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약은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2. 비구아나이드, 메트포르민에 의해 AMPK가 활성화되는 마지막 부위는 장입니다. AMPK가 활성화된 장은 저전력 모드로 돌입해, 음식물의 흡수 속도가 느려집니다. 당장 에너지가 필요하니 얼른 흡수해도 모자를 상황일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음식물을 흡수하는 것도 품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3. 비구아나이드는 체중을 감소시키는데, 위에서 말씀드린 흡수 속도 저하로 인한 위장장애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화속도가 지연되다 보니 원위부 소장까지 음식물이 닿고, 그 결과 GLP-1 분비가 늘며 식욕이 떨어지는 영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체중 감량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4. 요약해 보면 AMPK의 활성화는 간의 포도당 신생 작용을 저하시키고, 근육의 GLUT-4를 열어 포도당을 흡수하게 만들고, 지방산을 만드는 재료 공급도 중단합니다. 이렇게 보니 인슐린이 하는 일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차이점이라면 혈당 자체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니 저혈당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 이렇게 인슐린과 유사한 역할을 하므로 비구아나이드는 혈당 강하 효과가 뛰어납니다. 메트포르민은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단독으로 투여했을 때, HbA1C (당화혈색소) 수치를 1.0%에서 2.0% 정도 감소시킬 것이라고 기대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설포닐유리아와 더불어 경구 당뇨약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효과입니다.
6. 다만, 안타깝게도 혈당 강하 효과를 보려면 최소 1500mg 이상은 복약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메트포르민을 드신 분들은 ‘목에 걸릴 정도로 크다’, ‘먹고 나면 속이 너무 더부룩하다’ 등의 불만을 자주 말씀하시는데 사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런 약을 이렇게나 많이 주냐고!) 메트포르민은 흡수율이 높지 않아서 상당량의 메트포르민이 대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입니다.
7. 그래서 ‘이 약은 흡수가 되지 않고 변으로 자꾸 나와요’는 말씀도 실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행히도 변으로 나오더라도 약효는 나오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방정이 유행하면서 크기는 더 커지고 흡수되지 않고 변으로 나오는 문제도 심해지는 양상이 있습니다. 알약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 채 대변에서 발견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나 약은 흡수가 되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8. 서두에 말씀드린, 항노화 치료제로 메트포르민이 각광받는 이유는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는 저전력 모드로 몸이 돌아가게 만드니, 배터리가 훨씬 오래가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수명만 연장시킨다고 항노화 치료는 아니겠지요. 메트포르민에는 조금 더 특별한 기전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단백질 합성경로인 mTOR 경로가 억제됨으로써 세포는 성장을 멈추고 그 대신 손상된 부분을 고치는데 열중하는데, 이때 일어나는 자가 포식 과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9. 저는 당뇨약제로서의 메트포르민에 대해 다루고 있으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정리하도록 하고, 한 가지 말씀은 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메트포르민의 효과는 용량 의존적인데, 항노화 효능은 과연 어떨까요? 흔히들 드시는 500mg으로 충분할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의문입니다.
(항노화 효과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7347426/
10. 이처럼 항노화 치료 영역에서는 날이 갈수록 주목받는데 반해, 당뇨치료에서의 메트포르민은 예전의 굳건한 지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2025년 대한당뇨병학회(KDA) 진료지침에서는 메트포르민이 우선 사용 1차 약제에서 제외될 정도입니다.
11. 다른 가이드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당뇨병학회(ADA)와 유럽당뇨병학회 (EASD)의 가이드라인에서도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 심부전, 만성신장질환 중 하나라도 동반하거나 위험인지가 있으면 혈당 수치와 무관하게 초기부터 SGLT-2i 또는 GLP-RA 등의 심장, 신장 보호 효과가 입증된 약제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도록 권고했습니다. (메트포르민이 아니라)
12.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트포르민은 여전히 최고의 제2형 당뇨병 약물 중 하나입니다. 메트포르민이 1차 약제에서 제외된 것은 이전까지 없었던 부작용이 확인되었거나 효과가 과대평가된 탓이 아닙니다. 앞서 다루었던 SGLT-2i와 GLP-1 RA가 보여준 부가적인 효능이 워낙 대단해서 생긴 일입니다.
13. 당뇨 환자의 관리에서, 당화혈색소의 감소가 더 이상 우선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도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 설포닐유리아 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아직도 당화혈색소를 낮추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구닥다리 의사입니다만, 최근의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14. 미국 ADA의 가이드라인에서도 심장과 혈관, 신장 보호만 된다면 당화혈색소는 완화하여 관리하도록 권유합니다. 특히 이미 합병증이 진행된 (Established cardiovascular complications) 환자에서 이전과 같이 당화혈색소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을 더 이상 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15. 이는 이미 진행된 미세혈관/대혈관 합병증 환자에서 엄격한 혈당조절이 되려 사망률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다수의 연구결과에서 (ACCORD 연구 등) 비롯되었습니다.
16. 아마도 이런 추세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는 국내 의료 환경도 대한당뇨병 학회가 메트포르민을 1차 약제에서 제외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이번 가이드라인 개편에 참여한 대한 당뇨병 학회의 최종한 교수님은 1차 약제에서 제외한 결정이, 메트포르민이 환자에게 더 유익한 신약을 초기부터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17.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는 다른 약제를 투약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메트포르민을 소량 (500mg 이하) 처방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던 만큼 급여 기준에 따라 약제를 선택해야만 하는 관행이 개선될 것이라 기대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18.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부터 강력하게 혈당을 잡아채려는 노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유병기간이 짧을수록 (Short dibetes duration), 동반 질환이나 합병증이 없을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SGLT-2i나 GLP-1RA만 쓴다고 하여 당뇨치료가 잘 되고 있으니 당화혈색소가 좀 높게 나오는 건 안심해도 된다. 는 의미로 이 글이 읽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