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2)
1. 지난 글을 근육 강화 목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는 보디빌더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것은, 단지 흥미를 끌어보려 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실은 그분들의 쓰임새야말로, 어쩌면 인슐린의 기능을 가장 최적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인슐린은, 단순히 혈당을 떨어뜨리는 당뇨약(그것도 가장 비극적이고 종말적인 뉘앙스의 치료)으로 다가오기가 쉽지만 실제로 우리 몸에서 인슐린이 가장 많이 작용하는 장기는 ‘근육’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 식사를 통해 영양분이 흡수되어 혈당이 높아지면, 포도당이 많이 섞인 혈액이 췌장으로도 흐르고 ‘단맛’을 느낀 췌장은 내부에 보관하고 있던 인슐린을 밖으로 내보냅니다. 출하된 인슐린은 혈액을 돌며 여러 가지 작용을 하는데 일관된 목표는 “쓰지 말고 저축하라” 라 할 수 있습니다.
3. 정상적인 상황에서 인슐린은, 우리 몸에 있어 알뜰살뜰하고 엄격한 안주인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가장이 월급으로 매달 300만 원을 벌어온다면, 기껏해야 30만 원 정도만 용돈으로 주고 나머지는 모조리 저축하거나 아이들 교육에 투자하는 짠순이에 가깝습니다.
인슐린이라는 안주인이 어떻게 흡수된 영양분을 관리하는 지 작용하는 장기를 나누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4. 첫째로 간입니다. 간에 인슐린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는 이미 한 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혹시 기억나는 분이 계시는가요? 맞습니다. 우리가 중성지방 편에서 다뤘듯이, 인슐린은 간에서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변환하여 저장하도록 유도합니다. 글리코겐을 둘 자리가 다 차면 저장 단위, 중성지방으로 변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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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슐린의 관리를 받아 간은 마치 예·적금이 자유로운 입출금 통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인슐린은 혹시나 이자가 발생해도 돈을 찾아내지 못하게 매의 눈으로 감시합니다. 간은 유사시 포도당을 생성해 내어 각 장기로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인슐린은 이러한 포도당 생성 과정도 억제합니다.
6. 둘째로, 인슐린은 지방세포에 작용해 포도당을 지방으로 변환하여 내부에 저장하도록 명령합니다. 간에 저장시킨 글리코겐이 아이들 학원비나 경조사비 같이 생활비로 바로바로 꺼내 쓸 수 있는 계좌라면, 지방세포는 적금이나 연금보험과 같은 형태입니다. 역시 인슐린은 누군가가 적금을 몰래 해약하지 않도록 준엄하게 감시합니다.
7. 마지막으로, 드디어 가장 중요한 근육입니다. 앞서 무서운 안주인이 들어온 돈을 모조리 저축을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에는 투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인슐린이 근육에 작용하는 것은 다른 장기와 달리 단순히 저축만 하는 것에 이르지 않습니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8. 인슐린은 근육세포가 포도당을 내부로 흡수하여 글리코겐을 합성하게 만듭니다. 어라, 그러고 보니 간도 인슐린의 명령을 받아 글리코겐을 합성했으니 동일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은 유사시 당장 내어 쓸 수 있지만 근육세포가 만들어낸 글리코겐은 근육 세포 내에서만 쓰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9. 근육이 만들어낸 글리코겐은 근육이 수축할 때 즉각적인 에너지원으로 쓰입니다. 웨이트 트레이닝, 단거리 달리기 등 무산소 운동에는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이 필수입니다. 영양보충제 중에서는 빠르게 흡수되면서도 혈당 스파이크는 줄이는 방식으로 제조된 고분자량 탄수화물도 있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불어 인슐린은 근육세포가 아미노산을 흡수하도록 촉진하고, 단백질을 합성하게 만듭니다.
10 .앞에서 예를 든 보디빌딩에 있어서 근력 운동으로 인해 근섬유에 미세한 손상이 발생하면, 손상된 부위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인슐린의 도움을 받아 투자받은 근육은 더 크고 강하게, 두꺼워질 수 있습니다.
11. 인슐린이 없던 시절 소아당뇨(1형 당뇨) 환자들의 치료가 너무나 슬펐다고 말씀드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슐린은 우리 몸을 건설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므로 성장과 관련된 호르몬들이 아무리 분비되어도 인슐린이 없다면 큰 효과가 없습니다. 게다가 혈당을 떨어뜨리느라 기아 상태라 할 정도를 열량 제한을 하였으니 얼마나 안타까운가요. 실제로 인슐린 이전의 당뇨 아동들은 발육 부전과 심각한 성장 지연을 겪었습니다.
12. 그런데 이쯤 읽고 나니 의문이 드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포도당을 쓰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 뇌라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뇌는 혈액으로 흡수된 포도당을 쓰는 중요한 기관 중의 하나입니다. 다만, 뇌는 인슐린이 없어도 포도당을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포도당 흡수 자체는 인슐린에 크게 의존적이지 않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뇌의 인슐린 수용체가 기억, 식욕, 인지 기능 등 중요한 신경 활동에 깊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13. 뇌 외에도 인슐린이 작용하는 장소 한군데를 더 말씀드려야 합니다. 다름 아닌 혈관의 내피세포입니다. 인슐린은 혈관의 내피세포에 작용해 혈관 확장에 관여하는 산화질소(NO) 생성을 촉진합니다. 이전에 나왔던 글 중에 혈관의 내피세포가 언급되었던 적이 있었던 걸 기억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맞습니다. 앤지오텐신-2입니다. NO와 앤지오텐신은 이후 당뇨병의 혈관합병증과 연관되는 중요한 항목이니 기억해 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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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내일은, 무서운 안주인이 없는 상황과, 안주인의 관리에서 벗어나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우리 몸의 상황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