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대신 면역세포 능력을 높여 암세포를 대신 공격하는 방식으로 개발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는 다름 아닌 IgG4 구조를 빌려 개발되었습니다.
2. 어제 이야기를 먼저 정리해 보면. IgG4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엉뚱한 존재였습니다. 다른 면역 글로불린처럼 침입자(항원)에 딱 달라 붙어 따라다니는 것은 동일했지만, 붙잡고만 있을 뿐 다른 면역세포를 불러 모으지 않는 탓에 침입자(항원)는 제거되지 않고 혈액 내에 고스란히, 멀쩡하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3. 이런 특성은 '할 일'을 하고자 하는 IgE 입장에서 본다면 괜히 침입자만 숨겨 주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었습니다. 게다가 해괴하게도 항원을 붙잡는 팔을 시도 때도 없이 바꾸는 탓에 침입자를 하나도 아닌 두 개씩이나 가져가니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방해만 한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았을 것 같습니다.
4. 이렇게 속을 알 수 없던 IgG4는 면역관용을 유도하는 항체(anti-inflammatory or tolerance-genic antibod)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기르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레르기 반응이 약해지기도 하는데,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고양이 알러젠이 IgE 대신 IgG4에 결합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벌을 기르는 양봉업자 또한 직업적으로 벌침에 자주 쏘이다 보면 슬그머니 IgG4가 IgE와 경쟁해 벌독과 결합하고 그때부터 벌에 물려도 증상이 많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5. 이뿐 만이 아닙니다. 면역요법(AIT) 과정에서 늘어나는 IgG4는 해당 알러젠에 대한 면역관용 수준과 비례한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됩니다. 면역 치료가 진행될 수록 IgG4가 늘어났고, 환자의 증상은 약해졌습니다. IgG4가 증가할 때 IgE의 감소도 함께 관찰되습니다. 심지어 땅콩 알레르기가 있지만 IgG4가 높게 나오는 환아에게서 IgG4를 제거하면 다시 비만세포 활성화가 회복되는 것(즉, 히스타민이 나오고 호산구가 모여드는 등의 알레르기가 재발함)이 관찰되기도 했습니다.
6. IgE와 경쟁적으로 결합하는 IgG4는 알레르기 증상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왜냐면 IgG4는 팔은 있되 알람은 울리지 않으니까요! IgG4과 결합한 알러젠들은 어떤 면역작용도 일으키지 잊힌 채 지냄으로써 우리 몸과 평화를 유지하게 도와줍니다. 심지어 IgG4는 알러젠을 두 개씩이나 임의로 부착할 수 있으므로 우리 몸의 알레르기 반응은 축소됩니다.
7. 이러한 결과들이 보고되었기에, 각국의 권위 있는 학회에서는 IgG4를 이용한 식품 류 알레르기 검사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학회에서는 '푸드 알레르기 검사는 식품 민감성, 식품 불내증 또는 식품 알레르기를 간단하게 진단하는 방법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음식에 대한 이상반응을 진단하거나 향후 이상반응을 예측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없'으며 되려 '음식에 대한 노출 및 내성의 지표'이므로 '불필요한 식이 제한과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8. 무엇보다 심각한 부작용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IgG4가 높게 나와 제한하라고 권고받은 식품이 실제로는 문제없는 경우가 있는 반면, IgG4가 낮게 나와 안전하다고 분류된 식품 중에 생명을 위협하는 아나필락시스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성장기 아동에게 불필요한 식단제한은 영양실조 위협과 성장 부진과도 연관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전문 링크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3443017/
9. 이러한 IgG4의 '결합하되 면역작용은 일으키지 않는(숨겨주는)' 독특한 특징은 항암제 개발에 응용되어 쓰이기도 했습니다.
10. 정상세포와 암세포는 확실히 모양이 다릅니다. 게다가 세포 표면에 나타나는 단백질들도 다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대체 이렇게 다른 데 왜 면역세포들이 공격하지 않는 것인가를요.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데 암세포는 멀쩡하게 잘 살아낼 뿐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도 제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11. 그 비밀을 일본의 혼조 다스쿠 교수가 풀어냅니다. 암세포는 설사 검문에 걸리더라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암구호'를 알고 있었습니다. 정찰병 T 세포가 수상한 모습을 가진 거수자(擧措者)를 발견하고 다가가면 암세포가 PD-L1이라는 '암구호'를 내어놓고, T세포의 PD-1과 결합시켰습니다. PD-1은 T 세포의 면역작용을 멈추는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해서, PD-L1과 결합당한 T 세포는 마치 얼음땡에 걸린 듯 멈춰버립니다.
12. 그래서 과학자들은 T세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암세포가 쓰는 PD-1 통로만 막으면 T 세포가 암세포를 다시 공격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만 있다면 장점은 매우 많았습니다. 원래 우리 몸에서 작동하던 면역 체계를 이용하므로 기존 항암제보다 훨씬 독성과 후유증은 낮을 테고, 면역 세포를 속이는 방법을 통해 번창하는 암세포라면 어느 부위에 있더라도 적용이 가능했기에 암 치료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었습니다.
13. 이때 문제는 PD-1 수용체에 마개를 씌우면 그 자체로 '이상한 놈'으로 찍혀서 다른 T 세포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몸은 약간이라도 괴상하게 생긴 세포라면 무조건 공격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오죽하면 수많은 자가 면역질환이 왜 생겼겠습니까? PD-1을 거세한 T 세포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려면 묘수가 필요했습니다.
14. 그 묘수를 과학자들은 다름 아닌 우리 글의 주인공 IgG4에서 찾아냈습니다. 그러니까 키트루다는 이런 전략으로 개발된 약입니다. 일단 순찰 중인 T 세포가 가진 약점 PD-1에 딱 달라붙는 마개를 만듭니다. 이것을 IgG4의 구조를 가진 항체에 실은 것이 바로 키트루다입니다. 키트루다가 T 세포에게 붙어서 PD-1을 무력화시켜 모양이 조금 변하더라도, IgG4의 몸통 부분 (Fc)은 어떤 면역작용도 일으키지 않고 자신이 부착한 항원을 면역세포에서 숨겨주므로 T 세포는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5. 만약 IgG4가 아니라 일반 IgG를 써서 T 세포의 마개를 씌웠다면, '여기 침입자다!' 라며 시끄럽게 소리 지르는 탓에 온갖 면역세포들이 몰려들어 우리 불쌍한 'PD-1을 거세당한 T세포'를 공격했을 것이 뻔합니다.
16. 다시 알레르기 질환으로 돌아와 특정 알러젠에 대한 혈중 IgG4 수치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호산구 식도염이나 호산구성 만성비부비동염과 같은 질환에서는 IgG4 수치가 높을수록 임상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는 보고도 있기 때문입니다. 드문 질환인 호산구성 식도염의 경우 생검 표본에서 식도 조직에 침착된 IgG4가 발견됨으로써 IgG4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면역 복합체를 형성하며 비만 세포를 활성화하는 경로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17. 다만 그럼에도 비록 음식 특이적 IgG4는 임상 증상과 무관합니다. IgG4에서 지목된 음식에 대해 이중맹검법으로 위약 및 대조 음식을 투약한 결과 증상이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IgG4에서 지목된 양성 식품을 제거한 뒤에도 알레르기 과민 반응의 감소 효과는 위약 효과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008년 유럽 알레르기 면역학회(EAACI) 태스크포스의 입장문에서는 식품 특이 IgG4를 식품 알레르기 진단 도구로 권장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알레르기 면역학회(AAAI)의 입장문 역시 같은 의견을 고수하며, 특이 및 비특이 IgG4를 이용한 검사는 임상 알레르기의 진단 및 예후 예측 검사로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계속)