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먹는 알부민 영양제는 생각보다 고가입니다.)
2.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기억하십니까?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공포가 말 그대로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어떻게 '먹는 것' 만으로 병에 옮을 수 있을까요? 식중독이야 고기가 상한 탓에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3. 광우병, 즉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은 프라이온(prion)이라는 단백질이 일으키는 제 3 급 법정전염병입니다. (가축에서는 1종) 프라이온이라는 명칭은 '단백질성 감염 입자'(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의 약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프라이온은 희귀하지도 않고 이상한 단백질도 아닙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제게도 있고, 읽으시는 여러분들의 신경세포에도 있습니다. 이 프라이온 단백질은 원래 기억과 같은 신경 기능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4. 안타깝게도 어떤 계기를 통해 이 프라이온 단백질이 변성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계기는 보통 노화와 관련됩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확률은 매우 낮고, 설령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 몸에는 복구 시스템(샤페론)이 존재하기 때문에 프라이온 질환은 극히 드물게 보고됩니다. 나이 듦으로써 프라이온 질환을 진단받는 환자는 인구 100만 명당 약 1~1.5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울산시 인구가 100만 명)
5. 참고로 광우병은 더 희귀합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신경부위 (뇌, 척수)를 먹고 발생하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전 세계적으로 약 230여 명만이 보고되었습니다. (전 국민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아직 환자 없음)
6. 하지만 드물다고 무시할 일은 아닙니다. 프라이온이 변형 상태로 바뀌면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심각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변형 프라이온은 주변의 정상 단백질까지 물들여 모조리 변형시키는 무서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변형 프라이온에 물들어 좀비처럼 변한 단백질들은 수십에서 수백 개씩 뭉쳐서 거대한 아미노산 군집을 형성합니다. 처리하려 안간힘을 쓰던 면역 세포들이 결국은 포기하고 펑펑 터지면서 환자의 뇌 조직은 뻥긋뻥긋 구멍이 납니다.
7. 둘째. 내 몸 안에서 프라이온이 흑화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변성된 프라이온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병, 전염병입니다. 프라이온은 우리 소화액으로 분해되지 않아서 소화기관을 거쳐도 형태가 변하지 않습니다. 소화가 안 되니 대변으로라도 나가버리면 좋을 텐데 장관의 특수 세포(M세포, 백도어)를 통해 침투하는 데 성공하면 바로 신경계로 직행합니다. 그래서 이 병은 옮을 수 있습니다.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8.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의 한 종류인 쿠루병은 이런 사람-사람 간 전염으로 발생한 대규모 유행의 한 예입니다.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은 가족이 죽으면 애도의 의미로 시신을 먹는 장례 풍습이 있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아마도 노화)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린 노인의 신경 조직 (뇌나 척수)를 먹은 여성과 아이들이 쿠루병에 걸렸습니다. 변성한 프라이온이 소화기관을 통해 (대를 이어) 넘어간 것입니다.
9. 심지어 프라이온은 가열이나 소독에도 잘 버팁니다. 현재 가장 주의해야 할 사람 간 전염 경로가 바로 의료 시술 중 발생하는 접촉입니다. 이를 의인성(Iatrogenic) 전염이라고 합니다. 프리온은 일반적인 멸균법(끓이기 등)으로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CJD 환자에게 사용했던 수술 도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다른 환자에게 사용할 경우 감염됩니다. 프리온에 감염된 줄 몰랐던 기증자로부터 각막 이식이나 뇌경막 이식을 받았을 때 전염되기도 합니다.
10. 더욱 충격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성장호르몬을 사망자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해 썼는데, 그렇게 만든 주사로 치료받은 아이들이 수십 년 후 CJD에 걸린 사례도 있습니다. (현재는 유전자 재조합 호르몬을 쓰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게다가 이런 강력하고 끈질긴 성격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제도 없다는 점이 세 번째로 무서운 점입니다.
11. 하지만 프라이온은 극히 드문 예외입니다. 사실 우리가 먹은 단백질은 소화가 되고 나면 온전히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유지해서도 안됩니다)
12. pH 1~2의 강산성의 위산을 통과하면 대부분의 단백질은 구조가 무너집니다. 여기에 펩신이라는 강력한 소화 효소가 단백질을 조각조각 끊어냅니다. 어찌어찌 무사히 위를 통과했다 해도 소장에서는 트립신, 키모트립신 같은 다양한 프로테아제(단백질 분해 효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효소들은 단백질에 달라붙어 화학적으로 분리해 냅니다. 결국 어떤 단백질이든 아미노산이라는 기본 벽돌 구조로 분해됩니다.
13. 연구에 따르면 섭취한 단백질의 95% 이상이 아미노산 수준까지 무사히 분해된다고 합니다. 아무리 비싼 스테이크를 먹었다 해도 이 운명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로 큰 마음먹고 아이에게 사준 수십만 원짜리 레고가 몇 달 뒤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조각조각 나서 집안 곳곳 낱개 블록으로 흩트러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4. 인슐린이나 GLP-1 같은 호르몬 약물들이 아직까지 불편하게 대부분 주사로 맞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슐린이나 GLP-1을 '먹으면' 소화과정에서 분해되어 원래 구조를 잃어버립니다. 운 좋게 일부를 살아남긴다 해도 흡수율이 개인마다, 식사 상태마다 너무 달라지므로 치료 효과를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15. 그렇다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먹는 알부민'은 우리 몸에 알부민 그대로 흡수될 수 있을까요?
16. 알부민은 분자량 66 kDa으로 분해되지 않고서는 우리 몸에 흡수되기가 어렵습니다. 제 아무리 비싼 가격의 알부민 제품이라 하더라도 아미노산 단위로 분해되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알부민뿐만 아닙니다. 소고기를 먹든, 돼지고기를 먹든, 단백질 파우더를 먹든, 닭가슴살을 먹든, 콩이나 두부를 먹든, 먹는 알부민을 먹든 과정을 동일합니다. 모두 아미노산이라는 기본 단위로 분해되어 흡수됩니다. 물론 단백질의 함량과 아미노산 구성은 조금씩 다르므로 각각의 장단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레고는 흰색 블록이 많네!)
17. 그러므로 어떤 제품이 "알부민 그대로 흡수됩니다"라고 광고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걱정해야 합니다. 변성 프라이온처럼 무언가 문제가 있는 형태일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알부민이 분해되거나 해체되지 않고 우리 몸에 들어온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18. "그럼 먹는 알부민은 완전히 쓸모없는 건가요?"라고 물으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위장이 매우 약한 분들에게는 유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 고기나 계란 같은 단백질 식품은 위에서 강한 위산과 만나 오랜 시간 머물며 분해 과정을 거쳐야 하니 위장이 약한 분들은 이 과정에서 소화 불량을 겪고, 음식이 정체되면서 복부 팽만감과 가스가 차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19. 반면 저분자 펩타이드 제품은 이미 작은 조각으로 쪼개져 있어서 위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고, 소장으로 내려가 빠르고 쉽게 흡수됩니다. 알부민 제품 대부분이 '가수분해 알부민' 또는 '저분자 펩타이드'라고 표기되어 광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위가 해야 할 소화 작업을 미리 해둔 상태인 것입니다. 순수한 단백질 성분만 농축되어 있어 소화 찌꺼기가 거의 남지 않으므로, 가스 발생도 줄일 수 있습니다.
20. 알부민 자체가 기본적으로 흡수에 유리하다는 장점도 말씀드려야 합니다. 알부민은 전형적인 구형 단백질(Globular Protein)로서 분해가 무지 쉽습니다. 이와 반대로 고기에 많은 콜라겐은 꽁꽁 꼬인 긴 줄 모양이라서 푸는 데에만 한 세월이 걸립니다. "잘 부서지고, 알차게 흡수된다"는 것이 알부민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화력이 떨어진 환자나 어르신들에게 계란 흰자(알부민)를 권하는 것이 일리가 있는 선택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노인에게 알부민 영양제는 한 번쯤 사드려 볼만합니다. (하지만 비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