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 (1)

by 예재호

1. 이 스프레이는 쓰는 즉시 코를 뻥 뚫어주지만, 되려 비염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오래 쓰지 마십시오.

zylometazoline.png


2. 생명을 위협받거나 위기에 빠지면 우리 몸은 생존을 위해 연쇄적인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길을 가다 맹수나 강도를 마주친 상황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기민하게 대처하려면 충분한 혈액 공급이 중요하므로 심박수가 늘어나 두근거리고, 수축력이 증가해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더 많은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근육이 이완되어 기관지 직경은 확장됩니다. 재빨리 도망치려면 근육 쪽에 혈액과 에너지를 우선적으로 공급해야 하므로, 중요하지 않은 조직으로 향하던 혈관 밸브는 잠가집니다. 이 탓에 얼굴은 창백해지고 입은 마릅니다. 간에서는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해 당장 쓸 수 있는 최대한의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동공도 활짝 열립니다.


3. 이런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유명한 아드레날린입니다. 아드레날린은 오줌을 만들어내는 신장(콩팥) 위에 놓인 부신이라는 아주 작은 기관에서 분비되는데요. 아드레날린이라는 말 자체가 신장-가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adrenal_intranet.png 부신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예정입니다.


4. 아드레날린은 대중적으로도 매우 유명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의식을 잃고 혈압이 잡히지 않는 사경을 헤매는 주인공에게 마치 부활의 아이템처럼 푹! 찌르는 주사가 바로 아드레날린(에피 펜)입니다. 앗, 아드레날린과 에피네프린은 같은 물질을 지칭하는 다른 말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두 과학자가 이 물질을 부신에서 분리했고 각자 다른 이름으로 명명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에피네프린이라는 말도 역시 신장-가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epipen.png


5. 이런 아드레날린을 약으로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시름시름 죽어가는 환자도 아드레날린이 나오면 눈을 번쩍 뜨고, 떨어지던 혈압마저 순식간에 쑥 올라가니 과학자들에겐 굉장히 신비롭고 흥미로운 물질이었을 것입니다. 더불어 두 번의 세계대전 또한 아드레날린 작용제가개발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 주사는 과다 출혈로 혈압이 떨어지는 병사들에게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올리는 용도로 유용했고, 독가스 공격을 받았을 때도 기관지 확장제 역할을 했습니다.


reference.png

6. 오늘의 주인공, 오트리빈과 같은 비충혈 완화제에 들어가는 약제가 아드레날린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미다졸린계 교감신경 유사 작용제(Sympathomimetic amines)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어렵긴 하지만 의미는 단순합니다. ‘아드레날린처럼 작용하는 물질’이라는 뜻입니다. 이미다졸린계열 약물은 코의 점막에 작용해 혈관을 수축시킴으로써 코막힘에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7. 자일로메타졸린(xylometazoline)과 옥시메타졸린(oxymetazoline)과 같은 비충혈 완화제는 전신 흡수량이 적고 단기간 정해진 용법대로 사용한다면 부작용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약(OTC)으로 분류되어 있기도 합니다. 분무 후 수 분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며, 약효는 수 시간(대략 8~10시간, 제품에 따라 최대 10~12시간) 지속되니 쓰기도 편합니다.


OTRIVIN.png


8. 하지만 어쩐지 의사들은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비인후과 선생님께 진료받으실 때 오트리빈을 자주 쓴다고 하면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다졸린계 비충혈 제거제를 오래 쓸 경우 되려 반동성 코막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며, 더 심하게는 약물성 비염이라는 심각한 병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9. 혹시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범인에게 잡힌 인질이 시간이 지나면서 심정적 변화를 일으켜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경우 피해자는 되려 가해자를 감싸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sTOCKholm.png

10. 생각해 보면, 강도를 처음 만나면야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고 긴장될지 몰라도 그 강도를 매일같이 만난다 치면 점점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트리빈과 같은 비충혈제거제를 오랫동안 쓸 경우에도 이런 일이 생깁니다. 자꾸 쓰다 보면 점막이 말 그대로 ‘심드렁'해집니다. 더 많은 아드레날린 신호가 가야 그나마 약효가 생긴다고 생각하셔도 좋겠습니다. 코 점막의 스톡홀름 증후군까지 논할 정도가 되면 ‘역설적 반응’, 뿌렸는데 되려 막히는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STOCK___.png 게다가 이렇게 잘 생긴 범인이라면....


11. 비충혈 완화제를 너무 자주, 오래 쓸 경우 이런 일이 생깁니다. 가장 먼저 환자들은 한 번만 뿌려도 하루 종일 잘 듣던 약이 금세 효과가 떨어져 좀 더 자주 뿌려야 한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반동성 코막힘의 시작입니다. 한 연구에서는 이미다졸린 중 하나인 자일로메타졸린을 연속해서 30일 사용해 보니 치료 효과가 9시간에서 약 5시간으로 감소했다고 보고했습니다.


reiew_paper_RM.png

12. 더구나 코막힘은 알레르기성 및 비알레르기성 비염, 감염, 비강 폴립, 부비동염 등 다양한 질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코막힘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받지 않고 증상만 완화시키는 것에 만족할 경우 환자들은 복용 빈도 또는 복용량을 늘리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환자의 40%가 권장 용량보다 많은 양을 사용하고 30% 이상이 권장 사용 기간보다 오래 비강 혈관수축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3. 반동성 코막힘의 시기가 지났음에도 지속적으로 비충혈제거제를 장기간 사용할 경우 약물 유발성 비염(rhinitis medicamentosa)으로 진행합니다. 반동성 코막힘이 중단 후 1~2주 이내에 호전되는 것과 달리 약물 유발성 비염은 만성화되므로 좀 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약물 유발성 비염으로 악화되는 기전은 명확하지 않지만 비점막의 구조적, 기능적, 염증성 변화, 수용체 민감도 또는 신경 경로의 변화 등이 연관되어 있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합니다.


14. 슬프게도 한 번 약물 유발성 비염으로 진행될 경우 충분한 기간 동안 충혈 완화제 사용을 중단하더라도 더 이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전에 이미다졸린계 비강 치료제를 과도하게 또는 장기간 사용하다가 성공적으로 치료를 중단한 사람들은 권장 용량과 빈도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하더라도 반동성 부종이 빠르게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고려해야 합니다. 다만 약물 유발성 비염까지 진행되는 경우는 1~9%로 소수입니다.


15. 사실 무섭게 이야기를 적어두긴 했지만 반동성 코막힘이나 약물 유발성 비염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많지는 않습니다. 만약 심각한 수준이라면 약국에서 일반약으로 팔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쉽게 중독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의사들은 우려합니다. 비충혈 제거제는 알게 모르게 중독적입니다. 비충혈 제거제를 남용하다가 중단할 경우 많은 환자들이 불안감, 수면 장애, 질식감 등을 호소합니다. 비충혈 제거제 자체의 중독성이 높은 것은 아니나 환자가 코로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다는 느낌을 갖고자 하는 욕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6. 게다가 비충혈 완화제는 일반의약품(OTC)으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들은 비충혈 완화제를 저용량 제제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른바 순한약) 코 혈관수축제를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사람 중 부작용을 인지하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며, 중독 가능성과 권장 최대 치료 기간을 알고 있는 사람은 4분의 1에 그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17. 여러 논문에서는 국소 비충혈제거제를 되도록 짧은 기간 동안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10일 이상 사용 시 약물성 비염이 발생 가능성이 크게 높아집니다. 특정 제품의 경우 3일 이상의 사용도 제한됩니다. 반동성 코막힘이 나타나거나 약물성 비염으로 진행될 경우 가장 우선적인 치료는 약물 사용의 즉각적인 중단입니다. 회복을 돕기 위해 의사의 처방에 따라 국소 비강 스테로이드(Glucocorticosteroids)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18. 사실 우리는 이미 오트리빈과 같은 교감신경 유사 작용제를 다룬 바 있습니다. 바로 천식 편에서 나왔던 베타 아드레날린 수용체 작용제인 벤토린입니다. 벤토린 역시 수용체를 과도하게 자극함으로써 되려 수용체의 민감도가 떨어지고 그럼으로써 천식의 악화를 유발하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사실 그런 면에서는 벤토린과 오트리빈은 태생이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 그러고 보면 우리 코의 점막이 신경 상태에 따라 상태가 크게 변한다는 점은 꽤나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코는 단순히 공기가 드나드는 통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콧물이나 코딱지나 만드는 점막이라 하기에는 코 점막은 무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지시를 받으며, 항상성 조절과 외부 화학적 및 물리적 자극에 대한 보호 기능을 제공합니다. 이런 민감한 코의 신경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코막힘이 있다면 단순히 뚫어내려고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관리를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MEDIcation.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천식 관리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