인 클로피브레이트가 개발되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클로피브레이트는 기전은 명확하지 않았으나 중성지방을 떨어뜨리고 HDL을 높이는 효능이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동물 실험에서 과산화소체(Peroxisome)라는 세포 내 소기관이 늘어나는 것이 관련되지 않을까라고 짐작했고, 클로피브레이트를 과산화소체 증식제(Peroxisome Proliferator)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3. 일본의 제약사인 다케다(Takeda) 또한, 과산화소체 증식제 구조의 지질 강하제인 시글리타존을 개발해 냅니다. 이전 미녹시딜 포스팅에서 전해드린 것과 같이, 당시에는 효과가 확인된 물질과 비슷한 분자 구조의 화합물을 만들어 실험해 보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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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런데, 다케다사의 신약엔 썩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효과가 좋았지만, 막상 사람에게 투약해 보니 중성지방의 감소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미국에 진출한 클로피브레이트마저 예상하지 못한 담석 발생의 부작용이 다수 보고되었고, 환자들의 심혈관계 사망률마저 되려 높아지는 결과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5. 그래도 나쁜 소식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업존(Upjohn)의 신약 미녹시딜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혈당 강하 효과가 시글리타존에서 확인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케다 사는 당뇨 약제로서의 개발도 포기합니다. 당시 주사형 인슐린의 불편함을 개선한 설포닐유리아와 비구아나이드, 즉 메포민이 경구용 당뇨 약제로 개발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글리타존은 비록 혈당을 떨어뜨리긴 했지만, 설포닐유리아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고, (불명확한 기전 탓에) 부작용도 우려되었기에 성공이 불투명해 보였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6. 시간이 흘러, 1990년 미국의 연구팀이 피브레이트 약제가 어떤 기전을 통해 중성지방을 떨어뜨리는지를 드디어 밝혀내었습니다. 피브레이트 약제는 체내로 흡수되면 잠들어 있던 세포 내 유전자를 작동시켜 특정한 세포를 만들어내거나 특정 작용이 시작되게 만드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약으로 DNA 속 유전자 스위치를 직접 켜거나 끌 수 있다니, 당시로서는 충격에 가까운 작동 방식이었습니다.
7. 그때까지의 약들은 대부분 세포막의 수용체나 효소 과정에 관여해 작용하는 것이 전부였고, 이런 방식으로 작용하는 약은 피브레이트 약제가 최초였습니다.
8. 이렇게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방식을 통한 치료법 중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유방암에 쓰이는 약물인 타목시펜입니다. 일부 유방암 환자에서 에스트로겐이 수용체(ER)에 결합하면 특정 암유전자 (c-Myc, Cyclin D1)를 깨워 유방암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도우는데, 타목시펜이 에스트로겐 대신 결합하면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증식이 멈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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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피브레이트는 간에 작용하여 중성지방(Triglyceride)을 낮추고 HDL-콜레스테롤을 만드는 유전자가 발현되도록 촉진했습니다. 알고 보니 뜬금없이 담석환자가 많이 발생한 것도 담즙으로 콜레스테롤을 배출하는 수송체가 피브레이트로 인해 많이 발현된 이유였음을 알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수용체를, 이전 분류, 과산화소체 증식제(Peroxisome Proliferator)에서 이름을 따 PPAR (Peroxisome Proliferator-Activated Receptor) 수용체라고 부르기로 했고, 이후 연구를 거듭해 간 외의 PPAR 수용체를 발현하는 다른 조직도 발견해 냅니다.
10. 마침내 과학자들은 지방세포와 관련된 PPAR도 밝혀냅니다. 지방 조직에 작용하는 PPAR는 γ형으로 PPAR-γ가 작용하면 지방세포가 “새로”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1. 놀라운 점은 “새로” 만들어진 지방 세포는 아직 인슐린 저항성이 없기 때문에, 유리지방산을 훨씬 안정적으로 고분고분하게 잘 저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유리지방산이 덜 방출되니 간과 근육의 인슐린 저항성 문제도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당뇨환자는 전신적인 인슐린 감수성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당뇨병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기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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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97년 최초의 PPAR-γ 작용제, 레줄린 (Rezulin)이 일본의 또다른 제약회사 다이이치 산쿄(Daiichi Sankyo) 에 의해 개발됩니다. (불쌍한 다케다) 이전과 다른 기전의 신약에 고무된 미국 FDA는 레줄린을 우선 심사 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빠른 출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