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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슐린 (4)

김여사 분투기 [인슐린저항성-2]

by 예재호

1. 8시간 이상의 금식 후 측정한 공복혈당이 126 mg/dL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공복혈당은 의사들이 인슐린을 처방할 때 가장 먼저 조절하고자 목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밤새도록 먹은 것도 없을 텐데 어째서 공복 혈당이 높게 나오는 걸까요? 우리는 이 공복혈당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인슐린 저항성의 두 번째 타래, 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 자, 다시 행복할 줄만 알았던 김 여사의 상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적금 계좌가 너무 많이 생성된 탓에 인슐린의 감시에서 벗어나 풀려난 에너지(돈), 즉, 자유 지방산이 혈류로 와르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안 그래도 벌이가 좋아져서 매달 3천만 원씩 생활비로 받는 데, 적금을 해약한 돈까지 쏟아지다 보니 집 안 곳곳에 (혈관 안에는) 돈이 가득합니다.


96b109284eb786398b59ae1b264ee91c.jpg 또 벌어왔어? 생활비를 또 줘? 안 줘도 되는데..


3. (근육에서 운동을 통해) 차라리 흥청망청 쓰기라도 하면 그나마 나을 텐데, 그러지도 않는다면 감당이 안 되는 현금은 모조리 다 한 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상하셨다시피 그곳은 바로 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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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방세포에서 풀려난 유리지방산이 돌고 돌아 간에 휩쓸려 들어와도, 간은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중성지방으로 다시 재조합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잔업을 하고, 야근도 하고, 특근을 하고, 주말 잔업까지 해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유리지방산은 도무지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중성지방으로 만든 다음, 혈관을 통해 지방세포로 보내어도 금세 풀려나서 또 되돌아오니까요.


5.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역부족이라서 입고된 재료가 간에 쌓이기 시작하면, 우리가 잘 아는 지방간이 됩니다. (실제로 당뇨약 중에는 지방간의 치료제로 쓰이는 것이 있습니다.)


fattyliverUS.png 갈수록 어두워지는 콩팥, 하지만 실제로는 기름이 끼인 간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입니다.




6. 우리의 김 여사도 이 상황을 두고 보고 있지만 않습니다. 흥청망청 써대는 상황을 막아보고자 췌장의 베타 세포에서는 "만들어 두었던" 인슐린을 최대한 많이 분비합니다. 나중에 나올 내용입니다만 공복 상태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의 정상범위는 2~10 μIU/mL인데 반해, 인슐린 저항성이 시작된 환자는 공복 상태에서도 인슐린이 30~50 μIU/mL씩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추후 HOMA-IR에서 다시 설명, '만들어 두었던'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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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슐린이 많이 분비된 탓에 하필이면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는 간에게까지 잔소리가 들어갑니다. "네가 고생하는 건 아는데, 이렇게 집안에 현금이 많은데 너도 좀 더 일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재촉하는 겁니다.


8. 당연히 간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합니다. "아니,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보내봐도, 네(인슐린)가 잘하지 못하는 탓에, 금방 풀려 나와서 되돌아오는데,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부아가 치밀기 시작합니다. (나는 매끈했던 모습도 잃어버리고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벗지도 못하고 있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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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결국, 간이 더 이상 인슐린의 명령을 듣지 않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인슐린 저항성의 시작입니다. 물론,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지어내기는 했지만 결과는 동일합니다. 간 내에 지질 대사산물(유리 지방산 등)이 너무 증가된 탓에 인슐린의 명령을 전달하는 신호체계에 이상이 생겨 간에 대한 인슐린의 작용 효과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10. 이번 글의 서두로 돌아가서, 공복 혈당이 높게 나오는 것은 간의 책임입니다. 간은 마지막으로 한 식사까지 부지런히 쟁여 놓았던 글리코겐을 야금야금 부수거나, 아미노산 등 다른 재료로 포도당을 새로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포도당을 상시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간에서 만들어 낸 포도당으로 우리 뇌는 꿈도 꾸고 잠꼬대도 할 수 있습니다.


11. 지난번 편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몸에서는 여러 가지 안전 창지를 통해 혈당이 일정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뇌의 유일한 에너지원이 포도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혈당이 떨어져 뇌의 기능이 중단되면 생존에 즉각적인 위협이 됩니다. 사실 이렇게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높은 혈당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높은 혈당은 차라리 뇌에게는 좋은 환경일지도 모릅니다.


12. 그래서 간도 필요할 때, 포도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시 만들어 내는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혈당 인플레이션을 막는 장치는 아시다시피 인슐린만이 유일합니다. 간도 인슐린의 명령을 들을 때만, 포도당을 그만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다름 아닌 간이, 유일한 잔소리꾼, 인슐린에 저항성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슬그머니 혈당, 그것도 공복 혈당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건강검진에서 '공복혈당 장애'라는 불길한 진단명을 듣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입니다.)




14. 공복 혈당을 조절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취침 3시간 전에는 공복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야식을 먹으면 흡수한 탄수화물이 간으로 들어가 글리코겐으로 조합되고 밤새도록 그 글리코겐이 분해될 것입니다.


15. 그렇다고 저녁에 너무 탄수화물을 덜 먹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소화가 다 된 다음에 혈당이 일정 이상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혹은 너무 급격히 떨어져 버리면 혈당을 올리는 호르몬(글루카곤)이 득세하게 됩니다. 적절하고 일정한 양의 건강한 탄수화물(잡곡 등)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16. 무엇보다 잠을 잘 자면 공복혈당이 잘 조절됩니다. 수면 부족은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하여 간의 포도당 신생을 촉진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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