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 분투기 [인슐린저항성-3]
1. 지난번 글에서, 간에서의 인슐린 저항성이 공복혈당의 원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식후 혈당의 상승에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삐뚤어지는 아이들, 근육 편입니다.
2. 식사 직후, 우리가 흡수한 포도당의 대부분(60~70% 이상)은 다름 아닌 근육이 쓰거나 저장합니다. 물론 뇌도 포도당을 많이 쓰는 기관이기는 하지만, 음식을 먹었다고 더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소모하지는 않으며, 일정하게 지속적으로 소모하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근육에서 섭취한 포도당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식후 혈당이 높아지게 됩니다.
3. 자, 다시 이해를 돕기 위해 김 여사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적금 개수가 늘어난 탓에 김 여사(인슐린)의 감시에서 벗어난 지방세포가 생기기 시작하고, 그 결과 지방세포가 겨우겨우 담고 있던 유리지방산이 풀려나는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방독성 가설) 풀려난 유리지방산은 간으로 들어가 인슐린 저항성을 만들고 공복혈당을 올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4. 우려했던 것처럼, 풀려난 유리지방산은 간으로만 가지 않고 근육으로도 많이 흡수됩니다. 근육 또한 간처럼, 유리지방산을 중성지방으로 재합성하여 저장하거나 에너지원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은 고강도 운동에는 글리코겐이 중요하지만, 가벼운 걷기와 같은 일상적인 환경에서는 지방이 주된 에너지원으로 쓰입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이런 근육 내 중성지방(IMCL)의 저장 능력이 발달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 그렇게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도 교육 만큼엔 진심이었던 김 여사 덕에 건실한 상태로 유지되던 근육(아이들)에 갑자기 풍족한 용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간 갖고 싶었던 장난감도 못 사고, 눈치 보느라 새 옷을 사달라고도 못하던 아이들은 신이 납니다. 거기까지면 좋았을 텐데 역시나, 누가 자꾸 바람을 넣습니다.
“야, 너희 집 돈 많은데 굳이 공부해야 해?”
6. 결국 심드렁해진 아이들이 엇나가기 시작합니다. 엄마의 마음도 몰라주고 엄마는 학원비를 꼬박꼬박 보내지만 (인슐린 수용체는 접합되지만) 정작 아이들이 땡땡이를 치고 학원에 가지 않습니다. (세포막으로 GLUT-4가 이동하지 않음) 역시 지방독성으로 근육의 인슐린 저항성이 시작된 것입니다.
생화학적으로 설명해 드리면, 인슐린이 수용체에 아무리 결합하더라도, 이후 과정 (IRS 인산화 과정) 에 장애가 생겨 포도당을 근육 세포 내로 흡수하는 GLUT-4 라는 관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GLUT-4를 기억해 두세요!)
7. 문제가 여기까지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유리지방산을 근육에서 써주니 (월 3천만 원씩 들어오는 수입의 대부분을 아이들이 써준다면, 당뇨 환자분들의 말씀을 빌리자면 ‘하루에 만 보 이상이라도 걷는다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지만 그게 아닙니다.
앞서 인슐린이 근육 조직에 주는 영향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보디빌더들이 인슐린을 근육 강화 효과가 쓴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해 드렸다시피, 인슐린은 근육세포에 ‘포도당을 흡수해’라는 것 외에 또 다른 명령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https://brunch.co.kr/@ye-jae-o/54
8. 근육세포에서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기 시작하면 인슐린의 또 다른 명령 “아미노산을 흡수하여 단백질을 합성해라.”가 무시당하기 시작합니다. 김 여사의 상황으로 보자면, “근육아(아들딸아) 더 커지고, 건강해져라.”라는 명령도 아이들이 듣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슐린은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동화호르몬 중 하나이므로 근육이 인슐린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되어 돌아가기 시작됩니다. 근육은 성장을 멈추고, 여러 과정을 거쳐 분해가 촉진됩니다. 줄어든 근육은 몸에 흡수된 탄수화물을 더더욱 덜 처리합니다. 바야흐로 제2형 당뇨의 시작입니다.
https://brunch.co.kr/@ye-jae-o/100
9. 앞서 전해드린 보디빌더들이 근육을 크게 만들기 위해 인슐린을 쓰고 있고 그것이 인슐린의 최적화된 쓰임새일 수도 있다고 말씀드린 내용은 그래서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김 여사(인슐린)가 꿈꿔왔던 미래가 진심으로 그분들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많은 수입 (고탄수화물 섭취)을 학구열이 뛰어난 아이들(거대한 근육) 에게 잘 쓸 수 있게 밖에서 인슐린(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가정교사) 을 지원까지 해주니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말 그대로 꿈꿔왔던 미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인슐린 도핑을 옹호하거나 독려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10. 그래서 요즘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지시는 식후 혈당 스파이크는 사실 어떤 음식을 먹었는가보다, 먹은 음식을 얼마나 근육에서 써주는지를 함께 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GI 지수가 높은 음식을 우걱우걱 먹더라도 근육만 잘 받쳐준다면 식후 혈당은 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잡곡밥을 먹고, 방탄 커피를 마시고, 저탄고지 식사를 하더라도 받쳐주는 근육이 없다면, 아니 정확히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11. 그래도 추석 연휴의 시작인데 너무 우울한 이야기로만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는 그래서 희망찬 소식을 하나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앞서 기억하라고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네, 맞습니다. GLUT-4입니다. GLUT-4는 근육세포가 포도당을 근육세포 내로 흡수하기 위해, 필요한 ”관문“으로서 인슐린의 명령을 받아 근육세포가 생성하는 것입니다. 근육세포가 인슐린에 저항성을 가져서, GLUT-4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근육세포 내로 포도당이 흡수되지 못하게 됩니다.
12. 그런데, 운동, 특히 근력 운동 중에는 인슐린이 없어도! GLUT4가 세포막으로 이동합니다. 인슐린에 저항성이 생겨버린 제2형 당뇨병 환자도 근육 수축에 의한 AMPK 활성화 경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동을 통해 이 인슐린 독립적 경로를 활성화하면 혈당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으며, 이 효과는 운동 후 수 시간(길게는 24~72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13. 마치 엄마의 잔소리가 없어도 알아서 숙제하는 아이들처럼, 선순환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이번 추석에는 식사 후 바로 눕거나 쉬지 마시고 가벼운 활동이나 근력 운동을 해서 고생하는 김 여사(인슐린)을 도와주도록 하시면 어떨까요?
즐거운 추석 명절 되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