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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슐린 (3)

김여사 분투기 [인슐린저항성-1]

by 예재호

1. 생활비로 300만 원 주던 남편이 갑자기 매달 3,000만 원씩이나 벌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와! 상상만 해도 행복합니다. 없는 수입에 애들 교육까지 챙기느라 알뜰살뜰, 억척스럽게 살아온 우리 김 여사의 고생도 이제 끝이 나는 걸까요?


그런데 막상 매달 3천만 원씩 받으니 처음에는 좋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인슐린 저항성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2.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슐린은 ‘쓰지 말고 저축하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내 집안을 단속시키는 엄격한 안주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수입이 늘어나 버리면 (살이 찌면), 김여사가 해왔던 대로 살림을 관리하기가 굉장히 난감해지기 시작합니다.


3. 지난번 글에서 김여사가 씀씀이를 단속하던 장기를 한번 곰곰이 떠올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글을 다시 한번 보고 오셔도 좋습니다)


https://brunch.co.kr/@ye-jae-o/100


간은 생활비를 내어 쓰기 위해 넣어둔 자유 입출금 통장이었고, 근육은 아이들에게 쓰이는 교육비와 같은 투자, 지방은 먼 미래를 대비한 적금이나 보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셋 중에 크게 늘어난 벌이가 꾸준히 들어오는 행복한 상황을 맞이하면 가장 먼저 하찮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매달 5만 원씩 넣어 오던 적금, 그러니까 지방 세포가 될 것입니다.


4. 우리 몸에서 인슐린 저항성이 시작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도 바로 지방세포부터입니다. 쓰고 남은 에너지가 꾸역 꾸역 담겨진 지방 세포는 사실 인슐린이라는 로프로 가까스로 지탱되고 있는 상황에 가깝습니다. 왜냐 하면 다른 모든 호르몬들(식구들)은 지방 세포에서 에너지을 내어 쓸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5. 그도 그럴 듯이 생명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혈당이 높아지는 것은 혈당이 낮아지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덜 위급한 상황입니다. 혈당이 낮아진다는 건 금방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혈당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인슐린이 유일한 데 반해, 반대로 혈당을 올리는 호르몬은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4~5개가 훌쩍 넘게 과하게 마련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6. 하여간 초기엔 수입이 아무리 늘어나도 우리의 김여사, 인슐린은 어떻게든 바득바득 적금을 유지하려 합니다. 그래야지요. 당장 좀 잘 벌린다고 흥청망청 쓸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모든 문제의 원흉이 등장합니다. 우리 몸은 아쉽게도 하나의 적금 구좌엔 최대 5만 원 밖에 못 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대신 가입할 수 있는 개수는 한도가 없습니다.)


네, 지방 세포 하나에 저장할 수 있는 지방은 한도가 있지만, 지방 세포 개수를 늘릴 수는 있는 것입니다.


lipolysis.png 노란 모세혈관 길을 다니며 적금 단속을 하는 김여사를 떠올려 보십시오.


7. 300만 원 벌이 시절, 많아야 적금 10개 정도 관리하던 때와 비교해, 늘어난 수입에 맞추어 5만 원짜리 적금을 500개, 많으면 600개까지 관리해야 하는 지금은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상황입니다. (아, 김여사에게 다른 투자법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8. 꾸덕꾸덕 지방세포 개수가 증가하고, 허리 둘레가 늘어난 탓에 거기까지 닿아야 할 혈관의 길이도 늘어나고, 김여사가 적금을 살펴보려 다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납니다. 결국 김여사, 인슐린의 감시에서 벗어나는 지방세포가 생겨나기 시작해서, 몇 개는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가설을 과학자들은 지방 독성 (lipotixicity)이라고 부릅니다)


9. 지방 조직이 과도하게 커지면, 혈관으로 부터 공급받는 산소가 부족해지고 스트레스 상태에 놓인 지방세포는 염증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염증이 많아진 환경은 지방세포의 인슐린 저항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지방 분해를 촉진하는 신호(글루카곤, 카테콜아민 등)가 작용해 지방산 분비를 더욱 가속화시킵니다. 이렇게 지방세포에서 유리지방산(Free Fatty Acid, FFA)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현상은 인슐린 저항성이 시작되는 가장 초기의, 그리고 핵심적인 기전 중에 하나로 여겨집니다.


10. 그런데, 그래, 적금이야 안 들어도 괜찮지 뭐, 3,000만 원씩 벌리는데 뭐.라고 생각할 게 아닙니다. 갑자기 늘어난 현금 흐름 (온 집안 곳곳에 현금다발이 수북한 상황) 탓에 다른 장기들도 연달아 영향받기 시작합니다.


OBESEMAN.png 이분의 적금 갯수는 몇 개 일까요?


내일은 간에 대해 설명해드리려 합니다. 그 전에 읽어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https://brunch.co.kr/@ye-jae-o/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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