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병은 여성에서 남성보다 10배 더 많이 발생합니다. 환자는 대부분 50대이고, 피로와 가려움증을 심각하게 호소합니다. 혈액 검사 중 ALP가 정상 상한치의 1.5배 이상으로 상승한 것이 이 병을 의심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2. ALP(Alkaline Phosphatase, 알칼리 인산분해효소)는 세포막 단백질의 일종입니다. 세포막 단백질은 세포 외부에서 내부로 물질을 들여오거나 내보내는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앞서 다룬 GLUT-4(포도당 관문), 이나 감마지티피(글루타티온 재료 관문)가 세포막 단백질의 일종이었습니다.
3. 검사에서 세포막 단백질이 높게 나온다면 해당 단백질이 어느 조직에서 많이 있냐가 관건이 됩니다. 예를 들어 감마지티피의 경우 간에도 있지만 글루타티온이 많이 필요한 뇌나 심장에도 많아서 높더라도 간의 문제인지 확답을 드리기 어려웠습니다. ALP는 골세포와 간세포의 세포막에 많이 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ALP가 상승하면 의사들은 이게 골의 문제냐 간의 문제냐에 대해 고민합니다.
4. ALP는 작은 직경의 담관(담즙이 생성되어 흘러가는 길) 세포에 많습니다. 비유해 보자면 화장실 세면대의 하수관 파이프를 이루는 세포라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작은 하수구가 모여 세대 하수관이 되고, 세대 하수관은 30층짜리 한 동의 하수관으로, 다시 그 하수관은 아파트 단지의 큰 하수관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이때 오폐수는 담즙산이 되고 큰 하수관은 총담관이 됩니다.
5. ALP가 담관을 이루는 세포에 많으므로 우리는 담관에 흐르는 담즙산에 대해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담즙산은 우리 몸이 지방을 소화하고 흡수하기 위해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리 몸은 물로 되어 있으므로, 지방을 가만히 놔두면 방울방울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다니는 탓에 흡수가 잘 되지 않습니다. 간에서 분비되는 담즙산은 똘똘 뭉친 지방산을 활짝 펼쳐 소화액이 작용하기 쉽게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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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담즙산은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한 4 체액설에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만큼 예로부터 중요히 다뤄졌습니다. 치료제로 쓰여왔던 웅담은 곰의 담즙산이기도 합니다. 다름 아닌 '콜레스테롤'이 담즙산을 만드는 재료로 쓰입니다. 간에서 담즙산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로 결정하면 우리 몸의 LDL 콜레스테롤은 감소합니다. 재료로 쓰기 위해 간에서 재흡수를 하기 때문입니다.
7. 그런데 담즙산은 매우 독합니다. 웅담을 먹어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웅담도 매우 씁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토했을 때 쓰고 탁한 맛이 나는 이유도 담즙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개개인 별로 더 독한 담즙산을 유달리 많이 만들어내는 유전형질도 따로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방에 작용해서 흡수되기 쉽게 녹이는 작업이라는 게, 유화나 페인트에 섞는 시너가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시너가 흘러가는 길이라니, 담즙관은 애초에 튼튼하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손상당하기 쉬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8. 게다가 우리 몸에서는 담즙산을 수 차례 재활용합니다. 담즙산의 약 95%는 소장 끝부분인 회장(ileum)에서 재흡수되어 간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몸 밖으로 배출되는 담즙은 겨우 5%에 불과합니다. 만약 담즙산을 함부로 내다 버리기 시작한다면 간에서는 콜레스테롤을 생산해 내느라 진이 다 빠져버리게 될 것입니다. 아무래도 재활용을 하다 보면 담즙산은 좀 더 독해지기 마련입니다. 튀기는데 쓰는 기름을 자꾸 재활용하다 보면 새까맣게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담즙산과 장에 있던 장내 세균이 반응하기도 합니다.
9. 담즙관이 역류하는 등의 문제로 하수관의 세포막이 부서지면 혈액에서 ALP가 높게 검출됩니다. ALP가 높게 나왔을 때 의사들이 복부 초음파를 권유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감마지티피까지 상승하면 더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10. 감마지티피와 ALP는 사실 거의 비슷하게 해석되는 닮은 꼴의 검사입니다. 감마지티피 또한 담즙이 내려가는 관을 둘러싸는 세포에 많이 존재하여 담즙의 역행이나 세포 손상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감마지티피와 ALP 모두 간에만 있지 않고 다른 장기에 존재한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물론 음주의 영향을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하지만, 감마지티마와 ALP가 함께 올랐다면 복부 초음파를 꼭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11. 하지만 둘 중에 더 안 좋은 수치를 고르라면 내과의사로서 감마지티피보다는 ALP가 좀 더 심각한 느낌입니다. 감마지티피가 200u/L 정도 올라있다면 '어젯밤 약주를 좀 하셨나 보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ALP가 200 정도 나왔다면 좀 더 진지해집니다. 앞서 다루었다시피 감마지티피는 글루타티온이 많이 필요해진 상황에서도 높을 수 있지만 ALP는 구조적으로 세포가 망가져야 나오기 때문입니다. 세포가 부서져야 높게 측정된다는 점은 AST나 ALT를 떠올리게 합니다.
12. ALP와 담즙의 이해를 도우기 위해 설명해 드릴 수 있는 다소 희귀한 질병이 있습니다. 원발성 담즙성 담관염 (이전 간경화에서 용어 바뀜, 이후 PBC로 지칭)은 50대 여성에게 인구 10만 명당 8.21명 의 발병률을 보이는 병입니다. 이 병은 자가 면역질환으로서 담즙관 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가 생기는 것이 원인이 됩니다.
13. 담즙관이 T세포나 B세포와 같은 면역세포에 의해 공격받으면서 시너(담즙산)가 간 조직 내부로 흘러들어 가고, 이는 간세포의 파괴로 이어집니다. ALP가 24주 이상 정상치의 1.5배 이상 상승하고, AMA (항미토콘드리아 항체) 역가가 1:40 (90% 이상 양성)를 넘어가면 이 병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14. 치료제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환자는 우르소데옥시콜산, 우루사를 처방받게 되고 치료 효과도 뛰어납니다. 우루사는 친수성이 강한 (순한) 담즙산의 일종으로 하수관의 손상을 막는 기전을 갖습니다. 독한 시너가 흐르며 부식되던 담즙관은 우루소데옥시콜산이 섞이면서 담즙산 포화도가 증가하여 담즙정체로 인한 증상이 완화됩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몰라도 식도염에 알긴산을 써서 상처 난 점막을 보호하는 효과와 비슷합니다.
15. 부식이 이미 일어난 경우, 즉 담도관의 염증이 심한 경우, 스테로이드(특히 부데소니드)가 쓰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흥분한 면역세포가 담관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뒤에 다루겠지만 스테로이드만큼 염증을 효과적으로 즉각적으로 개선시키는 약도 사실 없습니다. 스테로이드는 흥분한 면역세포를 매우 잘 진정시킵니다.
16. 진행된 환자에게 간이식이 시행되는데, 이식 후 10년 생존율은 약 70%입니다. 결국 PBC 또한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이므로 환자는 다른 자가면역질환 (예, 갑상선질환, 류머티즘 질환)이 동반될 수 있으므로 꼼꼼한 검사가 필요합니다.
17. 흥미롭게도 PBC는 요로 감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방광염을 자주 앓았던 여성에게 발병률이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밝혀졌고 위험요인으로 인정됩니다. 이는 요로감염을 일으키는 주요 균인 대장균이 담관 세포와 닮았기 때문이라 과학자들은 설명합니다. 잦은 요로감염에 대항하느라 흥분한 면역세포가 담관세포를 공격해 버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18. 감마지티피, 총 빌리루빈, ALP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수치가 더 뛰어나고 확실하다로 접근하기는 어렵습니다. 의사들은 모든 수치에 대해 두루두루 참고해 진단에 참고합니다. 어떤 수치가 상승하거나 감소하였다고 하여 질병을 바로 진단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비록 PBC라고 하는 꽤 희귀한 질환을 예를 들어 ALP를 설명하였으나 ALP가 높다고 PBC를 먼저 언급하는 것은 사실 돌팔이 의사 쪽에 더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