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약은 동전 500원 크기라 참 먹기 곤혹스럽지만, 그럼에도 전국의 거의 모든 당뇨환자는 빠짐없이 처방받습니다.
2. 우리 몸의 김여사, 인슐린은 귀한 에너지를 허투루 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어떻게든 남는 에너지는 지방 세포에 저장하려고 하고, 쓰더라도 꼭 의미 있게 쓰기 위해 근육에 GLUT-4라는 문을 내어 자식들에게 먼저 포도당을 먹이려고 합니다. 절대 존엄-뇌의 명령을 받아 항시 포도당을 만들어 내는 간마저도, 김여사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할 때는 순순히 작업을 중단합니다.
3. 그런데 알뜰살뜰한 절약정신은 뛰어나나 재테크에는 잼병이었던 김여사는 어느 순간 수입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남는 돈을 적금 계좌에만 부었고, 문득 정신 차려보니 적금(지방 세포) 개수만 수억 개나 되어 버렸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늘어난 지방세포를 인슐린, 김여사가 전부 관리하지 못해 시작된 것이 인슐린 저항성, 제2형 당뇨의 시작이었습니다.
4. 자신은 몸(가정)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아득바득 모은 것뿐인데 점점 망가져가는 집안 형편을 보며 우리의 김여사의 마음은 얼마나 착잡했을까요. 2형 당뇨를 진단받을 때쯤, 이제는 최소한의 본분, 혈당 낮추기도 잘 안되다 보니 체면도 잘 서지 않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생각에 더 많이 (인슐린 분비를 늘림) 일해 보려 해도 이미 엇나간 식구들(몸)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 구원군이 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AMPK입니다.
5. 비구아나이드, 메트포르민에 대해서는 많이들 아실 것 같습니다. (2편에서 말씀드리겠지만 지금까지는) 당뇨 치료의 첫 번째 치료제이며, 설포닐유리아와 같이 인슐린 분비를 늘리는 기전이 아님에도 혈당강하 효과가 좋으며, 특유의 큰 알약 제형이 굉장히 먹기 까다롭게 만들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인지 체중도 좀 빠지고, CT 촬영 전에는 중단해야 하며, 항노화기능이 주목받고 있고, 당뇨약뿐 아니라 다낭성 난소증후군 (PCOS)이라는 산부인과 질환에서도 쓰인다는 것 까지도 아시는 분들이 제법 많으실 것 같습니다.
6. 하지만 놀랍게도 사실 비구아나이드는 아직까지 그 기전이 전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편에 설포닐유리아만큼 오래된 경구약제임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서두에 말씀드린 인슐린, 김여사를 도와주러 온 AMPK (AMP-activated Protein Kinase)라는 효소가 메트포르민이 효능을 발휘하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임은 분명합니다. AMPK는 세포 내에 ATP가 부족할 때 활성화되는 효소로서 그 역할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바로 "저 전력 모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비구아나이드라는 이름은 구아니딘이라는 다뇨증 치료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실은 구아니딘의 혈당강하효과가 비구아니딘보다 더 강했는데 그 탓에 저혈당이 너무 심하게 와서 약효를 줄이는 방향으로 처리한 화합물이 비(bi)구아나이드였습니다. (구아니딘 두 분자가 결합됨) 메트포르민 또한 최초의 비구아나이드 계열의 약제가 아닌데, 다른 비구아나이드 계열은 체내에서 대사산물이 오래 잔류하여 유산산증을 일으키는 부작용 때문에 퇴출되었습니다.
8. 비구아나이드는 세포 안에 있는 작은 엔진 미토콘드리아를 방해해 ATP 생성을 억제합니다. 초기의 비구아나이드가 퇴출되었던 이유도 바로, ATP 생성을 너무 많이 억제한 탓이었는데 ATP가 덜 만들어지다 보니 비상상황의 에너지 생산 작용을 통해 젖산이 과도하게 만들어졌고 치명적인 유산산증을 유발했습니다. (비상 상황의 에너지 생산 작용은 혐기성 해당과정으로 무산소 운동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집니다)
9. 비구아나이드에 의해 ATP 생산이 줄어들면 우리 세포는 AMPK라는 알람을 울리기 시작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AMPK는 저전력모드 돌입!이라는 신호로서 AMPK는 우리 몸의 전 장기를 쏘다니며 '에너지 사용 금지, 위험! 위험!'이라는 경고를 보냅니다. (우리 몸의 전 장기를 쏘다니는 것이 아직까지 비구아나이드가 하는 일이 모두 규명되지 않은 이유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로 영향을 받는 장기는 간, 근육, 그리고 장 이렇게 세 군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0. 비구아나이드는 일차적으로 간을 저전력 모드로 만듭니다. AMPK가 발동된 간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작업이 억제됩니다. 아무래도 고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 중에 '물질의 합성과정'이 빠질 수가 없습니다. 간이 절대 존엄-뇌를 위해 항시 준비하는 포도당 신생 작업도 매우 에너지가 많이 드는 과정이므로 느려집니다. (이제 와서 말씀드리지만 음식으로 먹은 다른 영양성분을 포도당으로 바꾸는 일은 꽤나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라 가성비가 무척 떨어지는 일입니다.)
11. 문득 우리의 김여사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 모습이 떠오르진 않으셨나요? 맞습니다. AMPK는 인슐린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포도당 신생 작업을 하던 간을 멈추게 만듭니다. 그래서 메트포르민은 공복혈당을 잘 떨어뜨립니다.
12. 탄수화물뿐 아니라 다른 물질의 합성 과정도 느려집니다. 지방산 합성 과정에 작용해 콜레스테롤과 지방산 합성 모두의 재료가 되는 아세틸 CoA의 생산을 줄입니다. 단백질도 마찬가집니다. mTOR 경로를 억제해서 세포가 성장을 멈추고 손상된 부분이나 고치도록 명령합니다.
13. 다음으로 비구아나이드에 의해 AMPK 가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근육입니다. 배터리가 부족한데, 혈관에서 빈둥거리는 포도당이 있어선 안 됩니다. AMPK는 근육세포가 GLUT-4를 활짝 열게 하여 혈관 속 포도당을 최대한 흡수하도록 만듭니다. 오락실 갈 돈이 부족할 때는 장롱밑에 있는 동전까지 샅샅이 훑어 모아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